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이 책은 오늘날 철학이라 불리는 학문 영역 중에서도 형이상학 분야의 고전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철학이라 불리는”이라고 한 것은 무엇보다도 고대의 철학자들, 즉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들이 철학 연구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이전 사람들, 즉 헤시오도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 등은 더욱이나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대의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철학 연구자임을 의식하였던 데카르트, 칸트, 헤겔은 모두 자신들이 세계의 근본원리를 탐구하고 있다는 자각을 뚜렷하게 가졌을 것입니다.

철학은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그리고 그 세계 안에 살고 있는 자신에 관하여 가장 근본적인 것을 물음으로써 시작됩니다. 이러한 물음은 그저 살고 있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평온하든 혼란스럽든, 나날을 살아가면서도 그러한 나날에서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궁금해 하는, 그 나날로부터 한 발짝 물러선 지점에 서 있는 사람에게만 철학적 물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흔히들 역사가 끝난 지점에서 철학이 시작된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유도 자신의 몸을 세상과 곧바로 맞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역사적 사유 역시 반성적 사유이고 철학적 사유와 닮아 있습니다. 다만 철학적 사유는 조금은 더 깊게 내려간 근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세계의 역사에 관하여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만 철학적 관심도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고대 중국의 역사 책에 《춘추》春秋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자孔子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책입니다. 이 책 이름을 살펴보겠습니다. ‘봄·가을’입니다. 계절 이름입니다. 굳이 봄·여름·가을·겨울을 다 말하지 않아도 이 두 계절만으로도 한 해를 말할 수 있습니다. 춘추는 자연입니다. 자연自然은 말 그대로 늘 그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올 봄에는 꽃이 예년만 못했고, 이렇게 덥기는 한 10여 년 만에 처음이고, 올해 단풍은 유난히 어여뻤으며, 이번 겨울은 벌써 추위가 사무치는데, 도대체 뭐가 늘 그러하다는 말인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 들여다본다면 이런 반문이 생겨날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마다 계절은 달랐으니까 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늘 그러합니다. 봄에 핀 꽃이 아무리 흐드러졌다 해도 겨울까지 피어 있을 리는 없습니다. 반드시 죽습니다. 그것이 늘 그러한 것입니다. 핀다, 죽는다, 다시 핀다, 죽는다, 다시 핀다… 바뀌는 게 있어 보이는데 그 안에 변함없는 것이 있습니다. 있어 ‘보이는 것’이 있고, 늘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있는 것’이 있습니다. 둘 다 있습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가리키고, 다른 하나가 하나를 드러냅니다. 이렇게 해서 불변(에 가까운 것)을 이룹니다.

“춘추”는 역사책 이름입니다. 자연의 겉모습을 보고 지었는지, 자연 뒤에 있는 것을 겨냥하여 지은 것인지, 둘을 겹쳐 지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춘추는 사람의 일을 적습니다. 꽃보다 유한한 사람의 일을 적습니다. 사람은 태어난다, 사람은 죽는다, 이걸로 끝입니다. 사람에 관하여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역사는 그처럼 당연해 보이는 것을 기록하였고, 철학은 인간의 일에서 근원적인 것, 변함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찾아보려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철학은 그 탐구가 찾아낸 성과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뻔해 보이는 것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철학이라는 말보다는 ‘철학함’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수 있습니다. 이 철학함은, 또는 공부는, 변함 속의 인간이 변함 없음을 향해 가는 행위입니다. 그러한 탐구 행위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떠한지, 그 안에서 자신은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를 막연하게나마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철학은 사람을 철들게 하는 학문입니다.

저는 2009년 2월부터 11월까지 40주 동안 서울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인문학 고전들을 강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강의는 《인문 古典 강의》로 묶여 2010년에 출간되었습니다. 2011년에 같은 곳에서 역사 고전들을 강의하고, 《역사 古典 강의》를 출간한 것은 2012년입니다. 그 뒤 이런저런 사정으로 철학 고전들을 읽을 기회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시 서대문구립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2014년에 40주 동안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 강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강의 시간에는 더 많은 고전들을 읽었고 자질구레한 논의도 더 있었습니다만, 책으로 묶기에 적절한 것들만을 여기에 적었습니다.

오늘날 철학은 쇠퇴하는 학문이라고들 합니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그러한 판단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합니다. 겪은 바가 적고, 시야가 좁은 탓에 저는 이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져볼 재주는 없습니다만, 이 고전들을 읽는 동안에는 그러한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였습니다. 저와 함께 이 고전들을 읽었던 이들은 세상사와 별 관계없어 보이는 이 텍스트들을 읽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들을 이끌어간 힘은 세상에 불멸의 이름을 남기려는 명예욕도, 삶의 고통을 잊으려는 도피적 소망도, 주변 사람들에게 어려운 책을 읽고 있음을 보이려는 과시욕도 아닌, 잔잔하면서도 끊이지 않는 학문정신이었을 것입니다. 2014년에 40주 동안 함께 공부했던 그들의 학문정신을 각별히 기억해둡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학문의 토대이자 정수精髓인 철학을 공부하는 장을 마련하고 지켜준 도서관 사서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2016년 7월 강유원 적음

지은이: 강유원
출판사: 라티오
분야: 철학, 고전
발행일: 2016년 8월 5일
ISBN: 978-89-960561-9-5  03110
판형: 신국판
가격 및 쪽수: 27,000원/ 460쪽
<<철학 古典 강의>>(#ISBN9788996056195)

2009년부터 매년 40주 동안 공공도서관에서 고전을 가르치고 있는 철학자 강유원이 4년만에 내놓는 저작이다. <인문 古典 강의>(2010년 출간), <역사 古典 강의>(2012년 출간)에 이은, 古典 강의 세 번째 책 <철학 古典 강의>. 2017년에 <문학 古典 강의>를 출간함으로써 이 시리즈는 완간될 예정이다. 그동안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수백 명의 사람들이 현장 강의를 들었으며, 모든 강의를 수강한 수강생들의 수도 상당하다. 대학 안에서는 진정한 학문 정신이 사라졌고 대학 밖에서는 가짜 인문학이 판을 친다고 한탄하는 시대이지만 이 강의를 들은 수강생들이 가지게 된, 앎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교양인으로서의 지속적인 열정은 도서관이 일반인들을 위한 학문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다양한 수준과 배경을 가진 일반인들을 고려하되, 이들을 수준 높게 이끌어갈 만한 일관성 있는 커리큘럼으로써 이 강의들과 저작들을 기획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강의를 몇 년 동안이나 진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하는 수강생들과 도서관 사서들의 도움이 컸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과정으로 공부해 나갈 수 있도록 이 책은 강의 내용을 보다 더 완성도 있게 정리하고자 했다.

이 시리즈의 입문서 격인 첫 번째 책 <인문 古典 강의>가 대표적인 서구 고전들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과 고귀한 삶의 의미를 탐색했다면, 인문학 분야 중 가장 먼저 익혀야 할 역사에 관한 두 번째 책 <역사 古典 강의>는 역사적 계기들을 중심으로 서양사를 서술하면서, 역사를 움직이는 힘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원천적인 모습을 밝히고자 했다.

이번에 출간된 <철학 古典 강의>는 고전적인 의미의 철학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전통적으로 추구해온 고도의 추상적 사유들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것이 주요 철학자들의 저작들에서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이러한 사유들은 역사의 흐름과 무관해 보이지만, 깊이 있게 탐구해보면 형이상학적 사유의 원리의 전환이 시대의 큰 변화에 작용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학문인 ‘철학’에 관한 강의이므로 이전 책들에 비해 내용 파악이 간단하지 않다. 이러한 어려움을 감안하고도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철학이야말로 우리의 이성을 단련시키는 엄격한 학문이자 우리의 삶과 세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유일한 반성적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철학의 가장 중심 분야인 존재론과 형이상학의 토대를 익힘으로써, 우리의 앎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차례

I 희랍 철학의 시작: 세계 전체에 대한 통찰

희랍 우주론의 원형| 헤시오도스, <<신들의 계보>>

제1강_우주론, 철학적 사유의 시작

제2강_희랍 사유에서 우주의 구조와 생성 과정

세계의 원리에 관한 자연학적 파악|<<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제3강_존재의 근본 개념(파르메니데스)

제4강_일자와 두 세계 이론(파르메니데스에 관한 ‘전통적’ 해석)

제5강_대상 세계에 관한 탐구(파르메니데스에 관한 ‘현상-법칙’ 해석)

제6강_학문 탐구의 방법(파르메니데스에 관한 ‘학의 시원’ 해석)

제7강_세계를 지배하는 원리, 로고스(헤라클레이토스)

제8강_변화하는 여러 현상들과 궁극적인 ‘하나’(헤라클레이토스)

II 플라톤: ‘좋음’ 위에 인간과 공동체를 세우려는 노고

인간의 영혼과 형상이라는 목적|<<파이돈>>

제9강_잘 산다는 것

제10강_형상실재론과 형상시원론

제11강_합의된 규약에 의지하는 ‘차선의 방법’

제12강_같음과 같음 자체에 관한 논변

공동체, 넓은 의미의 인간학|<<국가>>

제13강_참으로 좋은 것에 관한 앎(태양의 비유)

제14강_참으로 좋은 것에 관한 앎과 그것의 실천(동굴의 비유)

제15강_아는 것과 하는 것, 이론과 실천의 통일

III 아리스토텔레스: 희랍 형이상학의 체계적 완결

앎의 체계와 궁극적 실재|<<형이상학>>

제16강_<<형이상학>>의 구성

제17강_앎의 종류와 단계들

제18강_형상의 분리와 내재

제19강_학의 성립에 관한 물음, 보편적 존재론과 신학의 관계

제20강_실체론, ‘이것’(tode ti)과 ‘무엇’(ti esti)

제21강_운동론, 가능태와 현실태

IV 데카르트: 주체인 인간의 세계 구축

데카르트 형이상학의 근본 구도|<<철학의 원리>>

제22강_자기의식, 데카르트 철학의 근대성

제23강_진리의 원천과 진리 인식의 원천

자기의식의 형이상학|<<성찰>>

제24강_<<성찰>>의 구성과 목적

제25강_감각적 앎의 부정, 철저한 의심(제1성찰)

제26강_자립적 자기의식의 현존, 정신의 우선성(제2성찰)

제27강_인간의 유한성에 의거하는 신의 무한성 증명(제3성찰)

제28강_참과 거짓을 식별하는 정신, 정신과 신체의 합성체로서의 인간(제4성찰, 제6성찰)

V 칸트: 인간의 한계 자각과 ‘장래의 형이상학’

초월론적 이념들에 대한 일반적 주해|<<형이상학 서설>>

제29강_‘장래의 형이상학’의 성립 가능성

제30강_이성의 사변적 사용

제31강_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데카르트?칸트?헤겔 형이상학의 핵심 문제

자연과 자유의 통일적 체계|<<판단력비판>>

제32강_판단력의 연원

제33강_미감적 판단력, 목적론적 판단력

제34강_판단력을 통한 오성과 이성의 결합

VI 헤겔: 신적 입장으로 올라선 인간

절대적인 것의 자기전개|<<철학백과>>

제35강_헤겔 철학 체계의 구성

제36강_헤겔 형이상학의 기본 개념들

제37강_사변적 사유와 정신철학에 대한 일반적 논의

학적 인식으로 올라서는 사다리|<<정신현상학>>

제38강_<<정신현상학>>의 구성, 의식-자기의식-이성

제39강_진리의 역사성, 진리주체론

제40강_헤겔 철학의 목적, 역사와 이념의 통일

 

■ 본문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규정을 따른다면 우리는 헤시오도스의 텍스트를 읽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논증을 통해 주장을 내세우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과 우주의 전 국면에는 논증을 통해서 해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으며, 그것까지도 포괄해야만 철학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철학의 한 영역인 형이상학을 공부하면서 《신들의 계보》를 읽는다는 것은 철학에 대한 관점도 달리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신들의 계보》를 읽으면서 그것의 내용도 따져봐야 하지만, 종래의 철학이라는 것에 포함시킬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 《신들의 계보》를 읽는 이유는 이러한 우주론 안에 철학적 사색의 맹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신화(뮈토스)에서 이성(로고스)으로의 전환, 이것이 철학의 시작이다’라는 말은 일단 배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인간의 눈앞에는 수다한 것이 쫙 펼쳐져 있습니다. 많은 것들(다多)이 있습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만 보고 있는 사람은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것처럼 ‘개처럼 짖기만’ 할 것입니다. 진리를 모르는 자들에게는 무엇이든 낯설 것입니다. 인간이 그 낯선 것들을 파악하여 법칙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하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것은 언제까지나 낯선 ‘여럿’일 뿐입니다. 봄이 와도 봄이라고 이름 붙일 줄도 모를 것입니다. 첫째 강물, 둘째 강물, 셋째 강물, 이렇게 강물들이 계속해서 흘러가도 그것에 ‘강’이라는 이름을 붙일 줄 모를 것입니다. 강물들이 흘러가다 더 이상 흐르지 않으면 ‘웅덩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하는데 그렇게 할 줄도 모를 것입니다. 이렇게 개념을 바꾸어 쓸 줄 모를 것이고, 이렇게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그것은 한정되지 않은 것, 규정되지 않은 것입니다.”

“형상에 관한 플라톤의 입장은 일관적이지 않습니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사물 바깥에 실체인 형상이 따로 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살펴보면, 《파이돈》에서는 형상실재론과 형상시원론이 혼재하고 《국가》를 거쳐서 《필레보스》 등에 이르면 형상실재론의 입장이 고수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후기 형상론을 플라톤의 일관된 주장으로 파악합니다. ‘사물과 따로 떨어져서 사물 외부에 실체인 형상이 실제로 있다’, 이것이 플라톤의 입장이라고 정리하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이 사물들의 실체이려면 그것이 사물들과 분리되지 않고 사물 안에 있어야 한다는 형상내재론을 주장하려 합니다.”

“데카르트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해야만 신의 무한성을 알 수 있는 아주 불안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신에 의존하면서도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데카르트의 자기 의식입니다. 이론과 실천 양 측면에서 인간 자신이 유한자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이런 자기의식이 칸트에도 들어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칸트에서는 인간과 신이 합치될 수 없습니다. 인간과 신은 마주보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유한자와 무한자가 맞서 있습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유한자인 인간이 노력하면 무한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고대적인 사유입니다. 근대적인 사유에서는 자기의식이 등장하면서 신과 멀어져버렸습니다. 내가 나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신이 안 보이는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트는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가 ‘그 어떤 매개를 거치지 않고도 신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가톨릭에서 내세우는 성사聖事를 거치지 않고도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의식입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단독자로서의 인간의 위치를 확보했는데, 확보하면 확보할수록 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헤겔 철학에서는, 외부 세계에서 뭔가 데이터가 주어진다 해도, 인간이 데이터를 그냥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스스로의 힘으로 대상 세계까지 나아갑니다. 우리 인간 정신의 활동이 대상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정신이 스스로 바깥으로 나아가서 대상 세계와 접촉하고 그 대상의 본성을 자신에게 가지고 옵니다. 정신은 무한자의 입장으로까지 뻗어나갑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의 통일된 총체성(Totalität)을 이룹니다. 헤겔의 체계 안에서는 이러한 총체성이 유기적으로 짜여 있습니다. 그러나 헤겔의 체계를 벗어나면 그것은 거대한 사기처럼 보입니다.”

 

이 원고는 필자가 서대문구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2014년 2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40회에 걸쳐 진행한 ‘철학 고전 강의’를 바탕으로 쓰였다. 이 강의는 전통적 형이상학과 존재론을 다룸으로써 철학의 전 영역으로 나아가는 기본적인 원리를 터득하게 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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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Die Lage der arbeitenden Klasse in England; The 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 in England

지은이: 프리드리히 엥겔스
옮긴이: 이재만
판형: 신국판; 384페이지(24,000원)
발간일: 2014년 12월 5일
ISBN: 9788996056188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프리드리히 엥겔스, 이재만 (#ISBN9788996056188)

도서안내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자’ 엥겔스, 그는 진정한 이론적 실천가이자 실천적 이론가였다.

청년 엥겔스가 살아간 시간은 산업혁명의 절정기였다. 청년 엥겔스가 살아간 공간은 산업혁명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 속의 행위자였던 그는 시대 속으로 들어간다 — 실천가 엥겔스.

산업혁명의 중심지 맨체스터와 영국 북부를 샅샅이 탐색한 엥겔스는 하나의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보고서에는 시대가 만들어낸 노동계급이, 그들이 살고 있는 대도시가,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경쟁이,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참혹한 귀결이 생생하게 서술되어 있다. 보고서가 여기서 끝맺었다면 엥겔스는 그저 실천가에 그쳤을 것이다. 청년 엥겔스는 여기에 철학적 전망을 더한다. 영국 부르주아지의 현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면서, 모든 이들이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미래를 전망한다 — 이론가 엥겔스.

우리는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에서 청년 엥겔스의 사회적 보고, 철학적 전망을 읽을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디킨스의 소설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문학적 설득력은 뜻밖의 선물이기도 하다.

지금, 여기에서,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
19세기 이래, 세계의 시대정신은 ‘인간’을 중심에 두지 않았다.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난 서구의 근대는 인간 중심의 세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계몽주의의 합리성은 기계 중심의 세계, 이윤 창출의 세계로 나아갔다. 이러한 세계관이 집약되어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실현된 시간과 공간이 바로 19세기 중반의 영국이다.

‘19세기 중반의 영국’은 우리의 현재이기도 하다. ‘우리의 현재’는 노동자가, 대도시가, 경쟁이 장악하고 있다. ‘우리의 현재’에는 ‘인간’이 없다. ‘19세기 중반의 영국’에 관한 청년 엥겔스의 이 보고서가 ‘우리의 현재’에 대한 보고서이며, 동시에 ‘우리의 미래’에 대한 지침일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의 한국어판은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라는 제목으로 1988년에 출간된 적이 있으나 지금은 구할 수 없고, 출간된 지 거의 한 세대가 지났으므로 새로운 번역본에 대한 요구가 절실했다. 이 번역본이 대본으로 삼은 것은, 1845년에 독일어 초판이 나온 지 42년이 지난 1887년에 F. 켈리 비슈네베츠키가 영어로 번역한 것을 엥겔스가 직접 개정한 후 뉴욕에서 첫 출간한 판본이다. 이 밖에도 독일어판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을 참조하였으며, 독일어판에만 있는 주석과 도판을 첨부했다. 독일어판이 아닌 영어판을 선택한 이유는 이 영역본이 엥겔스가 생전에 직접 교정하고 인정한 판본일 뿐 아니라 출간 당시를 기준으로 엥겔스가 서문과 각주 등을 첨부했으며, 무엇보다 이 책의 배경이 영국이고 엥겔스가 참고하고 인용한 자료들 역시 대부분 영어로 쓰였기 때문이다. 고전인 만큼 인용의 준거로 삼을 수 있도록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되 청년 엥겔스의 문체를 살리도록 노력했다.

엥겔스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청년 엥겔스는 산업혁명 시대의 공간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대도시’를 걸어다니며 카메라를 들이대듯 그들의 삶을 묘사한다. “올드필드 가와 크로스 가 사이에 있는, 가장 열악한 안마당과 골목으로 가득한 구역의 노동자 거처들은 불결과 과밀이라는 면에서 구시가지의 거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이 구역에서 나는 60세쯤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외양간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창문도 없고 마루도 천장도 없는 장방형 우리에 일종의 굴뚝을 만들어놓고는 썩은 지붕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침대틀을 하나 구해 거기서 살고 있었다. 이 남자는 너무 늙고 약해서 일정하게 일하지 못했고, 손수레로 분뇨를 치워서 생계를 꾸렸다. 그의 ‘대궐’ 옆에는 똥떠미들이 쌓여 있었다!”

청년 엥겔스는 1840년의 런던에 만연해 있던 ‘소외’에 대해  말한다. “이 개인들이 제한된 공간 안에 모이면 모일수록 각자의 야만적인 무관심, 사익만을 추구하는 매몰찬 고립 상태는 한층 더 혐오스럽고 불쾌하게 변해간다. 그리고 이런 개인의 고립, 이런 편협한 이기주의가 어디서나 우리 사회의 근본 원칙이라는 것을 누군가 제아무리 명확하게 인식하더라도,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이 대도시만큼 뻔뻔스럽고 몰염치하고 자기 위주인 곳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인류가 각자의 원칙과 목적을 가진 단자들로 분해되는 원자들의 세계는 이곳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청년 엥겔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분석한다. “과거의 노예제와 현대의 노예제의 유일한 차이는 오늘날의 노동자가 자유로워 보인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그가 한 번에 팔리지 않고 일, 주, 연 단위로 조금씩 팔리고, 어떤 주인도 그를 다른 주인에게 팔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는 특정한 사람의 노예가 되는 대신 자산계급 전체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를 팔지 않을 수 없다. 근본적으로 보면 노동자의 처지는 바뀌지 않았으며, 설령 이런 겉치레 자유가 불가피하게 그에게 진짜 자유를 약간 주더라도 다른 한 편으로는 아무도 그의 생존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불이익을 수반한다. 노동자는 주인인 부르주아지에게 언제라도 버림받을 수 있는 위태로운 처지이며, 부르주아지가 그의 일자리와 생존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으면 굶어죽고 만다. 반면에 부르주아지에게는 과거의 노예제보다 현행의 방식이 훨씬 낫다. 투자한 자본을 손해보지 않고도 피고용자를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고, 부르주아지를 위로하는 듯한 아담 스미스의 지적처럼 노예제에서 가능했던 것보다 훨씬 값싸게 노동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 엥겔스는 자신이 관찰한 이러한 비참함과 계급 억압의 파노라마로부터,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물론 엥겔스의 이러한 결론은 맞지 않았다. 엥겔스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부르주아지는  점점 더 영악해져서 노동자들의 단결을 깨부수고 자본주의 사회를 한층 더 확고하게 장악했다. 그러나 자본가와 노동자의 기본 관계는 오늘날의 산업사회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다. 2014년 11월에 발표된 영국 내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강제 매춘을 하는 여성들과 소녀들, 그리고 공장이나 농장, 어선 등에서 임금을 거의 받지 못하고 일하는 이들이 영국에서만 1만 3000명에 이른다.

청년 엥겔스의 서술을 21세기 한국에 투영해보면 우리는 무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차례
영국 노동계급에게
1845년 독일어 초판 서문
1887년 미국판 서문
1892년 영국판 서문

서론
산업혁명 이전 노동자의 상황—제니 방적기—산업 프롤레타리아트와 농업 프롤레타리아트의 형성—소모 방적기, 뮬 방적기, 역직기, 증기기관—수작업에 대한 기계의 승리—제조업의 발전—면 공업—양말류 제조업—레이스 제조업— 염색, 표백, 날염—양모 제조업—리넨 업—견직물 제조업—철 생산과 제련—탄광—도자기 제조업—농업 —도로, 운하, 철도, 증기선—요약—국가적 의의를 가지게 된 프롤레타리아트의 발전—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견해

산업 프롤레타리아트
노동자의 분류—자산의 집중—근대 산업의 동력—인구의 집중

대도시
런던의 첫인상—사회적 전쟁과 어디에나 있는 약탈 체제—이 체제에서 사는 가난한 자의 운명—빈민굴에 관한 일반적 서술—관찰의 시작, 런던: 세인트자일스와 그 주변—화이트 채플—프롤레타리아트 거처의 내부—공원의 노숙자들—야간 쉼터—더블린—에든버러—리버풀—공장 도시: 노팅엄, 버밍엄, 글래스고, 리즈, 브래드퍼드, 허더즈필즈—랭커셔: 일반적 논의—볼턴—스톡포트—애슈턴언더라인—스테일브리지—맨체스터에 관한 상세한 묘사: 일반적 구조—구시가지—신시가지—노동자 구역의 건축 구조—건물들과 뒷길—앤코츠—리틀 아일랜드—흄—샐퍼드—간략한 정리—건축업자—비좁은 거주지—지하 거주지—노동자의 옷—음식—부패한 고기—상품 속이기— 가짜 저울 등— 간략한 요약

경쟁
최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경쟁, 최고 임금을 받는 부르주아들의 경쟁—매일 매시간 자신을 판매해야만 하는, 부르주아의 노예인 노동자—과잉 인구—공황—산업 예비군—1842년 공황에서 산업 예비군의 운명

아일랜드 이주민
원인과 결과—칼라일의 서술— 아일랜드 인들의 불결함, 상스러움, 음주벽—아일랜드 인들과의 경쟁과 접촉이 잉글랜드 노동자들에게 끼치는 영향

결과
논의의 시작—앞서 서술한 상황이 노동자의 육체적 상태에 미치는 영향—대도시로의 인구 집중, 거주지, 오염 등—실태—폐병—티푸스, 특히 런던,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소화불량—폭음의 결과—돌팔이 의사—‘고드프리 강장제’—노동계급, 특히 어린 자녀들의 사망률—부르주아지가 저지르는 사회적 살인 혐의 고발—지적 도덕적 상태에서의 결과—교육기관의 결함—부족한 야간학교와 일요학교—노동계급의 무지—노동자들의 생활 속에 있는 교육의 대체물—도덕을 등한시하는 노동자—유일한 도덕이론인 법률—노동자가 자신의 처지에서 법률과 도덕을 무시하려는 유혹—빈곤의 영향—프롤레타리아와 불안정한 처지—강제노동이라는 형벌—인구 집중—아일랜드 인의 이주—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성격 구분— 부르주아보다 프롤레타리아가 앞서는 점—프롤레타리아 성격의 부정적 측면—음주벽—성적 방종—가정의 해체—사회질서에 대한 경멸—범죄—사회적 전쟁에 대한 서술

산업의 단일 부문들 : 공장 노동자
기계의 영향—수작업—작업방식의 변화—여성노동, 가정의 해체—가족 내 관계의 뒤집힘—여성의 공장 취업이 초래하는 도덕적 결과—초야권—어린이 노동—견습공법—뒤늦은 국가 개입—공장 보고서에 대한 서술—기나긴 노동시간— 야간 노동—불구자들—가벼운 외과 질환—노동의 성격—일반적인 체질 쇠약—특수 질환—증언—조기 노화—여성 체격의 특이한 결과—건강에 특히 해로운 노동 부문—불행한 사고—공장제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판단—공장법 제정과 10시간 노동법—노동의 권태와 무감각한 성격—노예제—공장의 통제—현물급여제도—오두막제도—1145년의 농노와 1845년의 자유로운 노동자 비교

산업의 나머지 부문들
양말 직조공—레이스 생산—면직물 날염업—벨벳 재단사—견직물 직조공—금속 제품—버밍엄—스태포드셔—셰필드—철공업—스태포드셔 북쪽의 도자기 산업—유리 제조업—수공업—런던의 여성복 양장점과 바느질

노동운동
노동운동의 시작—범죄—기계류에 반대하는 폭동—결사, 동맹 파업—결사와 쟁의의 영향—결사와 쟁의에 뒤따르는 불법 행위—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영국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의 성격—1843년 5월 영국 맨체스터 전투,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낯선 법에 대한 존중—인민 헌장—차티스트 운동의 역사—1842년 봉기—프롤레타리아트 인민 헌장파와 급진파 부르주아지의 결정적인 분리—차티스트 운동의 사회적 경향—사회주의—노동자의 보편적 입장

광업 프롤레타리아트
콘월의 광부—앨스턴 무어—철광산과 탄광—남성, 여성, 어린이 노동자—탄광 특유의 질병—얇은 석탄층에서의 노동—처참한 재앙, 폭발 사고 등—교육 상태—도덕성—광산법—광업 노동자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광업 노동자들의 운동—‘탄부 조합’—1844년 잉글랜드 북부에서의 대회—로버츠와 치안 판사 현물급여제도에 대항하는 투쟁—투쟁의 성과

농업 프롤레타리아트
역사적인 배경—농촌의 사회적 빈곤화—농촌 날품팔이의 상황—방화—곡물법 문제에 대한 무관심—교회에 대한 증오—웨일즈: 소토지 보유농—레베카 폭동—불안—아일랜드: 소토지 소작농—아일랜드 국민의 사회적 빈곤화— 범죄—합병 철회 운동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태도
영국 부르주아지의 도덕적 타락—금전욕—경제와 자유경쟁—위선적인 자선—곡물법 문제의 경제학과 정치학— 부르주아지의 법률 제정과 사법기관—의회의 부르주아지—고용주와 피고용인 법안—맬서스의 이론—구구빈법— 신구빈법—구빈원의 잔혹한 사례들—영국의 미래에 대한 전망

역자 후기
저자 소개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년 독일 라인 주 바르멘에서 방직 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나 바르멘, 맨체스터 등지에 있는 아버지 회사에서 일했다. 자본가이면서 공산주의자였던 엥겔스는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을 깊이 연구하였고 차티스트 운동 관련자들과도 교류하였다. 마르크스의 개인 생활을 적극적으로 돕는 한편 마르크스와 함께 제1인터내셔널 창건(1846년)했고, 마르크스가 죽은 후에는 국제공산주의 운동을 이끌면서 제2인터내셔널을 창건(1889년)했다. 1895년 런던에서 사망했다.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은 노동자들과 직접 교류했던 엥겔스가 1845년 당시에 산업의 심장부였던 맨체스터와 영국 북부를 답사하고 여러 보고서들을 종합한 후 자신의 이념을 투영하여 쓴 책이다. 그 밖에도 <<독일 이데올로기>>(마르크스와 공저), <<공산당 선언>>(마르크스와 공저),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반뒤링론>> 등을 썼다.

옮긴이 소개
이재만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편집자로 일했다. 옮긴 책으로는 <<역사와 역사가들>>(공역), <<공부하는 삶>>, <<제국의 폐허에서>>, <<영국 외교관, 평양에서 보낸 900일>> 등이 있다.

 

<<역사 古典 강의>> 강유원, 라티오 (#ISBN9788996056171)

첫 시간

Ⅰ 고대 지중해 세계와 폴리스 시대

제1강
진화를 멈춘 인류는 도구와 관념을 통해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문명 단계로 들어선다. 이 단계의 중요한 사건인 ‘신석기 농업혁명’ 이후 인류의 삶은 고통스러운 것이 된다. 역사는 이러한 고난의 기록이자 그 기록에 대한 통찰이다.

제2강
희랍 세계의 저 아래에는 지중해가 있다. 동 지중해, 즉 에게 해라는 지리적 조건 아래에서 자급자족을 할 수 없었던 희랍인들은 여기저기에 식민지를 건설한다.

제3강
희랍의 야망은 페르시아와 충돌하고, 페르시아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낳는다. 이 전쟁은 그것과 관계없어 보이는 자그마한 사건들의 묶음이자 그것들의 복합적 귀결이다. 이 모든 것을 기록하는 것은 역사가의 원초적 과제이다. 헤로도토스는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조사하고 연구한 탐사 보고서 《역사》를 쓴다. 이로써 그는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다.

제4강
마라톤 평원과 살라미스 앞바다에서 페르시아를 물리친 희랍인들은 이것을 ‘자유의 승리’로 규정한다. 승리는 그들에게 번영과 영광을 안겨 주지만 그들 사이에 깊은 불신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에 희랍인들은 뜻이 맞는 나라들끼리 동맹을 맺고 패권을 향한 쟁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제5강
한편에는 아테나이 쉬마키아가, 다른 한편에는 펠로폰네소스 쉬마키아가 있다. 이 두 동맹은 전쟁을 시작한다. 투퀴디데스는 이 전쟁의 결과를 기록함과 동시에 인간 활동의 법칙을 찾고자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다. 이로써 역사가의 반성적 과제를 수행한 투퀴디데스는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다.

제6강
아테나이는 스파르테의 공격에 맞서 ‘비기는 전쟁’을 시도하고, 적에게 ‘약탈당하지 않았다’는 심성으로 살아온 앗티케의 농민들은 도시로 피난을 간다. 전쟁 첫 해가 지난 후 치러진 장례식에서 아테나이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장엄한 연설을 한다. 그의 연설에는 희랍의 학교’로서의 아테나이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 흐른다.

제7강
전쟁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아테나이의 역병도 그중 하나이다. 이 역병은 아테나이 사람들의 인내심과 도덕심을 무너뜨리고, 동족을 향한 대량 살육의 추악한 전쟁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 젖힌다.

제8강
전쟁의 추악함과 잔혹함에 대한 투귀디데스의 서술은 냉정하다. 잔혹한 교사’로서의 전쟁. 전쟁은 말의 의미와 가치를 전도시키고, 그에 따라 기존의 객관적 질서를 파괴한다.

제9강
멜로스를 침략한 아테나이는 보편적인 선善을 가볍게 무시해 버린다. 광기에 휩싸인 인간들은 현실적 힘의 우위를 앞세운 제압의 논리에만 의존한다. 결국 아테나이 제국주의는 실패하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국제사회’라는 문제를 남긴다.

제10강
희랍의 폴리스들은 서로를 죽이면서 공멸의 길을 향해 가고 이 세계는 다시금 페르시아가 지배하지만 그것도 잠깐, 에게 해와 페르시아는 마케도니아 제국으로 흡수된다. 번영은 오만을, 오만은 싸움을 부르고 싸움에 지친 사람들은 편안함을 찾아 자신만의 세계로 파고든다.


Ⅱ 로마와 중세 가톨릭 제국 시대

제11강
영원한 제국’ 로마는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라 부르면서 ‘세계’를 제패한다. 이는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를 멸망시킨포에니 전쟁을 거치면서 굳건해졌으나 제국의 시민들은 농노나 다름없는 처지로 전락한다.

제12강
시민들은 이제 신민이 되어 강력한 일인자들 아래의 병졸이 된다. 일인자 중의 한 명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 군단을 이끌고 갈리아 정복을 시도한다. 그가 쓴 보고서 《갈리아 원정기》는 로마 군대의 식민지 침략과 지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여실히 알려 준다.

제13강
넓은 제국은 군대로써 지키지만, 계속되는 영토 확장으로 인해 ‘테크놀러지(네트워크)의 한계에 직면하면 통치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콘스탄티누스의 제국 분할은 이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었으나 제국에 대한 신민들의 충성심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제14강
로마제국 말기와 중세 초기는 엄밀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중세는 로마제국 말기의 지주-전사 연합체를 이어받아 그것을 밑바탕에 두고, 그 위에 기독교를 얹어서 로만 가톨릭 제국을 세운다.

제15강
제국 말기를 살았던 아우구스티누스의 눈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멸망할 운명에 놓인 것들이다. 진정한 나라는 신의 나라이다. 그의 《신국론》은 무너지는 ‘영원한 로마’를 대신할 ‘영원한 신의 도시’를 설파한다. 이로써 아우구스티누스는역사의 철학적 전망을 연다.

제16강
천국의 열쇠를 쥐었다고는 하나 기독교가 로만 가톨릭 제국의 통일성을 장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세속의 황제들은 교황에게 도전한다. 후기에 접어들어 여기저기에서 균열이 발생하면서 이 제국은 해체의 징후들을 드러낸다.

제17강
중세 제국 해체의 뚜렷한 표상 중의 하나는 신권에 반대하여 세속권의 우위를 선포한 텍스트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동서 교역의 산물이기도 한 14세기의 흑사병은 사회의 기반을 무너뜨리면서 기존 질서의 전반적 붕괴를 가속화한다. 동시에 새로운 체제의 맹아도 싹트기 시작한다.

제18강
로만 가톨릭 제국 말기의 사태를 가리킬 때는 르네상스’보다는 화약과 대포’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 시기 종교개혁의 주체였던 프로테스탄트는 새로운 시대의 정신적 지배에 대한 열망을 광신적으로 뿜어 낸다.

제19강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꾸 갈망하게 되는 유토피아 같은 것이다. 17세기 사람 비코는 ‘수학적 확실성’이라는 시대정신에 맞서 신의 섭리와 인문주의를 제창한다. 그의 《새로운 학문》은 비감한 텍스트이다.

제20강
신의 섭리를 폐기하지는 못했지만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자각은 비코에서 뚜렷하게 그 원리를 드러낸다. 진리 역시 태초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인간이 만든 역사가 진리인 것이다.


Ⅲ 근대 국민국가 체제와 세기말

제21강
종파 분쟁으로 시작된 30년전쟁은 정치적 쟁투를 숨기고 있었고, 근대적 영토 국가 성립의 씨앗을 뿌린다. 사람들은 기독교 공화국의 신도가 아닌 근대 국가의 ‘국민’이 되어 간다. 이는 국민군이 되는 것에서 시작한다.

제22강
종파 간의 피흘림은 종교의 위력을 무너뜨리고, 세계와 인간을 설명하는 근본 범주는 자연과학이 만들어 낸다. 과학과 기술은 긴밀하게 얽히고 유력자들의 후원과 제도적 뒷받침에 힘입어 사회적 권위의 자리에 오른다.

제23강
과학의 성과는 계몽주의자들의 노력을 거쳐 대중화된다. 이렇게 해서 이성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 이성의 원리를 적용하면 미래는 행복한 대상이 되리라는 낙관적 진보주의가 그들의 가슴을 뿌듯하게 하였다.

제24강
낙관적 진보를 소망하는 것은 인간의 완전가능성을 갈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소망에 들뜬 콩도르세는 역사 속에서 실현할 ‘완전한 인간’에 관한 계획서를 작성한다.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제25강
18세기는 현대 사회의 ‘기원’이다. 이 시기에 정치혁명,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통신 혁명, 사회혁명, 국제관계 혁명, 문화혁명 등의 힘이 퍼져 나간다. 세계는 과거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낙관적이고 찬연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듯하다.

제26강
새로운 세계’의 법칙은 ‘상품화’이다. 인간, 토지, 화폐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된 것이다. 상품이 된 이것들은 산업혁명이 이루어 내고 있는 기술혁신의 틀 속으로 들어가 이윤을 만들어 내는 원자재가 된다.

제27강
산업혁명은 근대 산업도시를 만들었고, 그 도시에는 ‘자유로운 노동자’가 살고 있다. 청년 엥겔스는 산업혁명의 도시 맨체스터와 노동자들을 관찰한다.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는 이 모든 것을 전형적으로 집약한다.

제28강
‘근대화’된 맨체스터는 근대 도시의 전형적인 공간 배치를 구현한다. 노동자들의 거주지와 삶은 체계적으로 배제되고 은폐된다. 그들에게는 낙관적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 ‘인간 정신의 진보’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닌 것이다.

제29강
산업도시에 사는 노동자들에게는 사회의 살인 행위가 벌어지는 반면, 부르주아계급은 이윤 추구를 위해 냉혹한 계산을 되풀이한다. 엥겔스는 노동자들의 총 봉기에 의한 부르주아계급의 타도라는 헛된 희망을 품는다.

제30강
19세기에 만개한 근대화는 수많은 찬양자를 거느리고 있다. 그들은 이윤 추구가 인간의 파괴적 정념을 다스리는 처방전이 되리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자본주의 정신은 ‘훌륭한’ 정신인 것이다. 이 자신감은 20세기에 이르도록, 아니 지금까지도 소멸되지 않는다.

제31강
프랑스혁명은 부르주아계급의 정치적 지배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태였으나 혁명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애국심으로 무장한 국민군을 탄생시킨 혁명은 계몽주의적 엘리트 지식인 콩도르세를 처형하면서 대중들에게 힘의 과시와 체제 장악의 기회까지 제공한다. 이로써 프랑스혁명은 혁명적 집단심성’의 위력을 드러내면서 ‘대혁명’이 된다.

제32강
기존 질서를 중시하는 이들은 대혁명의 여파에 노심초사한다. 영국의 버크도 그중 한 사람이다. 독일에서도 지식인들이 대혁명을 두고 논쟁을 벌인다. 어쨌든 혁명은 인류가 끝없이 향해 가야 할 이상을 하나 덧붙인다.

제33강
독일의 낭만주의자들은 인류 역사의 진행 경과를 고민한다.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는 설계도가 난무하는 법이다. 헤르더는 역사의 최종 목적을 내세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을 세속화한 듯한 《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은 인류 도야의 학교로서의 세계사를 말한다. 이로써 미래의 전망을 세우는 역사철학이 또 하나 등장한다.

제34강
마르크스는 엥겔스와 함께 1848년 혁명의 선언서, 《공산당 선언》을 작성한다. 그들은 근대 세계의 주인공인 부르주아계급의 등장 과정과 업적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이 문헌은 묘사로 가득 찬 듯하지만 미래의 전망을 세우기는 마찬가지다. 다가올 세상의 주인공이 신의 섭리나 인류 일반이 아닌 프롤레타리아계급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제35강
부르주아계급은 새로운 기술에 기반한 문명을 창출했고, 이로써 19세기는 그들의 시대가 된다. 부르주아 체제의 헤게모니를 부정하였기에 폭력으로 완벽하게 진압된 파리코뮌 같은 프롤레타리아계급 운동은 그러한 운동이 있었다는 것만을 역사가 기록할 뿐이다.

제36강
19세기 세계에서는 국민경제들 사이의 경쟁이 절정에 이른다. 이 시대의 주인공인 부르주아계급은 유한계급으로 변태하고, 세계에는 세기말적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솟아난다. 프롤레타리아계급 운동이 아직은 절멸되지 않은 상태이다.

제37강
프롤레타리아계급은 쉽게 단결하지 못한다. 그들이 공동의 계급의식을 갖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그들은 하나의 정체성만 가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프롤레타리아계급 운동 내부에서도 전선은 분열되었다.


Ⅳ 제1, 2차 세계대전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

제38강
절정은 파국에 앞선 것일 뿐이다. 두 번에 걸친 20세기의 세계대전들은 19세기 부르주아 전성기의 거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대전쟁’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은 인간의 진보와 이성에 대한 신념을 파괴했고, 인간은 국가라는 거대 행위자가 동원하는 부품으로 전락한다.

제39강
어떻게 해서든 파국과 절멸은 막아야 한다. 한가하게 이상주의를 말할 때가 아니다. 에드워드 카는 전간기에 쓰인 《20년의 위기》에서 질타와 처방을 제시한다. 그러나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전쟁은 자기운동을 가진 체제가 벌이는 최악의 결과다.

제40강
제2차 세계대전 이후는 미합중국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시대이다. 황금시대도 있었으나, 더욱 짧아진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의 순환고리는 다시 저점을 향하고 있다. 대규모의 체제 전환기라는 조짐은 있는데, 인간 행위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직 모르고 있는 듯하다.

마지막 시간

더 읽어 볼 책들

역사고
역사 古典 강의

지은이: 강유원
판형: 신국판; 488페이지(27,000원)
발간일: 2012년 6월 5일
ISBN: 9788996056171

 

<<역사 古典 강의>> 강유원, 라티오 (#ISBN9788996056171)

2009년부터 40주 단위로 공공 도서관에서 인문학 연속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철학자 강유원의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 <<인문 古典 강의>>가 인문학 전반에 걸친 기본적인 고전을 다루었다면, 이 책은 인문학의 세 분야인 문학, 역사, 철학 중 역사만을 다루어 좀 더 깊이 있는 인문학 공부와 역사.역사철학 공부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인문학 공부는 어떤 분야에서 시작하여도 무방하지만 저자는 역사 공부가 가장 먼저라고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 우리 자신의 역동적 상호작용에 대한 역사적 통찰이 있어야만 인문학 공부가 제대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말하는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나 팩트가 아니다. 이 책이 역사, 역사학, 역사철학의 성격을 모두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이 파악한 역사적 계기들을 중심으로 서양사를 서술하면서, 역사를 움직이는 힘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원천적인 모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탐구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과거의 수많은 유산들 위에서 현재의 삶이 영위되고 있음을 깨닫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도 따져 물을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앞날을 장기적으로 내다보는 안목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는 구조 속에서 우리 행위자들이 어떻게 행위하는가’에 따라 그 경로를 결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나아가는 세계 속에서 과거를 성찰하는 역사 고전 공부를 통하여 시대의 교양에 기여하는 ‘참다운 인문인’이 되는 것이자 ‘역사의 창조자’로 동참하는 것이다.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각 시대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 것들이거나 미래에 대한 역사철학적 전망을 탁월하게 제시하는) 역사 고전들을 읽어 나가면서, 서양의 정치체제와 국제관계의 흐름 속에서 ‘사회구조와 인간 행위자들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탐구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역사 고전들을 읽음과 동시에 이 고전들이 생겨난 시대적 맥락을 함께 살펴보는데 이를 위한 시대 구분은, 국제사회라는 문제를 제기한 ‘고대 희랍의 폴리스 시대’, 여러 가지 제도와 법률이 확립되기 시작한 ‘로마와 중세 가톨릭 제국 시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 체제와 지식 권력이 성립된 ‘근대 국민국가 시대’, 비약적인 기술의 발전과 위력으로 초래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현재의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 구분 아래 각 강의들에는 각 시대의 구체적인 전개 과정과 역사 고전에 관한 설명, 시대의 의의 등이 들어 있으며, 이것의 대강은 “차례”와 본문에 서술형 문장으로 안내되어 있다. “차례”에서 이 대강을 읽어 책 전체 내용을 개괄하고 본문으로 들어가면, 본문에서 제시하는 역사의 큰 흐름과 독서의 맥을 짚어 내기가 수월하다. 이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강의를 하면서 소개했던 “더 읽어 볼 책들”을 읽음으로써 이 책의 한계를 넘어서는 공부로 나아갈 수 있다.

 

차례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첫시간

I 고대 지중해 세계와 폴리스 시대

제1강 진화를 멈춘 인류는 도구와 관념을 통해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문명 단계로 들어선다. 이 단계의 중요한 사건인‘신석기 농업혁명’이후 인류의 삶은 고통스러운 것이 된다. 역사는 이러한 고난의 기록이자 그 기록에 대한 통찰이다.

제2강 희랍세계의 저 아래에는 지중해가 있다. 동지중해, 즉 에게 해라는 지리적 조건 아래에서 자급자족을 할 수 없었던 희랍인들은 여기저기에 식민지를 건설한다.

제3강 희랍의 야망은 페르시아와 충돌하고, 페르시아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낳는다. 이 전쟁은 그것과 관계없어 보이는 자그마한 사건들의 묶음이자 그것들의 복합적 귀결이다. 이 모든 것을 기록하는 것은 역사가의 원초적 과제이다. 헤로도토스는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조사하고 연구한 탐사 보고서 《역사》를 쓴다. 이로써 그는‘역사’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다.

제4강 마라톤 평원과 살라미스 앞바다에서 페르시아를 물리친 희랍인들은 이것을 ‘자유의 승리’로 규정한다. 승리는 그들에게 번영과 영광을 안겨주지만 그들 사이에 깊은 불신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에 희랍인들은 뜻이 맞는 나라들끼fl 동맹을 맺고 패권을 향한 쟁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제5강 한 편에는 아테나이 쉬마키아가, 다른 한 편에는 펠로폰네소스 쉬마키아가 있다. 이 두 동맹은 전쟁을 시작한다. 투퀴디데스는 이 전쟁의 경과를 기록함과 동시에 인간 활동의 법칙을 찾고자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다. 이로써 역사가의 반성적 과제를 수행한 투퀴디데스는‘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다.

제6강 아테나이는 스파르테의 공격에 맞서 ‘비기는 전쟁’을 시도하고, 적에게 ‘약탈당하지 않았다’는 심성으로 살아온 앗티케의 농민들은 도시로 피난을 간다. 전쟁 첫 해가 지난 후 치러진 장례식에서 아테나이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장엄한 연설을 한다. 그의 연설에는‘희랍의 학교’로서의 아테나이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 흐른다.

제7강 전쟁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아테나이의 역병도 그중 하나이다. 이 역병은 아테나이 사람들의 인내심과 도덕심을 무너뜨리고, 동족을 향한 대량 살육의 추악한 전쟁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 젖힌다.

제8강 전쟁의 추악함과 잔혹함에 대한 투퀴디데스의 서술은 냉정하다.‘잔혹한 교사’로서의 전쟁. 전쟁은 말의 의미와 가치를 전도시키고, 그에 따라 기존의 객관적 질서를 파괴한다.

제9강 멜로스를 침략한 아테나이는 보편적인 선善을 가볍게 무시해 버린다. 광기에 휩싸인 인간들은 현실적 힘의 우위를 앞세운 제압의 논리에만 의존한다. 결국 아테나이 제국주의는 실패하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국제사회’라는 문제를 남긴다.

제10강 희랍의 폴리스들은 서로를 죽이면서 공멸의 길을 향해 가고 이 세계는 다시금 페르시아가 지배하지만 그것도 잠깐, 에게 해와 페르시아는 마케도니아 제국으로 흡수된다. 번영은 오만을, 오만은 싸움을 부르고 싸움에 지친 사람들은 편안함을 찾아 자신만의 세계로 파고든다.

 

II 로마와 중세 가톨릭 제국 시대

제11강 ‘영원한 제국’ 로마는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라 부르면서 ‘세계’를 제패한다. 이는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포에니 전쟁을 거치면서 굳건해졌으나 제국의 시민들은 농노나 다름없는 처지로 전락한다.

제12강 시민들은 이제 신민이 되어 강력한 일인자들 아래의 병졸이 된다. 일인자 중의 한 명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 군단을 이끌고 갈리아 정복을 시도한다. 그가 쓴 보고서 《갈리아 원정기》는 로마 군대의 식민지 침략과 지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여실히 알려준다.

제13강 넓은 제국은 군대로써 지키지만, 계속되는 영토 확장으로 인해 ‘테크놀러지’(네크워크)의 한계에 직면하면 통치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콘스탄티누스의 제국 분할은 이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었으나 제국에 대한 신민들의 충성심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제14강 로마제국 말기와 중세 초기는 엄밀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중세는 로마제국 말기의 지주-전사 연합체를 이어받아 그것을 밑바탕에 두고, 그 위에 기독교를 얹어서 로만 가톨릭 제국을 세운다.

제15강 제국 말기를 살았던 아우구스티누스의 눈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멸망할 운명에 놓인 것들이다. 진정한 나라는 신의 나라이다. 그의 《신국론》은 무너지는‘영원한 로마’를 대신할 ‘영원한 신의 도시’를 설파한다. 이로써 아우구스티누스는 역사의 철학적 전망을 연다.

제16강 천국의 열쇠를 쥐었다고는 하나 기독교가 로만 가톨릭 제국의 통일성을 장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세속의 황제들은 교황에게 도전한다. 후기에 접어들어 여기 저기에서 균열이 발생하면서 이 제국은 해체의 징후들을 드러낸다.

제17강 중세 제국 해체의 뚜렷한 표상 중의 하나는 신권에 반대하여 세속권의 우위를 선포한 텍스트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동서 교역의 산물이기도 한 14세기의 흑사병은 사회의 기반을 무너뜨리면서 기존 질서의 전반적 붕괴를 가속화한다. 동시에 새로운 체제의 맹아도 싹트기 시작한다.

제18강 로만 가톨릭 제국 말기의 사태를 가리킬 때는 ‘르네상스’보다는 ‘화약과 대포’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 시기 종교개혁의 주체였던 프로테스탄트는 새로운 시대의 정신적 지배에 대한 열망을 광신적으로 뿜어낸다.

제19강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꾸 갈망하게 되는 유토피아 같은 것이다. 17세기 사람 비코는 ‘수학적 확실성’이라는 시대정신에 맞서 신의 섭리와 인문주의를 제창한다. 그의 《새로운 학문》은 비감한 텍스트이다.

제20강 신의 섭리를 폐기하지는 못했지만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자각은 비코에서 뚜렷하게 그 원리를 드러낸다. 진리 역시 태초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인간이 만든 역사가 진리인 것이다.

 

III 근대 국민국가 체제와 세기말

제21강 종파 분쟁으로 시작된 30년전쟁은 정치적 쟁투를 숨기고 있었고, 근대적 영토 국가 성립의 씨앗을 뿌린다. 사람들은 기독교 공화국의 신도가 아닌 근대 국가의‘국민’이 되어 간다. 이는 국민군이 되는 것에서 시작한다.

제22강 종파 간의 피흘림은 종교의 위력을 무너뜨리고, 세계와 인간을 설명하는 근본 범주는 자연과학이 만들어 낸다. 과학과 기술은 긴밀하게 얽히고 유력자들의 후원과 제도적 뒷받침에 힘입어 사회적 권위의 자리에 오른다.

제23강 과학의 성과는 계몽주의자들의 노력을 거쳐 대중화된다. 이렇게 해서 ‘이성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 이성의 원리를 적용하면 미래는 행복한 세상이 되리라는 낙관적 진보주의가 그들의 가슴을 뿌듯하게 하였다.

제24강 낙관적 진보를 소망하는 것은 인간의 완전가능성을 갈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소망에 들뜬 콩도르세는 역사 속에서 실현할 ‘완전한 인간’에 관한 계획서를 작성한다.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제25강 18세기는 현대사회의 ‘기원’이다. 이 시기에 정치혁명,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통신혁명, 사회혁명, 국제관계 혁명, 문화혁명 등의 힘이 퍼져 나간다. 세계는 과거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낙관적이고 찬연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듯하다.

제26강 ‘새로운 세계’의 법칙은‘상품화’이다. 인간, 토지, 화폐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된 것이다. 상품이 된 이것들은 산업혁명이 이루어내고 있는 기술혁신의 틀 속으로 들어가 이윤을 만들어 내는 원자재가 된다.

제27강 산업혁명은 근대 산업도시를 만들었고, 그 도시에는 ‘자유로운 노동자’가 살고 있다. 청년 엥겔스는 산업혁명의 도시 맨체스터와 노동자들을 관찰한다.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황》은 이 모든 것을 전형적으로 집약한다.

제28강 ‘근대화’된 맨체스터는 근대 도시의 전형적인 공간 배치를 구현한다. 노동자들의 거주지와 삶은 체계적으로 배제되고 은폐된다. 그들에게는 낙관적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 ‘인간 정신의 진보’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닌 것이다.

제29강 산업도시에 사는 노동자들에게는 사회의 살인 행위가 벌어지는 반면, 부르주아계급은 이윤 추구를 위해 냉혹한 계산을 되풀이한다. 엥겔스는 노동자들의 총 봉기에 의한 부르주아계급의 타도라는 헛된 희망을 품는다.

제30강 19세기에 만개한 근대화는 수많은 찬양자를 거느리고 있다. 그들은 이윤 추구가 인간의 파괴적 정념을 다스리는 처방전이 되리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자본주의 정신은 ‘훌륭한’ 정신인 것이다. 이 자신감은 20세기에 이르도록, 아니 지금까지도 소멸되지 않는다.

제31강 프랑스혁명은 부르주아계급의 정치적 지배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태였으나 혁명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애국심으로 무장한 국민군을 탄생시킨 혁명은 계몽주의적 엘리트 지식인 콩도르세를 처형하면서 대중들에게 힘의 과시와 체제 장악의 기회까지 제공한다. 이로써 프랑스혁명은 ‘혁명적 집단심성’의 위력을 드러내면서 ‘대혁명’이 된다.

제32강 기존 질서를 중시하는 이들은 대혁명의 여파에 노심초사한다. 영국의 버크도 그중 한 사람이다. 독일에서도 지식인들이 대혁명을 두고 논쟁을 벌인다. 어쨌든 혁명은 인류가 끝없이 향해 가야 할 이상을 하나 덧붙인다.

제33강 독일의 낭만주의자들은 인류 역사의 진행 경과를 고민한다.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는 설계도가 난무하는 법이다. 헤르더는 역사의 최종 목적을 내세운다. 아우구스티누스의《신국론》을 세속화한 듯한 《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은 인류 도야의 학교로서의 세계사를 말한다. 이로써 미래의 전망을 세우는 역사철학이 또 하나 등장한다.

제34강 마르크스는 엥겔스와 함께 1848년 혁명의 선언서 《공산당 선언》을 작성한다. 그들은 근대 세계의 주인공인 부르주아계급의 등장 과정과 업적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이 문헌은 묘사로 가득 찬 듯하지만 미래의 전망을 세우기는 마찬가지다. 다가올 세상의 주인공이 신의 섭리나 인류 일반이 아닌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제35강 부르주아 계급은 새로운 기술에 기반한 문명을 창출했고, 이로써 19세기는 그들의 시대가 된다. 부르주아 체제의 헤게모니를 부정하였기에 폭력으로 완벽하게 진압된 파리코뮌 같은 프롤레타리아계급 운동은 그러한 운동이 있었다는 것만을 역사가 기록할 뿐이다.

제36강 19세기 세계에서는 국민경제들 사이의 경쟁이 절정에 이른다. 이 시대의 주인공인 부르주아계급은 유한계급으로 변태하고, 세계에는 세기말적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솟아난다. 프롤레타리아계급 운동이 아직은 절멸되지 않은 상태이다.

제37강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쉽게 단결하지 못한다. 그들이 공동의 계급의식을 갖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그들은 하나의 정체성만 가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프롤레타리아계급 운동 내부에서도 전선은 분열되었다.

 

IV 제1,2차 세계대전과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

제38강 절정은 파국에 앞선 것일 뿐이다. 두 번에 걸친 20세기의 세계대전들은 19세기 부르주아 전성기의 거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대전쟁’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은 인간의 진보와 이성에 대한 신념을 파괴했고, 인간은 국가라는 거대 행위자가 동원하는 부품으로 전락한다.

제39강 어떻게 해서든 파국과 절멸은 막아야 한다. 한가하게 이상주의를 말할 때가 아니다. 에드워드 카는 전간기에 쓰인 《20년의 위기》에서 질타와 처방을 제시한다. 그러나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전쟁은 자기운동을 가진 체제가 벌이는 최악의 결과다.

제40강 제2차 세계대전 이후는 미합중국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시대이다. 황금시대도 있었으나, 더욱 짧아진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의 순환고리는 다시 저점을 향하고 있다. 대규모의 체제 전환기라는 조짐은 있는데, 인간 행위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직 모르고 있는 듯하다.

마지막시간

더읽어볼책들

라티오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책들은 판권 부분에 ‘QR코드’를 인쇄할 예정이며, 이는 2010년 4월에 출간된 <<인문 古典 강의>>부터 적용되었습니다. 이 코드는 사이트에서 해당 도서를 소개하는 글 아래에도 첨부되어 있습니다.

이에 관하여 궁금한 사항은 위키백과의 해당 항목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ko.wikipedia.org/wiki/QR_%EC%BD%94%EB%93%9C

이를 활용하고자 하는 분은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이트를 방문하실 수 있습니다.
예) http://www.scany.net/kr/

인문고전

인문 古典 강의

지은이: 강유원
판형: 신국판; 576페이지(27,000원)
발간일: 2010년 4월 15일
ISBN: 9788996056164

<<인문 古典 강의>> 강유원, 라티오 (#ISBN9788996056164)

도서안내
체계적인 기본 지식도, 현실적인 지혜도 주지 못하는 인문학 공부는 이제 그만두어야 할 때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과장하는 책이나 현실에 대한 표피적인 비판을 담은 조각 글들이 아니다. 인류의 오래된 지식에 관한 ‘총체적인 통찰’과 삶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담긴 책이 필요하다. 이런 책을 통해서라야만, 고전에 천착하여 당면한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인문학적 교양인’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신화(神化, 고귀한 삶)와 물화(物化, 천박한 삶)의 대립이라는 일관된 주제의식 아래, 고대와 근현대의 주요 고전을 선정하여, 텍스트 안팎의 역사와 사상을 종횡으로 설명하고 있다. 시대와 삶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고전읽기를 통해 진정한 의미의 자기계발을 하고자 하는 이, 고전 공부를 통해 인문 교양의 핵심을 얻고자 하는 이, 책과 세계 그리고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매개하고자 하는 이를 위해 쓰인 책이다.

여기서 다루는 고전들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문학 텍스트도 있고, 역사적 성찰에 기여하는 것도 있으며,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사유의 힘을 기르기 위한 것도 있다. 그러나 이 고전들은 역사적 배경으로도 철학적 내용으로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어떤 하나의 책에 관한 논의를 읽을 때에도 그것이 고립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 강의는 서구 서사시의 출발점이라 여겨지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시작한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서구의 유년 시대에 해당할 것이다. 이 시대는 물론이고 이어지는 시대에서도 사람들은 인간과 세계를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항상 우주 혹은 자연의 일부분으로서 인간을 보는 관점을 견지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안티고네>>,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거쳐 <<신곡>>에 이르는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과 세계가 하나가 되는 장쾌한 드라마를 경험할 수 있다.

<<군주론>>에서 <<방법서설>>, <<통치론>>, <<법의 정신>>을 거쳐 <<직업으로서의 정치>>, <<파놉티콘>>, <<거대한 전환>>에 이르는 과정은 서구의 근현대에 해당한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힘의 약진과 그것의 파멸을 목격한다. 인간은 대단한 존재이지만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할 때에는 결국 인간성을 벗어난 것, 즉 기계가 되고 만다는 것을 여실히 알게 된다. 이에 마지막으로 우리는 동아시아의 소박한 유년 시대가 담긴 <<논어>>를 들여다보면서 고대와 근현대를 잇는 자기반성의 여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차례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첫 시간

진정으로 명예로운 인간의 길 : 호메로스 <<일리아스>>
제1강 사건의 한가운데로
제2강 불멸하는 신, 필멸하는 인간
제3강 공동체를 구하는 ‘명예’
제4강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여 영원함을 얻은 자

신의 법과 인간의 법 :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제5강 삶 자체가 정치인 공동체
제6강 고귀함과 천박함
제7강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제8강 파멸을 향해 가는 인간

덕을 닦는다는 것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9강 훌륭한 시민의 조건
제10강 향락적 삶, 정치적 삶, 관조적 삶
제11강 실천적 지혜의 도야
제12강 완성된 인간의 자기관조

절대자와의 만남: 단테 <<신곡>>
제13강 기쁨에 가득 찬 시
제14강 훌륭한 말
제15강 신의 은총과 초인간적 경지
제16강 신을 닮은 인간

지극히 현실적인 것의 발견 : 마키아벨리 <<군주론>>
제17강 군주의 역량
제18강 행동하는 삶
제19강 무장한 예언자의 무력과 설득력
제20강 군주를 몰락시키는 미움과 경멸

인간주체의 허약한 확실성 : 데카르트 <<방법서설>>
제21강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
제22강 삶에 유용한 여러 지식
제23강 이성을 사용하는 방법
제24강 근대의 정신분열

물질세계의 소유 : 로크  <<통치론>>
제25강 물질주의적 인간관
제26강 자유주의 국가의 목표
제27강 재산으로 증명되는 인간의 정체성
제28강 세계의 중심을 차지한 ‘소유권’

이성주의에 대한 희미한 저항 :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제29강 인민의 도덕적 기질과 성향
제30강 인류학적 상대주의

폭력으로 다스려지는 세계 :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제31강 물리적 강제력, 근대국가의 수단
제32강 근대의 정치, 악마적 힘들과 관계맺기

기계화되는 인간 : 벤담 <<파놉티콘>>
제33강 이익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세계
제34강 내면화되는 감시의 시선

근대 세계의 파탄과 혼돈의 시작 : 폴라니 <<거대한 전환>>
제35강 자기조정시장의 파탄
제36강 물건으로 변해버린 인간

역사에게 묻는 인간 : 공자 <<논어>>
제37강 정치적 현실, 유가의 출발점
제38강 사심을 이겨내고 예로 돌아간다
제39강 “이 문화”의 보존과 계승
제40강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다

마지막 시간

저자소개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고전 공부를 해야한다고 믿는 지식주의자이지만, 시대와 역사를 모르면 모든 공부가 공허할 뿐이라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인문철학자’로서 철학, 역사, 문학, 정치, 종교,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유기적으로 탐구하고 있으며, 강의와 글쓰기, 번역을 통해 공동 지식과 공통 교양의 확산에 힘쓰고 있다.

<<책과 세계>>,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 <<주제: 강유원 서평집>> 등을 썼으며, <<인문학 스터디>>(공역), <<경제학-철학 수고>>, <<역사와 역사가들>>(공역), <<낭만주의의 뿌리>>(공역), <<헤겔 근대 철학사 강의>>(공역), <<홉스와 로크의 사회철학>>(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이 원고는 필자가 동대문구 정보화도서관에서 2009년 2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40회에 걸쳐 진행한 ‘고전 10권 읽기’ 강좌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서구 고대와 근대의 고전들을 아우르며 폭넓은 사유와 오늘날에 되새길 수 있는 지혜를 펼쳐보이고 있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고전은 다음과 같다.

호메로스, 일리아스(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소포클레스, 안티고네(천병희 옮김, 문예출판사)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강상진 외 옮김, 이제이북스)
단테, 신곡(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마키아벨리, 군주론(강정인 외 옮김, 까치출판사)
데카르트, 방법서설(이현복 옮김, 문예출판사)
로크, 통치론(강정인 옮김, 까치출판사)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고봉만 옮김, 책세상)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김진욱 옮김, 범우사)
벤담, 파놉티콘(신건수 옮김, 책세상)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홍기빈 옮김, 도서출판 길)
공자, 논어(미야자키 이치사다, 이산출판사)

2010년 4월 출간 예정

동양철학에 관한 분석적 비판

지은이: 김영건
판형: 신국판 변형; 400페이지(18,000원)
발간일: 2009년 6월15일
ISBN: 9788996056157

<<동양철학에 관한 분석적 비판>> 김영건, 라티오 (#ISBN9788996056157)

도서안내
흔히들 동양철학이라고 하면 논리적인 것과 무관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혹은 앞날을 점쳐주는 점성술과 같은 기술이라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철학은, 그것이 동양의 것이든 서양의 것이든 간에 올바른 근거와 지식을 바탕으로 타당성을 추론해 나가는 학문이다. 다양한 철학 분과가 있지만 적어도 이러한 논증과 추론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는 모든 철학이 동일하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이 생겨난 배경이 다르고 집중하는 문제들이 다르다 할지라도 서로의 접점이 생겨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공통점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영미철학을 전공한 저자는 동양철학의 주요 개념과 논증들을 차분하게 분석해 나간다. 이는 서양철학의 개념으로 동양철학을 이른바 ‘까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호한 구름 속에 있는 동양철학의 학문 내용을 밝혀서 더 잘 이해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음미하는 가운데 동양철학은 물론이고 서양철학의 근본문제들까지도 간명하게 정리된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이 책에서 세 가지를 얻을 수 있다. 우선 철학적 논증에 바탕을 둔 글쓰기는 무엇이며, 어떻게 쓸 것인가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 그에 이어 동양철학의 기본 개념들, 이를테면 성선설, 무위자연(無爲自然) 등과 같은 것에 관한 이해가능한 설명들, 마지막으로 서양철학 특히 분석철학의 논증 분석 방법론과 지식이 그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책은 ‘특정한 측면에서 만들어진 철학 입문서’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생각해 왔던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땅에서 철학한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갖는가’ 하는 것이었다. 저 멀리에서 일어나는 철학적 활동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참여자가 되어 이 땅에서 철학을 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모습이어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내가 공부했던 영미 분석철학은 비록 그 분석철학의 방법에 대해서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철학적 논증의 역할을 매우 강조한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그것은 철학적 문제에 대해서 그 해결 답변을 제시하고 그것이 어떤 근거에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지 입증하는 지성적 노력이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그 근거의 정당성을 반성하지 않은 채 어떤 철학적 주장이나 이론이 주는 진리성에 만족하는 것은 비판적인 철학적 활동을 단지 철학적 정보로서 간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그런 철학적 정보의 의미와 가치를 철학적 논증으로 구성하여 평가하고 음미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나는 아주 기본적이고 초보적인 이러한 생각을 통해 단지 분석철학 안에서 전개되는 문제들과 그 해결들을 구경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저자 서문 중에서)

차례
1장 맹자의 성선설
2장 도덕적 마음과 자연적 마음
3장 심외무물(心外無物), 심외무리(心外無理), 심외무사(心外無事)
4장 언어와 도
5장 노자의 형이상학적 실재론과 장자의 내재적 실재론
6장 동양철학과 글쓰기
7장 노장의 사유 문법과 철학적 분석
8장 유가의 현대화와 지성 주체
9장 모종삼의 도덕적 형이상학과 칸트
10장 모종삼의 ‘지적 직관’과 칸트의 심미성
11장 유(類)의 자연성과 규약성
12장 보편철학과 한국 성리학

저자 소개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있다. 저서는 《철학과 문학비평, 그 비판적 대화》, 주요 논문으로 <선험적 심리학과 선험적 언어학>, <칸트의 선험철학과 퍼트남의 내재적 실재론>, <칸트의 선험철학과 셀라스의 과학적 실재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