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에로스를 찾아서>

지은이: 강유원
출판사: 라티오
분야: 인문학/철학 일반/미학
발행일: 2017년 12월 05일
ISBN: 979-11-959288-2-8  03100
판형: 188*128(B6)
가격 및 쪽수: 14,000원/ 148쪽

 <<에로스를 찾아서>>

결핍과 갈망이라는 이중적 계기, 에로스에 관한 학적 탐구

인간은 결핍을 자각할 때에야 비로소 무엇인가를 갈망하며, 그러한 갈망이 있을 때에야 생성도 가능하다. 욕망은 생명력이다. 그러한 욕망은 어디를 향해 가는가. 그 욕망이 단계를 높여 가면서 궁극적으로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은 결핍과 갈망이라는 두 가지 모순적 계기를 끌어안는 에로스에 관한 학적 탐구이다. 에로스를 학적으로 탐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다시 모순적인데, 에로스는 인간의 주관적 정념이고, 에로스를 탐구하는 것은 그러한 정념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에로스를 객관적으로 관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로스를 학적으로 탐구하기 위해서는, 에로스의 궁극적인 대상이 ‘아름다운 것’이며 그 아름다움은 ‘좋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렇게 미美와 악惡, 또는 선善이 연관되면 미학은 철학이 된다. 대표적인 예가 플라톤이다. 플라톤에서는 아름다운 것과 선한 것이 동등한 위치에 있다.

이 책은 플라톤, 플로티노스, 쿠자누스, 피치노, 헤겔, 소동파, 헤시오도스, 호메로스, 발터 벤야민, 아르놀트 하우저, 에른스트 카시러 등의 글을 통해 ‘아름다움이란 무엇이고 아름다움의 기준은 객관적으로 가능한가’ 등에 대해 성찰하고 있으며, 시대적 연관 속에서 고전주의, 바로크, 매너리즘, 인상주의 등의 철학적 근원도 제시한다. 이에 독자는 미학과 예술철학의 주요 문제들을 사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적 체험의 이해에도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소개

강유원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철학, 역사, 문학, 정치학, 사상사 등에 대한 탐구 성과를 바탕으로 공동 지식과 공통 교양의 확산에 힘써왔으며, 최근에는 실천학과 이론학 체계 일반의 정립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 《책과 세계》(살림, 2004),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라티오, 2008), 《인문 古典 강의》(라티오, 2010), 《역사 古典 강의》(라티오, 2012), 《철학 古典 강의》(라티오, 2016), 《문학 古典 강의》(라티오, 2017), 《숨은 신을 찾아서》(라티오, 2016) 등을 쓰고, 《헤겔 근대 철학사 강의》(공역, 이제이북스, 2005), 《경제학 철학 수고》(이론과실천, 2006), 《철학으로서의 철학사》(공역, 유유, 2016)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차례

하늘 한구석의 미인을 바라본다.

진실처럼 들리는 거짓말,

무사 여신이여!

당신은 아마도 알고 계시겠지만

어떤 놀라운 것,

모든 좋은 것,

이런 건 조금도 겪어 본 적이 없네.

불꽃에서 댕겨진 불빛처럼 혼 안에 비로소 생겨나서,

때는 밤이었다.

아름다움을 넘어선 아름다움,

닮은 것은 닮은 것에서 태어나니…

예술적으로 재현한 것,

끝없는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게 해주시길 빕니다.

사랑이 당당하게.

위기,

탈취,

정신은 감각적인 것에 발을 내딛으면서도

이후 심하게 아팠다.

당신이 한 말은 모두 도리에 맞는 말이오!

주해註解

 

■ 본문 중에서

“인간은 갈망에서 다른 인간의 몸을 탐하고, 그 몸에서 흘러나 오는 것을 들이마시고, 그것을 마시고 자신을 발산함으로써 무아無我의 순간을 향해 간다. 그리하여 그때까지는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의 차원에 올라선다. 이는 갈망에서 시작되었으니 에로틱erotic하고, 전혀 낯선 것이니 엑조틱exotic하며, 절정의 환희를 경험하는 것이니 엑스타틱ecstatic할 것이다.”(38쪽)

“피치노는 플라톤의 《향연》을 읽으며, 그 형식을 그대로 본떠서 또 하나의 ‘향연’을 만들어 내며 사랑, 그것도 경건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신에 대한 사보나롤라의 불 타는 사랑에 놀랐는지, 피치노의 사랑은 따스하다. 성급하지 않다. 물론 피치노도 사보나롤라와 마찬가지로 신과 인간, 신과 세상 사이의 완전한 일치와 교류를 시도하는데, 그 교류의 매개는 역시 사랑이다. 다만 피치노는 뜨겁지 않으며 활활 타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치노는 스승으로서의 소크라테스를 찬양한다. 알키비아데스를 흉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피치노가 사랑하는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다. 인간을 사랑하면 곧바로 절망을 대가로 얻게 되지만 신을 사랑하는 것은, 죽도록 충족에 이를 수 없다는 본연의 양상 때문에 죽을 때까지 사랑을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그리하여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영원한 사랑을 구가하는 극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51쪽)

“지금은 이렇게 그럴싸한 말들로써 인상주의를 치장하는 우리들이 과연 19세기에 그것을 마주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울퉁불퉁하던 세계가 돈 앞에 무너져 평탄하게 되어 가던 세계에서,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 때문에 애국심이 파탄나는 세계에서, ‘파리코뮌’이라 불리는 계급투쟁의 시가지 전투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은 유례없는 혹평을 견디면서 자신들의 그림을 고수했다. 분명 그들은 19세기라는 시대의 혼란함과 교감하고 있었고, 당대의 ‘높으신 분’들은 시대를 살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예술가는 정치적 권위도 후원자도, 더 나아가 관객도 믿어서는 안 되는, 오로지 자신만을 믿어야 하는 시대였던 것 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믿었던 자들은 후대의 평가를 얻어 불멸을 획득하게 되었다.”(67쪽)

“동파가 바라보는 것은 ‘하늘 한구석의 미인’이다. 이는 동파의 마음속에 그리고 있던 실제의 미인이 하늘에 투사된 것일 수도 있고, 인간세人間世를 벗어난 이상적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이해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초의 무격은 하늘과 대화하였고, 동파는 초의 무격을 떠올리며 하늘을 바라본다. 무격은 시인에게 영감을 주었고 시인은 그 영감으로써 시를 내놓았으며,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 시를 읽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동파의 시를 읽는 이들은 무엇을 읽는 것인가. 초의 무격들이 전해 준 하늘의 이야기를 읽는 것인가, 아니면 동파의 시를 읽는 것인가, 아니면 시를 읽을 때 자신 안에서 생겨나는 감흥을 느끼고 있을 뿐인가.”(79쪽)

“체계공간 안에서 보느냐 집합공간 안에서 보느냐에 따라 세계는 다르게 파악되므로, 사물을 어떤 방식으로 보느냐는 화가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단초라 할 수 있다. 집합공간 안에 놓인 사물들은 그것들 각각의 의의를 독자적으로 표현하며, 그것들 사이의 빈 공간에도 일정한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체계공간 안에 사물을 놓는 원근법에 따르면 사물들은 하나의 시점에 수적으로, 또는 연속량(Quantum continuum)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 시점을 중심으로 현실의 모든 사물들이 추상화되어 정돈된다. 후대의 인상파 화가들이나 입체파 화가들은 그러한 이상화된, 또는 신적 입장에 올라선 시점을 폐기하고 눈앞에 놓인 현상들의 순간적 집합 인상(또는 인상 묶음)을 나열하거나, 그러한 다양하고 다면적인 인상을 묶어서 전체를 재구성해 보려 한다. 이들의 시도는 근본적으로 ‘르네상스 고전기’를 지배한 양식원리인 원근법과의 연관 속에 있는 것이다.”(1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