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도서 소개] Revolution? A garden party

혁명? 가든파티
Diane Purkiss

Going DutchLisa Jardine, Going Dutch: How England Plundered Holland’s Glory, HarperPress, 2008.

1688년 11월 1일, 외침이 없었던 영국은 500척의 군선, 20,000명의 군사, 20,000명 이상의 해군으로 이루어진 외부세력에게 침공받았다. 그리고 오렌지공이라 불리우는 윌리엄(William of Orange)[또는 오라네 공 빌렘]이 현 통치자로부터 왕좌를 차지했다. 그 외부세력은 네덜란드였는데, 이 흥미로운 책에서 Lisa Jardine은 영국에서 아무도 주의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한 검토를 시도한다.

왜 윌리엄은 그가 영국인이라도 되는양 사람들에게 환대받았던 것일까? 부분적으로 이는 선전활동의 승리였다. 윌리엄은 명쾌하고 지적인 술어로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는 서한들을 써왔다. 이는 또한 조직의 승리이기도 했다. 그는 반년동안 이 조직과 함께 군사력을 키워왔다. 여기에 더하여 제임스 2세를 둘러싼 추문도 있었는데, 그의 왕비가 몇차례의 유산 끝에 출산한 건강한 후계자가 왕의 대타를 왕비의 침실로 몰래 들여보내 얻은 자식이라는 소문이 사람들 사이에 돌았던 것이다. 이런 일들이 있었던 탓에, 후계자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윌리엄은 자기자신을 비롯하여 모든 이들에게서 제임스의 후계자로 기대를 받아왔다.



윌리엄은 영국의 권좌를 차지한 후 정원에 대한 자신의 관심에 따라 성 제임스 파크(St James’s Park)를 가로지르는 미래의 궁전 배치를 직접 검토하였다. 그러나 Jardine은 학적이고 세련된 이 문화사에서 이미 다른 데서 여러 번 다루어진 바 있는 이 문제가 가진 미묘한 점을 보여준다. 전(前) 세기동안에 영국과 네덜란드는 인공물, 서적들, 그리고 정보를 비롯한 문화와 과학의 교류로 연결되어 왔는데, 이것이 윌리엄과 그의 군사들에 대한 영국인들의 수용의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교류에서 핵심적인 인물은 Constantijn Huygens였는데, 이는 최근까지도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Jardine은 그러한 상황을 변화시키려고 결심한다. 우리가 아는 Huygens는 광범위한 인문교육을 받은 박식가로 비올라의 전문가이자 고급 예술품의 수집가였으며 망원경과 현미경에 관심이 깊은 아마추어 과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Jardine 자신과 비슷한 인상을 준다. ‘위대하고도 좋은’이란 말은 그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정치계에서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숨은 실력자였다.



Jardine은 Huygens에 의해 촉진된 문화 교류를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들을 훌륭하게 연구했다. 우리는 Rubens와 Dudley Carleton이 교류로 연결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대리석상’ 또는 조각상의 교류품은 Rubens의 캔버스를 위한 것이었다. 영국 내전은 네덜란드인들이 추방되어 빈털털이가 된 왕당파들의 수집품들을 찾아나서게 자극했고 동시에 망명자들은 자신들의 재보를 가져와 네덜란드의 시장에 내다 팔았다. 우리는 Huygens에 의해 그 매력과 공포가 지적된 Rubens의 뛰어난 그림인 ‘메두사의 머리’를 볼 수 있다.



전쟁 이후 네덜란드인들이 사들인 많은 그림들은 Huygens와 특히 Van Dick의 안락한 궁정에 들어간 네덜란드인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예술품 중개인이자 음악가인 Nicholas Lanier, 보석상이자 다이아몬드 상인인 Gaspar Duarte와 같은 다른 핵심적인 인물들은 예술품의 교류연합을 굳건히 했다. Huygens는 그러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Huygens의 아내인 Susana는 Huygens에 못지않은 광범위한 인문적 학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Rene Descartes와도 서신을 주고 받았다. Descartes의 [[성찰]]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그에게 전달할 수 있기 전에 비극적으로 요절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Jardine에 따르면, 네덜란드인은 자신의 부유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Huygens도 자신의 부와 권력 그리고 영향력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는 사실상의 관저였던 저택을 지었으며 이를 부유하거나 기발한 생각을 지닌 모든 이들에게 제공했다.

그는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변칙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엔트워프(Antwerp)의 시민들 역시 호경기를 누리고 있었으며, Huygens의 친구이자 조력자인 Duarte 또한 장엄한 저택을 저택을 즐겨 지었다. 엔트워프에 온 별난 영국인 William과 Margaret Cavendish는 그곳에서 부유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전쟁의 소란 뒤에 정착했던 그들은 저택을 꾸미기 위해 네덜란드 신고전주의와 심지어 장인들을 들여왔던 영국인 망명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영국인들은 Huygens를 비롯한 네덜란드인들과 저택,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원은 자신들을 파괴하려는 사태로부터의 불확실한 도피처라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영국인들은 전쟁을 통해서 그리고 네덜란드인들은 육지를 잠식해오는 바다의 끊임없는 위협을 통해서 이런 생각에 도달했음에도 말이다. 시인 Andrew Marvel은 네덜란드를 가리켜 ‘바다의 혼란스런 분화구’라 불렀지만 1621년 Thames강이 범람한 이래로 네덜란드의 치수 기술은 영국에서도 쓰이곤 했다. 영국인과 네덜란드인은 과학에 대해서도 교류했다. Hooke의 발견과 그 의미에 대한 논쟁은 국경을 넘나들며 이뤄졌는데, Hugens는 이 논쟁에서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상업 또한 경쟁과 교류의 계기여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적수인 영국의 동인도회사와 우열을 다투었다. 궁극적으로, 더할나위없이 가장 주목할만한 결과는 현재의 New York인 New Amsterdam에 있는 Manhattan의 식민지화였다. 그 거대한 건축물, 예술 작품들, 그리고 공원들은 영국인과 네덜란드인 개척자 모두를 만족시키게 될 터였다.



영국인들은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의해 자신들이 틀지워졌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좁은 바다를 건너있는 가까운 이웃에 대해서는 무시한다. 그러나 이 중요한 저작을 통해서 영국은 네덜란드의 역사적 소산이라는 생각이 뚜렷해진다. 신고전주의 건축물에 대한 애호에서부터 경험적 방법에 대한 열중 그리고 정원에 대한 열광까지 영국인들이 ‘영국적’이라 생각하는 모든 특징들은 네덜란드인들과 공유되고 있거나 그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것이다. 영광스러움 못지 않게, 윌리엄과 메리에 의해 얻어진 네덜란드의 조세 수입과 부는 네덜란드의 힘과 명성을 갉아먹었던 반면에 영국의 부를 위한 기초를 다지는 데 쓰여졌다. 이것은 Jardine이 책의 부제에서 영국이 네덜란드의 영광을 ‘빼앗았다’고 말한 까닭을 설명해주지만, 그 자신은 문제가 이것보다 좀 더 미묘하다고 덧붙인다. Jardine의 지적에 따르면, 모든 영국인들은 오래 전 네덜란드에 갔으며, 이제 그것을 말하고 낮은 땅의 똑똑하고 건장한 남녀에 대한 문화적 과거를 되짚어 볼 때가 되었다고 한다. 이 흥미로운 연구는 영국이 지닌 네덜란드의 유산에 대한 보다 깊은 탐구에 영감을 불어넣게 될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출처: Independent Books, 2008. 4. 18.

번역: 라티오 출판사

|국내 관련 도서|
리사 자딘(지음), 이선근(옮김), [[상품의 역사Worldy Goods: A New History of the Renaissance (1996)]], 영림카디널,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