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인간의 지능을 앞설 것이라는 기계적 사실의 시대,

인간만이 읽고 쓸 수 있는 ‘진실’에 관하여

 

 

책 읽기는 물론 모든 것의 이유로서 ‘흥미’가 거론되는 요즘이지만, 읽고 쓰는 행위의 근본 목적과 방법은 ‘진실의 소통’이다.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대화뿐 아니라 문자나 이미지로 고정되어 있는 텍스트도 진실에 근거하지 않으면 인간 정신의 매개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명백한 명제를 터득하기 위해 이 책은, 우리가 읽고 써야 할 진실의 의미, 그 진실의 표현 방법을 찾아 나선다.

이러한 여정은 진실한 한 문장을 쓰고자 세계와 인간을 치밀하게 탐구한 고전 작가들과 진실을 생성하고 존속시키고자 헌신했던 인물들에 관한 탐색이다. 이는 ‘진실’의 의미를 음미하게 하는 이야기들일 뿐만 아니라, 진실한 위인들에 관한 전기이자 그들 작품에 관한 서평이며, 실제로 우리가 어떻게 진실에 접근하여 읽고 쓸 수 있는지에 관한 지침들이다.

플라톤의 말처럼 “우리가 어떤 것에 진실성을 혼합해 넣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실로서 생성될 수 없을 것이며, 생성된다 해도 존속할 수 없을” 것이기에, 진실의 생성과 존속의 방법에 대한 이러한 배움은 우리를 참된 지성과 감성으로 이끄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진실은 사실이 아니다

사실과 진실은 서로 밀접하지만 같은 것이 아니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표현이 사실과 진실의 미묘한 차이를 보여 준다. ‘거짓말’이 겉으로 드러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면 ‘선의’는 그 속에 깃든 진실이다. 역사학자 존 아널드는 “역사(history)란 진실한 이야기(true story)”라고 정의한다. 역사는 사실(true) 자료를 바탕으로 삼으면서도, 그 공백과 빈틈을 역사가의 해석(story)으로 채운다. 우리가 평소에 하는 일도 넓은 관점에서는 역사가의 일과 비슷하다. 우리는 사실의 파편들 사이를 이야기와 상상으로 채우면서 삶이라는 서사를 이어 나간다.

 

진실은 때로 허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위대한 작가들이 알아야 했던 시대의 진실은 작품의 진실이 되었다. 진실한 이야기는 실제 일어난 일을 그대로 기록한 글일 수도 있고, 글쓴이가 개연적 요소를 추가하여 재구성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진실을 드러내는 데 사실이 필요하다면 필요한 만큼 사실을 적으면 된다. 진실을 밝히는 데 허구가 필요하다면 필요한 만큼만 이야기를 지어 내면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기쁨이나 고통만큼 수많은 보편적 진실이 존재한다

위대한 작가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깊은 진실을 본다. 삶과 세상을 통찰하는 직관이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온갖 수고와 위험을 감수하며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노고를 쏟아붓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대한 작가들이 우리에게 알려준 진실한 이야기 안에는 수많은 삶의 진실과 세상의 보편적 진실이 담겨 있다.

 

완전한 하나의 진실은 없기에 변화무쌍한 진실에 관한 탐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진실도 알려고 하는 만큼만 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렇게 보면 이런 면이 보이고 저렇게 보면 저런 면이 보여서 완전한 하나의 진실은 보기 어렵고, 그때그때 달라 보이기도 하는 것이 진실의 모습이다. 세계와 삶의 진실은 반듯한 형태보다는 울퉁불퉁한 모습에 더 가깝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참된 것을 하나로 일관되게 꿰뚫어 보려는 적극적인 노력만큼이나, 쉽게 단정짓지 않고 끝까지 여러 가능성을 두루 알아보려는 열린 태도 역시 중요하다.

 

■ 지은이 소개

이강룡은 인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학생이자 선생이다. 학문의 경계를 나누지 않고 폭넓은 지식을 탐구하고자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논픽션 작품들을 좋아하고, 픽션만이 지닌 표현력과 전달력에도 주목한다. 《한 권으로 읽는 세계사》, 《과학의 위로》, 《글쓰기는 한 문장부터》,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같은 교양서를 썼고, 《퍼펙트 레드》 등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정보통신문화신서 공모전에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고, DMZ국제다큐영화제 백일장 및 창비 청소년 글쓰기대회 심사위원, EBS 글쓰기 논술 강사로 활동했다. 고등학교 국어 및 세계사 교과서와 지도서 약 20종에 글이 실려 있다.

 

■ 차례

프롤로그

제1부 진실을 쓰기 위하여

  1. 세상을 즐겁게 관찰하다_요한 볼프강 폰 괴테
  2. 위대한 영혼들과 교감하다_슈테판 츠바이크
  3. 보편적 인권을 소명하다_에밀 졸라
  4. 실천을 통해 이론을 완성하다_프리드리히 엥겔스
  5. 모호한 표현을 배제하다_조지 오웰
  6. 사실과 허구를 화해시키다_헤밍웨이와 스타인벡
  7. 실존의 불안을 직설하다_오에 겐자부로
  8. 절박한 순간을 듣고 또 듣다_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제2부 진실을 읽기 위하여

  1. 역사성을 토대로 문자 해독하기
  2. 흔적으로 실체 상상하기
  3. 클리셰에서 상식의 지혜 익히기
  4. 정보를 통해 명료한 지식 넓히기
  5. 통계와 확률로 사실적 미래 전망하기
  6. 진짜를 가짜로 이해하기

에필로그

작업 노트_ 독서 목록을 대신하여

 

■  본문 속에서

괴테가 세상 만물을 두루 관찰하며 세계의 거대한 연관성을 파악하고자 했다면,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위대한 인물들의 영혼을 바라보는 것이 세상을 아는 길이라고 믿었다. 한 민족에 대해서, 그리고 한 시대에 대해서 가장 깊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책을 통해서도 아니고 답사를 통해서도 아니며, 오로지 그 시대의 훌륭한 인물들을 만나 우애를 쌓아 감으로써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런 신념이 있었고 실제로 그것을 실천했기에 위대한 평전 작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_28쪽

스타인벡은 만년에 쓴 에세이 《아메리카와 아메리카 인》에 이렇게 적었다. “모자를 쓰는 방법은 무수히 많지만 철모를 쓰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여러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문구로 시작되는데, 스타인벡이 보기에 전쟁이 개입된 세상에서 삶은 그 반대다. 모자를 쓰는 다양한 방법이 평화로운 세상의 다양한 행복이라면, 철모를 쓰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전쟁 시기의 획일화된 불행이다. 톨스토이가 본 것과 스타인벡이 본 것, 둘 중 어느 것 하나만이 진실인 것은 아닐 것이다.__87쪽

행위 주체인 주어를 숨기는 화법은 진실을 감추려는 자들이 자주 쓰는 수법이다. 행위 주체를 모호하게 표현하여 독자의 판단 기준을 흐리게 만든다. ‘오해가 있었다’고 시작하는 사과문은 사과하기 싫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어느 단체에서 사과 성명을 내면서 ‘많은 분들이 고통과 불편을 당하신 점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같은 식으로 가해자인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기사에 ‘~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같은 피동형 구절이 보이면, 기자가 익명으로 자기 의견을 내세우고 싶은 거라고 보면 된다. 중요한 대목에 피동형 표현이 많이 나온다면 숨겨야 할 뭔가가 있다는 뜻이다. 정치 영역에서 언어 표현은 훨씬 더 다의적이고 미묘하며 민감한 문제가 된다._96쪽

흔적조차 보이지 않을 때에도 뭔가 중요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없음으로 있음을 추정하는 일이다. 빔 프로젝터 제품 광고 중에 ‘캠핑장을 영화관으로!’ 같은 문구가 보인다면 일단 성능에 대한 눈높이는 조금 낮추고 제품을 고르시기 바란다. 밝은 데서도 잘 보일 정도로 성능이 좋은 프로젝터라면 굳이 캄캄한 밤을 배경으로 삼아 광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비싼 프로젝터들 광고를 한번 보라, 대부분 대낮 회의실이 배경일 것이다. 모든 상품 광고의 속성이 그렇다. 장점처럼 보이는 것만 드러내지 단점이 될 만한 것을 일부러 표현하진 않는다. 일부러 감출 거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말해 줄 리도 없는 것이다. 가격표가 안 붙어 있다면 일단 저렴한 상품은 아니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물건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판매자가 말하는 것들이 아니라 말하지 않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_148쪽

이솝 우화가 펼쳐 보이는 진실이란 인생에서 중요한 덕목과 지혜가 아니라, 살면서 눈앞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므로 매사에 그저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는 경고뿐이다. 이솝 우화에 가장 많이 나오는 구절이 ‘~인 줄도 모르고~ 하다니 내가 이런 일을 당해도 싸지!’라는 뒤늦은 후회라는 점을 기억하자. 그럼에도 이야기들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메시지가 있는데, 사람의 천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라서, 사람을 바꾸어 내 편으로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사람을 잘 가려서 곁에 두는 것이 더 안전한 생존법이다. 이솝 우화에서는 개과천선 같은 순진한 기대와 바람은 거의 실현되지 않는다. 개울에 떠내려가는 개미에게 나뭇잎을 준 비둘기가 나중에 개미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구하는 아주 드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선행에 대한 보상을 받는 이야기보다는 선행을 베풀었음에도 배신을 당하는 이야기가 훨씬 더 많다._154쪽

철학자 칸트는 절대 불변하는 뉴턴의 평평한 시공간 개념을 굳게 믿었고, 그런 확고한 믿음 위에 《순수 이성 비판》을 썼다. 학문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칸트가 보편타당한 토대로 여겼던 전제들은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다는 점이 밝혀졌다. 뉴턴의 절대적 시간과 공간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른 시공간 개념으로 논박되었고, 유클리드의 절대적 기하 공간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으로 대체되었으며, 논리학과 수론의 완전무결함과 보편성은, 모든 체계에는 증명 불가능한 명제가 항상 존재함을 증명한 쿠르트 괴델(불완전성 정리)에 의해 무너졌다. 원인과 결과에 따른 연속적 운동과 인과율의 세계는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관점에 자리를 내주었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내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것이 우리 인류가 밝힌 냉정한 현실이요 진실이다.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모르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새로운 것을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상력과 가능성에는 한계가 없다._180쪽

다수결은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의사 결정 방식으로 언뜻 보면 공정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불합리한 점도 품고 있다. 선거에서 어부지리로 당선된 최악의 후보를 ‘콩도르세 승자’라고 부른다. 프랑스 혁명기에 활동했던 정치학자이자 수학자인 니콜라 드 콩도르세는 투표 과정의 합리성을 수학적으로 해명하려고 애썼는데, 다수결 방식에 불합리한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반드시 포함된다는 점을 알아냈다. 1972년에 노벨상을 받은 미국의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 역시 다수결의 원리가 합리적 의사 결정을 낳지 못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겉으로 공평해 보여도 모순을 품고 있는 일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_186쪽

 

누가 《국가》를 두려워하랴

절대 고전 《국가》를 읽는 새로운 시대정신과 방법론

 

정치 체제에 관한 최고 원천源泉들을 시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우리 시대, 사상사로 읽는 원전’ 시리즈의 둘째 권은, 플라톤의 대화편 중에서도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알려진 《국가》에 관한 탐구서다. 《국가》는 그에 관한 많은 연구서와 해설서가 있음에도 그 방대한 분량과 심오한 주제들로 인해 일반 독자들이 제대로 읽어 내기가 쉽지 않다. 

이에 저자는 플라톤의 강조점에 따라 목차를 재구성하여 《국가》 원문을 상세히 요약 및 해설하고 있으며, 올바른 공동체 이념을 고민해야 하는 우리 시대로부터의 날선 통찰도 담아내고 있다. 특히 ‘쾌락이라는 참주’에게 휘둘리던 아테나이 민주정에 대한 플라톤의 회고적 통찰로부터 올바른 민주주의 이념 실현의 현실적 대안까지도 찾아내고 있다. 여기에는 플라톤이 공동체의 최고선이라고 생각했던 ‘바람직한 이득’에 관한 주제의식이 큰 흐름을 차지하고 있는바, 이 주제의식은 오늘날 ‘국가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잘 삶’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책은, 원문 전체를 충실하게 읽어 냄으로써 《국가》 텍스트의 탁월함을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가 생겨난 시대 속에서의 생명력과 우리 시대와의 연관성을 검토해 나감으로써 《국가》를 읽는 새로운 관점과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를 읽는 관점: 공동체와 개인의바람직한 이득 관한 현실국가론

플라톤의 《국가》는 수많은 고전 사상가들의 인식과 영감의 원천으로서 다른 어떤 고전보다도 우선적으로 읽어야 할 텍스트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한국에 사는 우리가 이 오래된 대화편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차적으로는, 《국가》가 민주정에 반대하는 주장으로 가득 찬 텍스트인지 아니면 참다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알려 주는 텍스트인지와 같은 관심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국가》는 시민이 주권자인 민주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민주 정체에서만 제기될 수 있는 정치적 문제들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 정체에 살고 있는 우리가 그 어떤 정치사상 텍스트보다도 《국가》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대다수의 정치사상가들은 당대 공동체의 대다수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평등하게 추구할 수 있는 곳에서 살지 않았으므로 이들의 사상은 오늘날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의 실질적인 정치사상 고전이 되지 못한다. 반면에 플라톤의 《국가》는 우리와 비슷한 경험지평에서 생겨난 텍스트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나라에 태어나 살고 있는지가 우리의 삶에 몹시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국가의 시대’에 살고 있다. 당연히 나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돌이켜보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국가》를 읽는 근본적인 까닭은 바로 이것이다.

《국가》를 읽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국가》는 모든 시대에 통용될 만한 윤리학의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것의 실천을 구체적으로 고려하는 현실 정치학의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참으로 잘 사는 나라, 조화로운 나라가 되려면 그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뿐 아니라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도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플라톤은 이 대화편에서 참으로 잘 살기 위해 사람이 정신적으로나 제도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들을 궁리했고, 한 나라에서의 올바름뿐만 아니라 한 사람에게 있어서의 올바름을 실현하고자 했다. 한 사람의 올바름은 윤리학, 한 나라의 올바름은 정치학이라면, 《국가》는 이 두 가지를 포개려는 텍스트이다. 이 둘을 포개기 위해 플라톤이 생각한 최고선은 ‘바람직한 이득’이고, 이 대화편을 시작하는 물음은 ‘올바름은 이득이 되는가’ ‘올바르게 산 사람은 행복한가’이다. “즉 올바른 것을 행하며 훌륭한 것들을 수행하고 올바르게 되는 것이, 그런 사람인 것을 남이 알건 모르건 간에, 이득이 되는가, 아니면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르며 올바르지 못하게 되는 것이, 만약에 벌금도 물지 않고 또는 처벌을 통해 교정을 받는 일도 없다면, 이득이 되는가 하는 것”을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올바름의 정의定義가 내려졌다 해도 그것의 실질을 탐구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의론과 정체론 외에도 《국가》에는 이데아론과 교육론, 영혼삼분설, 윤회설, 모방론, 동굴의 비유, 선분의 비유, 태양의 비유 등 플라톤의 대표적인 철학 이론과 비유들이 등장한다. 《국가》를 읽지 않고서는 플라톤에 접근할 수 없고 플라톤을 모르고서는 서양 철학을 이해할 수 없다.

 

《국가》를 읽는 방법론: 강독 형식의 원문 읽기 + 시대적 통찰이 담긴 해설

《국가》는 소크라테스와 몇몇 사람들이 나눈 방대한 양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어서 단숨에 읽어내는 것이 어렵다. 그래도 이 대화편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전을 남김 없이 읽는 것이다. 술어의 뜻을 상세히 따지고 문장의 맥락과 숨은 뜻을 탐색하면서 반복해서 읽으면, 언젠가 플라톤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터득할 것이다. 이 과정을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하고자 저자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 책을 구성했다.

원전 텍스트 전체를 크게 네 개의 부로 나누고 다시 세분하여 목차를 구성한 후 각각에 대한 요약과 해설을 서술하였다. 각 단원마다 고딕체로 된 요약 부분은 최대한 원전의 내용을 살려 인용문 형식으로 서술하였는데, 이는 독자들이 원문의 표현에 익숙해지도록 하면서 논의의 근거와 출처를 분명히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나누고 요약하는 과정에서 번역본들과 이차 문헌들을 참조하였다 해도 이 요약은 저자의 강조와 생략을 반영한 것이다. 이어 해당 부분에 대한 강독 형식으로 술어들과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시대적 상황, 관련 참고 서적에서 뽑아 낸 주해와 출처, 다른 사상가들과의 비교, 저자의 의견 등을 서술했다. 그 밖에 《국가》와 다른 대화편과의 연관성, 각각의 텍스트들이 시대에 따라 끼친 영향이나 전반적인 논의는 추기追記에 덧붙였다.

독자 스스로 이 책 전체를 읽고 나서 원전을 다시 읽으면서 자신만의 독법을 찾아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고, 이 책의 목차에 따라 원전을 함께 읽거나, 이 책의 해설 부분만을 먼저 읽고 관심사에 따라 이 책의 요약 부분과 함께 원전의 해당 부분을 조금씩 읽어 나가도 좋을 것이다. 꼭 읽어야 할 원전이지만 읽을 엄두를 못 냈던 독자들이 이 책과 함께 《국가》 읽기에 도전해 볼 것을 권한다.

 

 

강유원 선생님이 쓰신 <소크라테스, 민주주의를 캐묻다>가 ‘2022년 세종도서 교양 부문'(철학 분야)에 선정되었습니다.

항상 위기에 처해 있는 민주정, 그리고 그것의 바탕을 이루는 올바른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를 걱정해야만 하는 우리에게 시대에 관한 통찰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이념 혁명가 소크라테스,

그는 정말 민주정을 반대했는가

‘헌법상의 민주공화국’ 시대를 살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민주정의 실체와 민주주의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한다. 이에 최초의 민주정 시대를 살았던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통해 민주주의의 고전적인 의미를 성찰해 보고자 한다.

 

개인의 삶은 다양할지언정 현재 우리 모두의 삶을 규율하고 있는 정치 체제는 ‘민주공화국’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인 헌법 규정보다는, 200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이 규정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더 발전되어야 하는지가 우리의 더 절박한 관심사라 할 것이다. 시리즈 ‘우리 시대, 사상사로 읽는 원전: 체제 탐구’는 이러한 관심사에서 출발한 저자의 지속적이고 근원적인 탐구 결과물이다.

그동안 체제 탐구의 원천이라 할 만한 플라톤의 여러 대화편들은 주로 형이상학과 인식론의 맥락에서 다루어져 왔다. 이에 저자는 플라톤의 저작뿐만 아니라 당대의 여러 정황을 살필 수 있는 동시대 다른 저자의 저작들을 함께 읽음으로써 소크라테스 또는 플라톤이 생각한 민주정과 민주주의의 의미를 사상사적으로 탐구하였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비롯하여 이 책에서 다루는 텍스트들은, 항상 위기에 처해 있는 민주정, 그리고 그것의 바탕을 이루는 올바른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를 걱정해야만 하는 우리 시대에 대한 올바른 통찰의 지침이 될 것이다.

 

■ 저자 소개

강유원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철학, 역사, 정치학, 사상사 등에 관한 탐구 성과를 바탕으로 공동 지식과 공통 교양을 위한 강의에 힘써 왔으며, CBS ‘라디오 인문학’, KBS 제1라디오 ‘책과 세계’, EBS TV ‘클래스e 위기의 시대에 읽는 고전’ 등 방송에서도 활동했다. 《인문 古典 강의》, 《역사 古典 강의》, 《철학 古典 강의》, 《문학 古典 강의》, 《숨은 신을 찾아서》, 《에로스를 찾아서》, 《책 읽기의 끝과 시작》, 《책과 세계》 등을 썼으며, 《경제학 철학 수고》, 《철학으로서의 철학사》(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현재 일반인을 대상으로 사상사 강의를 하고 있으며, 공부 블로그 ‘책 읽기의 끝과 시작’(fromBtoB.postype.com)과 팟캐스트 ‘강유원의 북리스트’(podbean.com/premium-podcast/booklist)를 운영하고 있다.

 

■ 차례

‘우리 시대, 사상사로 읽는 원전: 체제 탐구’ 출간사

서문

1장   민주정이 시작된 역사적 공간 ‘폴리스’_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2장   민주정의 절정기, 체제 유지를 위한 패권 싸움_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크세노폰 《헬레니카》

3장   민주정 시대를 체감한 소크라테스_ 크세노폰 《소크라테스 회상록》

4장   체제의 정당성을 묻는 ‘이념 혁명’_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론》

5장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정치적 지향_ 플라톤 《메넥세노스》

주해: 출간사 주해, 서문 주해, 1장 주해, 2장 주해, 3장 주해, 4장 주해, 5장 주해

 

■  책 소개

사람들은 흔히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민주정을 반대한 이들이라 여긴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그들은 민주 정체에서 태어나 그 안에서 살았고 자신들의 체제가 이룩한 성취와 문제점들을 체감하였으며, 그것을 더 나은 체제로 진전시키기 위해, 또는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깊이 사색하고 그것으로부터 실천적 처방을 제시하였다. 적어도 1950년대 이전의 사상가들 중에서 그들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고대 아테나이와 같은 민주 정체는 물론이고 다른 어떤 형태의 민주 정체에서도 살아 본 적이 없다. 이 점 때문에라도 그들은 체제를 탐구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사상가들이다.

소크라테스는 사인으로 살고자 했고 정치가도 아니었지만, 제자 플라톤에게 정치학의 기초 이념을 제공했다. 소크라테스가 생각한 민주주의는 무엇이며, 이것이 플라톤의 저서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가를 면밀히 알아내기 위해서는 플라톤의 저서뿐만 아니라 당대 헬라스 세계의 맥락과 소크라테스의 사람됨을 엿볼 수 있는 다른 고전들도 같이 읽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먼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참조하여, 최초의 민주정체이자 헬라스 세계의 고유한 체제인 폴리스에 대해 개념적으로 파악한다. 그 폴리스들이 같은 헬라스 사람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서로 협력하면서도 싸움을 벌이던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와 크세노폰의 《헬레니카》를 읽는다.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록》은 소크라테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플라톤의 대화편들보다 좀 더 일반적인 관점에서 서술한다. 그가 공공 영역에서 중요하게 여긴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그가 아테나이 시민들에게 강조했던 덕목이 무엇이었는지도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중심으로 읽는 까닭은 소크라테스가 사상사적으로 중요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테나이 체제가 가진 한계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플라톤의 사유에 있어서 소크라테스가 근본적인 지향점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메넥세노스》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헬라스 세계가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읽는 텍스트이다. 《메넥세노스》가 제시한 추도식 연설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공유했던 순전한 이상이 아니라 현실에 기반을 둔 지향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이는 플라톤의 대화편 《정체》를 읽는 중요한 맥락이 될 것이다.

 

페리클레스가 말했듯이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당대 아테나이 폴리스는 민주정이 아니라 참주정(대중정치, 대중독재)에 가까웠고, 이는 대중의 탐욕이 반영된 체제로서 소크라테스가 가장 경계하는 정체였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직접적으로 아테나이 민주정을 비판했다기보다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조건들에 대해 변론하고 있다. 시민들의 생활양식이 올바름을 지향해야만 ‘더 많은 이의 더 나은 삶’이라고 하는 민주 정체의 탁월함, 즉 민주주의 이념이 참으로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묻는다. ‘아테나이는 개인의 신념을 형벌로써 다스리는 체제인가?’

 

 

■  본문 속에서

“본격적인 민주정은 사회 혁명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가능해진다. 점진적으로 확대되어 온 정치적 평등이 부의 평등에 대한 요구로 발전하면서 부의 불평등에 대한 공격이 생겨나고, 그것이 정치적인 제도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이가 평등하게 부를 추구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익 추구가 모든 이의 삶의 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익 추구가 적절함을 넘어서 버리면 탐욕이나 쾌락으로 뻗어 나간다.”_24p

“아테나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극대화된 욕망을 외부로 투사하였고, 투퀴디데스는 이러한 오만함 때문에 아테나이와 시민들이 파멸하는 비극을 그린다. 소크라테스는 이 비극이 모두에게 감지되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출현했다. 그는 쾌락에 빠진 시민들을 바라보면서 탐욕을 버리고 추상적 이념의 입장으로 올라갈 것을 촉구한다.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정신화를 더 밀고 나아간 플라톤은 고요하게 관상하는 인간을 길러내고 그러한 인간이 통치하는 교육과 체제를 구상한다.”_13p

“당대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정 시대라 할 수 없었다. 투퀴디데스가 지적하고 있듯이 “이름은 민주주의이지만 실제 권력은 제일인자의 손에 있었다”. 현란한 연설술을 가진 사람이 어리석은 대중들을 유린하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당대 아테나이가 “제국”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각각이 각각의 원인이면서 결말이 되었다. 악순환으로 빠져들었다. 아테나이가 제국으로 나아가지 않았으면 선동이 난무하는 대중 정치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_48p

“민주 정체는 다수가 원하는 것을 올바른 것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다수가 원하는 것은 사실일 뿐이며, 그 사실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다수가 원하는 것이라 해도 올바르지 않은 것은 얼마든지 있다. 다수가 나쁜 짓을 떼 지어 원했던 사태는 역사에 차고 넘친다. 소크라테스는 바로 그 부분을 겨냥한다.”_91p

“아테나이 사람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 혁명과 정치 혁명의 난관을 이겨 내고 마침내 민주 정체를 성취하였다. 그것은 더 많은 사람들을 시민으로 만들어 주었고 시민들은 폴리스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아테나이 시민들의 삶은 ‘쾌락이라는 참주’에게 굴복한 것이다._101p

 

 

 

 

 

‘지적인 책읽기는 서평으로 통한다’

정독과 다독의 철학자 강유원이 내놓는 15년만의 메타-서평집

고전과 학술서를 강독하는 철학자이면서, 동시대의 다양한 책들도 섭렵하는 지식 탐구자 강유원. 그는 서평가들이 참조하는 ‘서평가들의 서평가’이다. 이 책은, <책과 세계> <주제> 이후 그가 15년 동안 강의와 방송 활동을 하면서 쓴 새로운 서평집이다. 서평집이지만 서평집 그 이상이기도 하다. 단지 서평들을 모아 놓은 서평집은 하나의 주제로 일관하기가 어려워 읽고 나면 읽어야 할 책 목록만 남기 쉬운데, 이 책은 내용과 형식에 따라 주제를 일관하고 있어 부제처럼 ‘책읽기가 지식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인용이 풍부한 서평, 수준(초급, 중급, 고급)에 따라 작성된 서평, 논고, 논문, 역자 후기 등 다양한 형식의 서평을 포괄하고 있어서, 글을 쓰고자 하는 목적에 따라 참조할 수 있는 일종의 ‘책에 관한 글 쓰기’ 안내서이기도 하다.

학생이자 학자로서 ‘공부를 잘 하려면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까’로 시작된 책에 관한 저자의 고민은, 이후 학교 밖에서 대중을 만나면서 ‘어떻게 하면 서평을 잘 쓸 수 있는가’라는 고민으로 확장되었다. 인문서를 추천하는 서평 전문가로서, 철학과 사상을 대중들에게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그동안 쌓인 책읽기 경험과 서평 노하우를 이 책에 녹여 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목적 있는 책읽기와 서평쓰기 여정에 동참함으로써, 수동적인 독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지식 탐구자로 나아가는 구체적인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아이건 어른이건, 글에 익숙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꾸욱 참고 앉아 진득하게 글을 읽는 일부터 해보자. 이런 점에서 글 읽기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몸이 무거워지고 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해야 책이 손에 잡힌다. 책이 손에 잡혀야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모르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순간이 바로 지식에의 열정이 시작되는 때이다.”  — 강유원 <몸으로 하는 공부>(2005) 중에서.

 

■ 저자 소개

강유원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철학, 역사, 문학, 정치학 등에 대한 탐구 성과를 바탕으로 공동 지식과 공통 교양의 확산에 힘써 왔다. 오랫동안 개인 플랫폼에서 ‘책읽기 20분’을 진행했으며, CBS ‘라디오 인문학’과 KBS 제1라디오 ‘책과 세계’ 등 방송에서도 전문 서평가로 활동했다. <책> <책과 세계> <주제> 등의 서평집과 <인문 古典 강의> <역사 古典 강의> <철학 古典 강의> <문학 古典 강의> <숨은 신을 찾아서> <에로스를 찾아서> 등을 썼으며, <경제학 철학 수고> <철학으로서의 철학사>(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차례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제1부 어떻게 읽을까_책에 접근하는 방식들

1. 책읽기의 출발점, ‘주제 정하기’ : <성경 읽는 법—신자와 비신자 모두를 위한 짧고 쉬운 성경 안내서>

2. 책의 배경이 되는 ‘저자 파악하기’ : <페르낭 브로델>

3. 책을 구성하는 ‘표지와 차례 분석하기’ : <사라진 권력, 살아날 권력>

4. 책의 성격을 짐작하는, ‘서론 및 헌정사 읽기’ : <중국 사유> / <군주론>

5. 본문을 부분적으로 읽는, ‘단면 자르기’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6.  거리를 두고 ‘전체적으로 조망하기’ : <전략>

7. 사실들에 대한 ‘입장연관성 갖기’ : <존 F. 케네디의 13일—쿠바 미사일 위기, 거짓말, 그리고 녹음테이프>

8. 다른 관점에서 ‘다시 읽기’ : <셰익스피어 깊이 읽기> / <역사란 무엇인가>

 

제2부 어떻게 쓸까_서평의 여러 형식들

1. 서평의 종류와 기본 형식 : <안쪽과 바깥쪽>

2. 한 권의 책에서 특정한 내용을 뽑아 쓰는 ‘주제 서평’ : 체제는 무형의 이념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수양제>

3. 여러 권의 책들을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엮는 ‘주제 서평’ : 세상의 악은 누구의 책임인가, 신정론 또는 변신론  <디트리히 본회퍼> + <욥기> + <오레스테스이아 삼부작> + <국가 ∙ 정체>

4. 일차 문헌에 대한 해제, ‘역자 후기’ : <공산당 선언> /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5. 테제가 있는 ‘논고’ : 근대적 서사의 보여 주기 또는 상술 <소설과 카메라의 눈> / 신화神化의 서사시 <정신현상학>의 한 독법讀法을 위한 서설

 

제3부 시대를 읽는 주제 서평들_근대와 정치, 그리고 인간

1. 세계의 궁극목적과 역사 : <역사철학 강의> + <다이쇼 데모크라시 정신의 한 측면>

2. 근대의 정치 : <코스모폴리스> + <홉즈의 이해> + <신학-정치론> + <지나간 미래>

3. <논어>와 정치 : <공자와 논어> + <고대 중국의 글과 권위>

4. 열린 지향점으로서의 이념과 독단 : <적군파> / <약속된 장소에서>

5. 정치의 맥락 : <정치와 비전 1>

6. 사상의 사회적 물적 기반 : <고고학 증거로 본 공자시대 중국사회>

7. ‘온화한 상업’ : <열정과 이해관계>

8. 근대 국가의 균열 지점 : <파르티잔>

9. ‘발칸화’에 대하여 : <발칸의 역사>

10. 사회과학의 개념과 현실 : <근대 한국의 사회과학 개념 형성사>

11. 전환기의 정치 사상 : <건국의 정치> + <한국의 유교화 과정> + “서학 도입을 둘러싼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갈등

12. 이백 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것 :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13. 동학, 이단과 이교의 갈림길 : <이단의 민중반란>

14. 해방공간의 사상과 현실 :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

15. 일본의 근대와 천황 의례의 발명 : <화려한 군주>

16. 일본의 근대화와 군대 : <일본의 군대>

17. 일본의 근대화와 관료제 : <제국의 기획>

18. 한 인간이 겪은 근대 일본의 전쟁 : <일본 양심의 탄생>

19. 전쟁을 지배하는 기술 : <참호에 갇힌 제1차 세계대전>

20. 나치와 대중, 그리고 평범한 사람 :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 <나치의 병사들>

21. 히틀러를 읽는 법 : <하우투 리드 히틀러> + “히틀러 신화”

22. 정치적 인간의 탄생 : <식민지 청년 이봉창의 고백>

23. 근대의 이면, ‘인간 실존’ : <쇠얀 키에르케고어>

[부록] 아주 긴 서평_<장미의 이름> 읽기

 

■ 출판사 서평

사람마다 책을 읽는 목적이 다양하지만, 책읽기의 본래 목적은 지식[앎]을 얻는 것이다. 책읽기가 지식이 되려면 책을 읽고 난 후 어떤 형식으로든 책에 관한 후기를 써야 한다. 그게 서평이다. 서평은 나를 위해 내가 읽은 책을 갈무리해 놓는다는 점에서 책읽기의 끝이지만, 그 서평을 내가 다시 읽거나 타인이 공유함으로써 또 다른 책읽기로 이어 간다는 점에서는 책읽기의 시작이다.  

외국의 서평가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구성방식과 문체로써 서평을 쓴다. London Review of Books나 The New York Review of Books(안타깝게도 한국에는 이런 잡지가 없다)에 기고하는 서평가들이 그렇다. 그러나 이들이 자신의 서평을 어떤 방식으로 쓰는지, 즉 자신의 작업방식 자체를 서평 형식으로 써 놓은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책읽기의 끝과 시작>은 이러한 시도이다. 서평으로 이루어진 서평쓰기 방법론이다. 따라서 ‘서평쓰기의 시작과 끝’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어떻게 하면 다양한 수준의 책들을 적절한 방법으로 접근하여 읽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가치 있는 지식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서평을 써야 하는지를, 자신이 쓴 여러 형식의 서평들을 예로 들어 조언하고 있다. 이 서평들은 각 분야에서 표준도서라 할 만한 책들을 선정하여 해당 주제에 관한 정통 지식과 통찰력 있는 관점을 서술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에게 유익한 앎의 경로를 제시해 준다. 

이 책은 제1, 2, 3부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책의 내용을 파악하는 여러 방식들을 세부 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각각의 항목에 초점을 맞춘 서평을 예시하였다. 제2부에서는 서평의 종류와 형식을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논문 형식까지 설명하고 이에 해당하는 서평들을 묶었다. 제3부에서는 1,2부에서 설명한 책읽기 방식과 서평쓰기 형식들로 작성된 서평들을 ‘근대와 정치, 그리고 인간’이라는 주제 아래 모았다. 이 주제에 대한 개념 설명과 사상의 측면을 다룬 서평을 앞에 두고, 특정 시기와 국가, 그리고 구체적인 개인들을 다룬 서평들은 뒤에 두었다. 이는 큰 범위에서 작은 범위로 좁혀 들어감으로써 시대 속에서 ‘지금 여기의 나’에 대한 통찰을 가질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 또한 ‘근대’라는 개념의 뿌리인 서구의 사상뿐만 아니라 한국의 근대화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 관한 책들까지 다루기 때문에, 현재 우리 공동체의 모습을 자각하는 데 유용한 지식과 안목도 제공한다. 부록으로는, 아주 긴 서평 형식으로 쓰인 <‘장미의 이름’ 읽기>를 실었다. 오래 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나 지금은 구할 수 없어 아쉬워 하던 독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되길 바란다.   

이 책을 ‘지식 탐구를 위한 책읽기와 서평쓰기’라는 목적에 맞게 읽으려면 세 번 정도 반복해서 읽는 것이 좋다. 처음에는 순서대로 읽으면서 서평의 내용과 저자의 통찰을 파악하고, 두 번째에는 책읽기 방식과 서평의 형식이 대상도서의 내용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에 주목하여 읽고, 세 번째에는 직접 서평을 써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관심이 가는 주제와 형식의 서평들만 골라 읽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골라 읽은 서평들의 대상도서들을 직접 읽어 보고 서평을 써서 저자의 서평과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지은이: 강유원
출판사: 라티오
분야: 인문학/철학 일반/미학
발행일: 2017년 12월 05일
ISBN: 979-11-959288-2-8  03100
판형: 188*128(B6)
가격 및 쪽수: 14,000원/ 148쪽

 <<에로스를 찾아서>>

결핍과 갈망이라는 이중적 계기, 에로스에 관한 학적 탐구

인간은 결핍을 자각할 때에야 비로소 무엇인가를 갈망하며, 그러한 갈망이 있을 때에야 생성도 가능하다. 욕망은 생명력이다. 그러한 욕망은 어디를 향해 가는가. 그 욕망이 단계를 높여 가면서 궁극적으로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은 결핍과 갈망이라는 두 가지 모순적 계기를 끌어안는 에로스에 관한 학적 탐구이다. 에로스를 학적으로 탐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다시 모순적인데, 에로스는 인간의 주관적 정념이고, 에로스를 탐구하는 것은 그러한 정념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에로스를 객관적으로 관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로스를 학적으로 탐구하기 위해서는, 에로스의 궁극적인 대상이 ‘아름다운 것’이며 그 아름다움은 ‘좋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렇게 미美와 악惡, 또는 선善이 연관되면 미학은 철학이 된다. 대표적인 예가 플라톤이다. 플라톤에서는 아름다운 것과 선한 것이 동등한 위치에 있다.

이 책은 플라톤, 플로티노스, 쿠자누스, 피치노, 헤겔, 소동파, 헤시오도스, 호메로스, 발터 벤야민, 아르놀트 하우저, 에른스트 카시러 등의 글을 통해 ‘아름다움이란 무엇이고 아름다움의 기준은 객관적으로 가능한가’ 등에 대해 성찰하고 있으며, 시대적 연관 속에서 고전주의, 바로크, 매너리즘, 인상주의 등의 철학적 근원도 제시한다. 이에 독자는 미학과 예술철학의 주요 문제들을 사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적 체험의 이해에도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소개

강유원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철학, 역사, 문학, 정치학, 사상사 등에 대한 탐구 성과를 바탕으로 공동 지식과 공통 교양의 확산에 힘써왔으며, 최근에는 실천학과 이론학 체계 일반의 정립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 《책과 세계》(살림, 2004),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라티오, 2008), 《인문 古典 강의》(라티오, 2010), 《역사 古典 강의》(라티오, 2012), 《철학 古典 강의》(라티오, 2016), 《문학 古典 강의》(라티오, 2017), 《숨은 신을 찾아서》(라티오, 2016) 등을 쓰고, 《헤겔 근대 철학사 강의》(공역, 이제이북스, 2005), 《경제학 철학 수고》(이론과실천, 2006), 《철학으로서의 철학사》(공역, 유유, 2016)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차례

하늘 한구석의 미인을 바라본다.

진실처럼 들리는 거짓말,

무사 여신이여!

당신은 아마도 알고 계시겠지만

어떤 놀라운 것,

모든 좋은 것,

이런 건 조금도 겪어 본 적이 없네.

불꽃에서 댕겨진 불빛처럼 혼 안에 비로소 생겨나서,

때는 밤이었다.

아름다움을 넘어선 아름다움,

닮은 것은 닮은 것에서 태어나니…

예술적으로 재현한 것,

끝없는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게 해주시길 빕니다.

사랑이 당당하게.

위기,

탈취,

정신은 감각적인 것에 발을 내딛으면서도

이후 심하게 아팠다.

당신이 한 말은 모두 도리에 맞는 말이오!

주해註解

 

■ 본문 중에서

“인간은 갈망에서 다른 인간의 몸을 탐하고, 그 몸에서 흘러나 오는 것을 들이마시고, 그것을 마시고 자신을 발산함으로써 무아無我의 순간을 향해 간다. 그리하여 그때까지는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의 차원에 올라선다. 이는 갈망에서 시작되었으니 에로틱erotic하고, 전혀 낯선 것이니 엑조틱exotic하며, 절정의 환희를 경험하는 것이니 엑스타틱ecstatic할 것이다.”(38쪽)

“피치노는 플라톤의 《향연》을 읽으며, 그 형식을 그대로 본떠서 또 하나의 ‘향연’을 만들어 내며 사랑, 그것도 경건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신에 대한 사보나롤라의 불 타는 사랑에 놀랐는지, 피치노의 사랑은 따스하다. 성급하지 않다. 물론 피치노도 사보나롤라와 마찬가지로 신과 인간, 신과 세상 사이의 완전한 일치와 교류를 시도하는데, 그 교류의 매개는 역시 사랑이다. 다만 피치노는 뜨겁지 않으며 활활 타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치노는 스승으로서의 소크라테스를 찬양한다. 알키비아데스를 흉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피치노가 사랑하는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다. 인간을 사랑하면 곧바로 절망을 대가로 얻게 되지만 신을 사랑하는 것은, 죽도록 충족에 이를 수 없다는 본연의 양상 때문에 죽을 때까지 사랑을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그리하여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영원한 사랑을 구가하는 극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51쪽)

“지금은 이렇게 그럴싸한 말들로써 인상주의를 치장하는 우리들이 과연 19세기에 그것을 마주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울퉁불퉁하던 세계가 돈 앞에 무너져 평탄하게 되어 가던 세계에서,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 때문에 애국심이 파탄나는 세계에서, ‘파리코뮌’이라 불리는 계급투쟁의 시가지 전투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은 유례없는 혹평을 견디면서 자신들의 그림을 고수했다. 분명 그들은 19세기라는 시대의 혼란함과 교감하고 있었고, 당대의 ‘높으신 분’들은 시대를 살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예술가는 정치적 권위도 후원자도, 더 나아가 관객도 믿어서는 안 되는, 오로지 자신만을 믿어야 하는 시대였던 것 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믿었던 자들은 후대의 평가를 얻어 불멸을 획득하게 되었다.”(67쪽)

“동파가 바라보는 것은 ‘하늘 한구석의 미인’이다. 이는 동파의 마음속에 그리고 있던 실제의 미인이 하늘에 투사된 것일 수도 있고, 인간세人間世를 벗어난 이상적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이해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초의 무격은 하늘과 대화하였고, 동파는 초의 무격을 떠올리며 하늘을 바라본다. 무격은 시인에게 영감을 주었고 시인은 그 영감으로써 시를 내놓았으며,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 시를 읽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동파의 시를 읽는 이들은 무엇을 읽는 것인가. 초의 무격들이 전해 준 하늘의 이야기를 읽는 것인가, 아니면 동파의 시를 읽는 것인가, 아니면 시를 읽을 때 자신 안에서 생겨나는 감흥을 느끼고 있을 뿐인가.”(79쪽)

“체계공간 안에서 보느냐 집합공간 안에서 보느냐에 따라 세계는 다르게 파악되므로, 사물을 어떤 방식으로 보느냐는 화가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단초라 할 수 있다. 집합공간 안에 놓인 사물들은 그것들 각각의 의의를 독자적으로 표현하며, 그것들 사이의 빈 공간에도 일정한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체계공간 안에 사물을 놓는 원근법에 따르면 사물들은 하나의 시점에 수적으로, 또는 연속량(Quantum continuum)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 시점을 중심으로 현실의 모든 사물들이 추상화되어 정돈된다. 후대의 인상파 화가들이나 입체파 화가들은 그러한 이상화된, 또는 신적 입장에 올라선 시점을 폐기하고 눈앞에 놓인 현상들의 순간적 집합 인상(또는 인상 묶음)을 나열하거나, 그러한 다양하고 다면적인 인상을 묶어서 전체를 재구성해 보려 한다. 이들의 시도는 근본적으로 ‘르네상스 고전기’를 지배한 양식원리인 원근법과의 연관 속에 있는 것이다.”(115쪽)

인문 고전 강의

 

<<일리아스>> , 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ISBN9788991290167)

<<안티고네>>, 소포클레스, 천병희 옮김, 문예출판사 (#ISBN9788931001686)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강상진 외 옮김, 길 (#ISBN9788964450383)

<<신곡:지옥>>, 단테,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ISBN9788932910154)
<<신곡:연옥>>, 단테,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ISBN9788932910161)
<<신곡:천국>>, 단테,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ISBN9788932910178)

<<군주론>>, 마키아벨리, 강정인 외 옮김, 까치 (#ISBN9788952114679)

<<방법서설>>, 데카르트, 이현복 옮김, 문예출판사 (#ISBN9788931003277)

<<통치론>>, 로크, 강정인 외 옮김, 까치 (#ISBN9788972914280)

<<법의 정신>>, 몽테스키외, 고봉만 옮김, 책세상 (#ISBN9788970135861)

<<직업으로서의 정치>>, 베버, 전성우 옮김, 나남 (#ISBN9788908061194)

<<파놉티콘>>, 벤담, 신건수 옮김, 책세상 (#ISBN9788970136325)

<<거대한 전환>>, 폴라니, 홍기빈 옮김, 길, (#ISBN9788987671314)

<<논어>>, 공자, 미야자키 이치사다 해석, 박영철 옮김, 이산 (#ISBN9788987608235)

 

역사 고전 강의

 

<<역사>>, 헤로도토스,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ISBN9788991290266)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퀴디데스,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ISBN9788991290402)

<<갈리아 원정기>>, 율리우스 카이사르,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ISBN9788991290440)

<<신국론>>, 아우구스티누스, 조호연 외 옮김, 현대지성사 (#ISBN9788944724268)

<<새로운 학문>>, 잠바티스타 배코, 이원두 옮김, 동문선 (#ISBN9788980384204)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 마르퀴 드 콩도르세, 장세룡 옮김, 책세상 (#ISBN9788970133003)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프리드리히 엥겔스, 이재만 옮김, 라티오 (#ISBN9788996056188)

<<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 강성호 옮김, 책세상 (#ISBN9788970133256)

<<공산당 선언>>,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강유원 옮김, 이론과실천 (#ISBN9788931360226)

<<20년의 위기>>, 에드워드 카, 김태현 옮김, 녹문당 (#ISBN9788988684160)

 

철학 고전 강의

 

<<신들의 계보>>, 헤시오도스,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ISBN9788991290297)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옮김, 아카넷 (#ISBN9788957330630)

<<파이돈>>, 플라톤, 박종현 역주, 서광사 (#ISBN9788930606202)

<<국가>>, 플라톤, 박종현 역주, 서광사 (#ISBN9788930606097)

<<형이상학 1, 2>>, 아리스토텔레스, 조대호 옮김, 나남 (#ISBN9788930085823)

<<철학의 원리>>, 데카르트, 원석영 옮김, 아카넷 (#ISBN9788957332436)

<<성찰>>, 데카르트, 이현복 옮김, 문예출판사 (#ISBN9788931003260)

<<형이상학 서설>>, 칸트, 백종현 옮김, 아카넷 (#ISBN9788957332474)

<<판단력 비판>>, 칸트, 이석윤 옮김, 박영사 (#ISBN9788971890103)

<철학백과>, <<논리학 서론, 철학백과 서론>>, 헤겔, 김소영 옮김, 책세상 (#ISBN9788970133133)

<<정신현상학>> 서문, 헤겔, 강유원 번역문

 

문학 고전 강의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옮김, 휴머니스트 (#ISBN9788958620242)

<<오뒷세이아>>, 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ISBN9788991290150)

<욥기>, <<공동번역 성서>>, 대한성서공회 엮음, 대한성서공회 (#ISBN9788941250050)

오레스테이아 3부작: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 아이스퀼로스,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2008 (#ISBN9788991290204)

<오디푸스 왕>,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소포클레스,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ISBN9788991290211)

<메데이아>,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에우리피데스,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ISBN9788991290259)

<<맥베스>>, 윌리엄 셰익스피어, 김정환 옮김, 도서출판 아침이슬 (#ISBN9788988996867)

<<오셀로>>, 윌리엄 셰익스피어, 김정환 옮김, 도서출판 아침이슬 (#ISBN9788988996843)

<<팡세>>, 블레즈 파스칼 지음, 김형길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ISBN9788952117458)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이인웅 옮김, 문학동네 (#ISBN9788954601528)

<<모비 딕>>, 허먼 멜빌, 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ISBN9788972883906)

 

<인문 고전 강의>, <역사 고전 강의>, <철학 고전 강의>, <문학 고전 강의> 네 권의 고전 강의 시리즈가 완간되었습니다. 강의가 시작되고 책이 완간되기까지는 9년(2009년~201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실제로 강의가 이루어진 기간은 160주(2009년 40주, 2011년 40주, 2014년 40주, 2015년 40주)입니다. 이 기간 동안 수백 명의 수강생들이 공공도서관에서 현장 강의를 들었고, 몇 만 명의 독자분들이 책을 읽어주셨습니다.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앎에 대한 존숭심과 수강생들에 대한 애정으로 강의를 이끌어주신 강유원 선생님(“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앎이 지혜의 근본임을 믿고 꾸준히 공부하신 수강생분들에게도 감사드리며, 묵묵히 책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과 그런 독자분들과의 만남에 애써주시는 MD분들(“강유원의 고전 강의 마지막 시간”)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2017년 5월15일 라티오 드림.

<문학 고전 강의>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인간은 말을 함으로써 인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이 아닌 동물들도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을 가지고 있을 터이니 인간만이 말을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단순히 기능적인 사용에서 멈추지 않고, 말에 거리를 두고 말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보고, 말 자체를 꾸미고 말을 더 잘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은 적어도 지금까지 알려진 지식에 따르면 인간만이 하는 일입니다.

사람은 말을 통해서라야 뭐든 알 수 있습니다. 말을 해야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소리를 내지 않는 혼잣말이라 해도 그것은 자기 자신을 상대로 하는 대화입니다. 누군가와 대면하여 말을 하든 머리 속으로 혼잣말을 하든, 사람은 끊임없이 말을 합니다. 그런 까닭에 사람이 더이상 말을 하지 않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사람답게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상대에게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할 말이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상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일 것입니다. ‘한 마디도 하고 싶지 않은 상대’란 사실상 우리에게는 ‘꼴도 보기 싫은 상대’보다 훨씬 더 무의미한 존재입니다. 그 사람과 우리 사이는, 마주 앉아 있다 해도 결코 이어질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말을 걸고 싶지 않은 상태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몹시도 혐오스럽거나 절망스러울 때 그러할 것 입니다. 침묵은 상대를 끊은 상태입니다. 우리는 말하고 싶어서 말을 하는 존재라기보다는 별수 없이 말을 해야만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가 문학이라 부르는 것은 특정한 학문 영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라고 하는 인간 본연의 행위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아닌 ‘문학함’이 더 적절한 표현일 테고 이를 달리 말해본다면 ‘이야기하기’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눈앞에 놓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즐겁거나 괴로웠던 일들을 기억하고 노래합니다. 삶을 아름답게 물들였거나 참담하게 했던 장면을 되살려 그려냅니다.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그리는 것의 소재는 이렇게 자신의 삶에서 길어올린 것들일테지만 그것 안에는 오로지 자신만 있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 장소, 물건, 사건들이 함께 묻어 들어가서 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든 다른 사람에게 노래하기 위해서든 모든 이야기에는 이야기하는 이가 만들어 넣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들이 빈틈없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만큼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것은 무척이나 지리하여 다시 듣고 싶지 않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되새길수록 재미있고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또는 스스로의 흥에 겨워서 ‘잘’ 이야기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잘 이야기된 것, 잘 노래된 것, 잘 그려진 것 중에서 오래도록 사람들이 되풀이하여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그리는 것들을 우리는 ‘문학 고전’이라 부를 것 입니다. 이 책에서 우리가 읽게 될 이야기들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디에서나 찾아낼 수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잘 이야기된 것들이어서 이야기 속 사람들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양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잘 읽음으로써 우리는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자신에 대해 더 잘 이야기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처음 쓴 고전 해설서는 《책과 세계》였습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강의를 하다가 학교를 떠난 것은 1990년대 말이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강의할 일도 없던 터에 혼자 재미삼아 그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하였던 서구의 고전들을 읽던 중, 뜻밖에도 출판사에서 문고판으로 된 고전 해설서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퇴근 후에, 주말에, 이럭저럭 원고를 써서 2004년에 출간한 것이 《책과 세계》입니다. 회사를 그만둔 다음에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강의를 하다가 서울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2009년 2월부터 11월까지 40주 동안 하게 된 것이 ‘고전 열 권 읽기’라는 강의였습니다. 그때의 강의가 《인문 古典 강의》로 묶여 2010년에 출간되었습니다. 2011년에는 같은 곳에서 역사에 관한 책들을 40주 동안 강의하여 《역사 古典 강의》를 2012년에 출간하였습니다. 이후 서울시 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2014년에 40주 동안 형이상학에 대한 강의를 하여 2016년에 《철학 古典 강의》를 출간하였고, 2015년에 서울시 성북정보도서관에서 문학 고전들을 40주 동안 강의하여 지금 2017년에 《문학 古典 강의》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제가 읽은 책들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습니다만 고전 연속 강의를 위해 읽은 책들은 문자 그대로 격동적인 2017년의 한국과는 무관해 보이기만 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했나 하는 회한이 남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고전을 읽음으로써 생각의 힘이 강해지고 깊어졌으리라고, 별것도 아닌 삶을 살면서 우는 소리를 덜 하게 되었으리라고 막연하게 위안을 해봅니다. 앞서 출간한 책들을 다시 읽어보니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를 이런저런 멋진 말들로써 맺으려 노력한 듯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런 말들을 할 염치가 없습니다.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강의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 이들, 강의를 들어준 이들, 그리고 제가 알아차리지 못한 도움을 준 이들에게 고맙다는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거듭 고맙습니다.

2017년 5월 강유원 적음

 

 

<철학 고전 강의>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이 책은 오늘날 철학이라 불리는 학문 영역 중에서도 형이상학 분야의 고전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철학이라 불리는”이라고 한 것은 무엇보다도 고대의 철학자들, 즉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들이 철학 연구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이전 사람들, 즉 헤시오도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 등은 더욱이나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대의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철학 연구자임을 의식하였던 데카르트, 칸트, 헤겔은 모두 자신들이 세계의 근본원리를 탐구하고 있다는 자각을 뚜렷하게 가졌을 것입니다.

철학은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그리고 그 세계 안에 살고 있는 자신에 관하여 가장 근본적인 것을 물음으로써 시작됩니다. 이러한 물음은 그저 살고 있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평온하든 혼란스럽든, 나날을 살아가면서도 그러한 나날에서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궁금해 하는, 그 나날로부터 한 발짝 물러선 지점에 서 있는 사람에게만 철학적 물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흔히들 역사가 끝난 지점에서 철학이 시작된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유도 자신의 몸을 세상과 곧바로 맞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역사적 사유 역시 반성적 사유이고 철학적 사유와 닮아 있습니다. 다만 철학적 사유는 조금은 더 깊게 내려간 근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세계의 역사에 관하여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만 철학적 관심도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고대 중국의 역사 책에 《춘추》春秋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자孔子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책입니다. 이 책 이름을 살펴보겠습니다. ‘봄·가을’입니다. 계절 이름입니다. 굳이 봄·여름·가을·겨울을 다 말하지 않아도 이 두 계절만으로도 한 해를 말할 수 있습니다. 춘추는 자연입니다. 자연自然은 말 그대로 늘 그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올 봄에는 꽃이 예년만 못했고, 이렇게 덥기는 한 10여 년 만에 처음이고, 올해 단풍은 유난히 어여뻤으며, 이번 겨울은 벌써 추위가 사무치는데, 도대체 뭐가 늘 그러하다는 말인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 들여다본다면 이런 반문이 생겨날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마다 계절은 달랐으니까 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늘 그러합니다. 봄에 핀 꽃이 아무리 흐드러졌다 해도 겨울까지 피어 있을 리는 없습니다. 반드시 죽습니다. 그것이 늘 그러한 것입니다. 핀다, 죽는다, 다시 핀다, 죽는다, 다시 핀다… 바뀌는 게 있어 보이는데 그 안에 변함없는 것이 있습니다. 있어 ‘보이는 것’이 있고, 늘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있는 것’이 있습니다. 둘 다 있습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가리키고, 다른 하나가 하나를 드러냅니다. 이렇게 해서 불변(에 가까운 것)을 이룹니다.

“춘추”는 역사책 이름입니다. 자연의 겉모습을 보고 지었는지, 자연 뒤에 있는 것을 겨냥하여 지은 것인지, 둘을 겹쳐 지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춘추는 사람의 일을 적습니다. 꽃보다 유한한 사람의 일을 적습니다. 사람은 태어난다, 사람은 죽는다, 이걸로 끝입니다. 사람에 관하여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역사는 그처럼 당연해 보이는 것을 기록하였고, 철학은 인간의 일에서 근원적인 것, 변함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찾아보려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철학은 그 탐구가 찾아낸 성과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뻔해 보이는 것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철학이라는 말보다는 ‘철학함’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수 있습니다. 이 철학함은, 또는 공부는, 변함 속의 인간이 변함 없음을 향해 가는 행위입니다. 그러한 탐구 행위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떠한지, 그 안에서 자신은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를 막연하게나마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철학은 사람을 철들게 하는 학문입니다.

저는 2009년 2월부터 11월까지 40주 동안 서울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인문학 고전들을 강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강의는 《인문 古典 강의》로 묶여 2010년에 출간되었습니다. 2011년에 같은 곳에서 역사 고전들을 강의하고, 《역사 古典 강의》를 출간한 것은 2012년입니다. 그 뒤 이런저런 사정으로 철학 고전들을 읽을 기회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시 서대문구립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2014년에 40주 동안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 강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강의 시간에는 더 많은 고전들을 읽었고 자질구레한 논의도 더 있었습니다만, 책으로 묶기에 적절한 것들만을 여기에 적었습니다.

오늘날 철학은 쇠퇴하는 학문이라고들 합니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그러한 판단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합니다. 겪은 바가 적고, 시야가 좁은 탓에 저는 이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져볼 재주는 없습니다만, 이 고전들을 읽는 동안에는 그러한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였습니다. 저와 함께 이 고전들을 읽었던 이들은 세상사와 별 관계없어 보이는 이 텍스트들을 읽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들을 이끌어간 힘은 세상에 불멸의 이름을 남기려는 명예욕도, 삶의 고통을 잊으려는 도피적 소망도, 주변 사람들에게 어려운 책을 읽고 있음을 보이려는 과시욕도 아닌, 잔잔하면서도 끊이지 않는 학문정신이었을 것입니다. 2014년에 40주 동안 함께 공부했던 그들의 학문정신을 각별히 기억해둡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학문의 토대이자 정수精髓인 철학을 공부하는 장을 마련하고 지켜준 도서관 사서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2016년 7월 강유원 적음

 

<역사 고전 강의>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고전은 언제 읽어도 새로운 지혜를 길어 올릴 수 있는 책입니다. 역사 고전은 그 새로움이 더욱 강렬합니다. 역사 고전은 과거의 이야기와 교훈 등을 담고 있지만, 그것들은 책을 읽는 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에 따라 다른 의미를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강의를 하기 위해서 예전에 읽었던 역사 고전들을 다시 읽으니,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가 고전의 내용들에 겹쳐지면서 역사적 사실들이 단순한 과거의 것으로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가 이행기라는 어렴풋한 자각이, 이른바 ‘역사의 이행기’라 일컬어지는 시대의 사태들에 비춰지면서 일종의 역사철학적 통찰을 가져다주었던 것입니다.

저는 1990년대 초반부터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 전반에 관한 강의를 다양한 사람들에게 해왔습니다. 2009년에는 서울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2월부터 11월까지 40주 동안 매주 2시간씩 인문학 고전을 강의했으며, 그 강의 내용은《인문 古典 강의》라는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인문 古典 강의》와 마찬가지로 강의를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저는 2011년에도 2월부터 11월까지 40주 동안 매주 2시간씩 서울시 동대문구정보화 도서관과 인천시 연수 도서관에서 서양의 역사와 고전에 관한 강의를 했습니다.《인문 古典 강의》가 인문학 전반에 걸친 기본적인 고전을 다루었다면 이 책은 인문학의 세 분야인 문학, 역사, 철학 중 역사만을 다루었습니다. 인문학 공부는 어떤 분야에서 시작하여도 무방하겠지만, 저는 역사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속에서 형성된 우리 자신의 참된 모습, 즉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 자신의 역동적 상호작용에 대한 역사적 통찰이 있어야만 인문학 공부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역사 고전’이라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특정 시대를 연구한 ‘역사학’의 고전을 가리킬 수도 있고, 어떤 시대의 인간 행위자가 자신의 시대를 탁월하게 기록한 ‘역사’의 고전일 수도 있으며, 어떤 시대에 관한 것이면서도 그것을 넘어 역사 전체에 대한 통찰과 세상의 이치를 아우르는 ‘역사철학’의 고전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 고전은 이러한 특징들을 조금씩이라도 모두 담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에 나오는 역사고전들은 그 시대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 것들이거나, 미래에 대한 역사철학적 전망을 탁월하게 제시하는 것들입니다. 저는 이 역사 고전들을 강의하면서 그 고전들이 생겨난 시대적인 맥락부터 주의 깊게 살펴보았습니다. 모든 고전은 반드시 이러한 맥락에 따라 공부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 다만 역사 고전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고대 지중해 세계와 폴리스 시대, 로마와 중세 가톨릭 제국 시대, 근대 국민국가 체제와 세기말, 제1, 2차 세계대전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로 크게 나뉘어 있습니다. 이 시대 구분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이 아닌 정치체제와 국제관계라는 범주에 근거한 것입니다. 시대 구분 아래 강의별 세부 항목들에는 각 시대의 구체적인 전개 과정과 역사 고전에 관한 설명, 시대의 의의 등이 들어 있는데, 이것의 대강은 “차례”와 본문에 서술형 문장으로 적혀 있습니다. “차례”에서 이 대강을 읽어 책 전체 내용을 개관하고 본문으로 들어가면, 본문에서 제시하는 역사의 큰 흐름과 독서의 맥을 짚어 내기가 수월할 것입니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강의를 하면서 소개 했던 “더 읽어 볼 책들”을 읽음으로써 이 책의 한계를 넘어서는 공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앞서 밝혔듯이 이 책을 쓰는 데에는 도서관 강의가 큰 도움이 되었 습니다. 공공 도서관은 말 그대로 ‘공공 장소’이고, 그런 까닭에 공공 도서관에서 강의를 하고 공부를 하는 것은 ‘공적인 일’, 라틴어로 말하면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입니다. 공공 장소를 시설로만 간주하여 그것을 관리하는 것이 전부라고 여기거나 공공 장소에 대한 접근과 허용을 제한하는, 심지어 사적 이익 창출의 수단으로 만들려고 하는 시도가 만연한 시대에, 도서관을 비롯한 여러 공공 장소에서 공적인 강의와 공부가 제약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민주 공화국의 이념을 실현하는 데 적으나마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러한 도움이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함께 공부한 이들에게 다시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고단한 사정 속에서도 강의를 준비하고 진행함으로써 지식 공동체 형성에 있어 큰 기여를 해온 사서들의 우정을 각별히 기억해둡니다.

 
2012년 6월 강유원 적음

 

<인문 고전 강의>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이 책을 읽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고전에 대해 관심은 있으나 막상 혼자 읽기는 버거워서 도움을 얻고자 했다면, 이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책을 펼쳐든 경우입니다. 그러나 그처럼 확연한 목표를 가지고 책을 읽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저 한 번 읽어본다는 생각으로 단순한 호기심에 책을 손에 쥐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어떤 경우든 우리가 책을 읽는 순간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책은 그대로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앞에 놓인 고정된 사물로서의 책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은 변할 수 있습니다. 책 속의 몇몇 문구가 마음속에 남아 있다가 언제고 우리 삶에 싹터오를지 모릅니다. 아주 크게는 인생관이 바뀔 수도 있고 생활습관이나 태도에 변화가 올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이 쓰이게 된 과정이 바로 그러한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2009년 서울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진행한 강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 강의는 2월부터 11월까지 40주 동안 매주 2시간씩 행해졌습니다. 제가 고전을 강의한 일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렇게 오랜 기간 연속적으로 해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러 온 이들이 그렇게 각양각색이었던 것도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10대 청소년부터 자녀를 출가시킨 어머니, 직장인, 대학생까지, 여러 세대와 직업을 가진 이가 함께 모여서 공부를 했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중요한 점을 깨달았습니다. 우선 이렇게 다양한 세대와 직업을 가진 이를 한데 모아줄 수 있는 책은 역시 고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고전은 우리 모두가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공동 지식’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의 주인이고자 하는 진지함과 성실함, 고전 텍스트에 대한 존중감 등의 태도를 갖추기만 하면, 학식의 깊이와 분야에 관계없이 누구나 고전으로부터 오늘날의 지혜를 얻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공부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고전읽기 강의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고전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롭고 놀라웠습니다. 뜻이 맞고 취미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것도 인생의 큰 즐거움이겠습니다만,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삶이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면서 강의를 공유하는 재미와 유익함도 무척 컸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강의는 저 자신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저는 1990년대 초반부터 철학과 인문학을 강의해왔습니다. 역사, 철학, 문학, 정치 등에 관한 다양한 목적의 강의를 많은 사람들에게 했습니다. 이번에 10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고전을 읽으면서는, 저 자신에게 고전이 무엇인지, 공부하는 이들과 어떻게 대화를 나눌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전을 배우러 온 사람들이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모두 1년 가까이 고전을 읽음으로써 책에 대한 생각과 태도는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시각과 마음가짐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는 이들도 이와 같은 변화를 겪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인류 최고의 지식과 지혜가 담겨 있는 고전에 가까이 다가가고, 그로 인해 현재의 자신의 삶을 고상하고 참되게 바꾸어 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고전의 지혜가 가장 지혜롭습니다. 이 책을 쓰는 데에는 동대문구 정보화도서관에서의 강의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함께 공부한 이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강좌를 준비하고 진행함으로써 지식공동체 형성에 있어 큰 기여를 해온 사서들의 우정을 기억해둡니다.

2010년 4월 강유원 적음

지은이: 강유원
출판사: 라티오
분야: 인문학/문학 일반/고전
발행일: 2017년 5월 15일
ISBN: 979-11-959288-1-1  03800
판형: 신국판
가격 및 쪽수: 27,000원/ 406쪽

<<문학 古典 강의>>(#ISBN9791195928811)

나의 삶을 지혜롭게 할, 우리 시대의 공통 교양 

강유원의 ‘고전 연속 강의’ 마지막 권 <문학 古典 강의> 출간

 

“이 책은 최초의 서사시부터 근대의 장편 소설까지 대표적인 서사 고전들을 통해, 
개인이 겪는 고난의 의미와 인간 도야의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자아는 세계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 서사 또는 이야기는 자신의 겪음을 재구성하고 그러한 재구성을 통해 
자신이 사는 공동체, 더 나아가 세계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라야 우리는 타자와 ‘같은 마음’을 갖게 될 것이며, 
개인으로서 구원의 길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40주 동안 공공도서관에서 고전을 강의해왔던 철학자 강유원의 ‘고전 연속 강의’ 시리즈가 완간되었다. ⟪인문 古典 강의⟫(2010), ⟪역사 古典 강의⟫(2012), ⟪철학 古典 강의⟫(2016)에 이은 마지막 권은 ⟪문학 古典 강의⟫(2017)이다.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고전의 지식과 시대적 통찰을 전달하되 학문적 해석도 놓치지 않는 이 시리즈는 “자식을 넘어 손주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은 고전 강의 시리즈”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시리즈는 인문학의 세 영역에 각각 충실하면서도 세 영역들을 아우를 만한 연계성을 가지고 기획되어, ‘성찰’, ‘사유’[관조], ‘매개’[표현]라는 술어들로써 역사, 철학, 문학의 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정신 활동을 통일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인문 古典 강의⟫가 세 영역의 공동 지식을 탐구하면서 삶과 시대의 의미를 새롭게 밝혀내는, 이 시리즈의 입문서라면, ⟪역사 古典 강의⟫는 고전으로서는 다소 덜 알려진 역사 분야의 고전들을 골라 세계 역사의 전진을 바라보는 인간의 성찰적 지식을 탐구한다. ⟪철학 古典 강의⟫는 역사적 맥락을 벗어나 오로지 정신으로서 무한자에 이르려는 인간의 고투와 열망을 체계적 형이상학으로써 서술하고 있으며, ⟪문학 古典 강의⟫는 생 전체를 자기 안으로 내면화하는 과정으로서의 체험, 그리고 그러한 체험을 다시금 타자에게 표현하는 서사[이야기]로서의 문학 작품에 대해 이야기한다. 역사, 철학, 문학은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분야들이며, 각각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므로 균형 잡힌 사유와 종합적 시각을 얻으려면 이 세 분야의 고전 텍스트들을 고루 읽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문학 古典 강의⟫에서 다루는 문학 작품들은, 가장 오래된 문학 형식인 영웅 서사시(길가메쉬 서사시, 오뒷세이아)부터, 서사시의 새로운 형식이라 할 셰익스피어의 드라마(맥베스, 오셀로), 그리고 기존 서사시의 형식적 장점들이 집약된 현대 소설(모비딕)에 이르기까지, 문학 작품들의 원형이라 할 만한 서사 고전들이다. 구약 성서에 속하는 <욥기>나 파스칼의 단편 모음집인 ⟪팡세⟫가 이러한 서사 작품 목록에 들어가 있는 것이 의아할 수 있으나 인류의 가장 오래된 주제 의식을 문학적 형식으로 잘 다룬다는 점에서는 넓은 의미의 서사 고전으로 묶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서사 고전들이 갖는 형식적이면서도 내용적인 공통점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이 일련의 과정, 즉 자기를 찾기 위해서 우선 자기를 잃어버려야 하는 과정을 겪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기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같은 마음을 얻기 위해 타자를 겪는 것’, ‘불멸을 얻기 위해 세상과 부딪히는 것’, 그리고 ‘신에게 향하기 위해 고난을 극복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물론 각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상황과 성격, 사건 전개 방식은 다 다르다.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쉬 서사시》는 주제에 있어서나 구조, 등장인물에 있어서 훗날 등장하는 영웅 서사시들의 원형과 같은 작품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뒷세이아》는 장대한 모험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서 생겨나는 인간 삶의 미세한 국면을 놓치지 않음으로써,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것의 정교한 교합을 보여준다. <욥기>는 구약 성서에 들어 있는 사상서이지만 찬찬히 읽다보면 신앙과는 무관한 삶의 통찰들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이다. 희랍 비극의 3대 작가인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들 안에는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문학 작품들의 오래된 주제와 형식 요소들이 전부 들어 있다. 희랍 비극의 주인공들은 운명에 의해 이율배반의 가장 극적인 상황에 놓이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봄으로써 자신을 비극으로 몰고가는 장엄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도 드라마의 요소들이 모두 들어가 있는데, 희랍의 작품들과의 차이점이라면 등장인물들 간의 성격 차이이다. 희랍 비극에서와는 달리 셰익스피어의 드라마에서 운명은 우연적 요소일 뿐이고 결말을 결정하는 것은 인물의 성격이다. 《팡세》가 신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하는 인간의 유약함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면, 《파우스트》는 낭만주의적 인간형을 통해 인간성의 최대 국면을 거침없이 보여주며, 《모비 딕》 역시 욥의 고래와 싸우는 이교도의 모습에서 인간 실존의 고뇌를 장대하게 묘사한다.

⟪문학 古典 강의⟫를 통해 이러한 서사 고전들의 주제와 형식을 깊이 있게 파악한다면 철학적 역사적 문제들을 사유하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고전들의 모티프를 이어받은 오늘날의 다양한 서사 매체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차례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첫 시간

 

점토서판 기록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제1강 불멸을 향해 나아간 인간의 귀결
제2강 도시를 세운 정치적 영웅, 길가메쉬
제3강 사적인 욕망을 함부로 충족시켰던 길가메쉬
제4강 엔키두와 함께 세속적 야망을 성취하려 했던 길가메쉬
제5강 친구의 죽음 이후 구도자의 여행을 떠났던 길가메쉬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6강 자기만의 것을 찾기 위한 겪음
제7강 고향을 떠나는 젊은 오뒷세우스, 텔레마코스
제8강 애타게 귀향을 원하는 오뒷세우스
제9강 고난과 불안을 감내하는 오뒷세우스
제10강 이야기로써 ‘같은 마음’을 갖게 된 페넬로페와 오뒷세우스

 

구약 성서 <욥기>
제11강 신의 전지전능과 인간 도덕의 한계
제12강 경건한 사람, 욥
제13강 인과불명의 고난에도 입술로 죄를 짓지 않는 욥
제14강 자신을 저주하다가 신에게 반항하는 욥
제15강 말의 잘못을 회개하고 신에게 무릎 꿇는 욥

 

아이스퀼로스 《오레스테이아 3부작》 :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
제16강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이율배반의 상황
제17강 자신의 선택 때문에 운명의 죽음을 맞게 된, 오레스테스의 아버지 아가멤논
제18강 자신의 재앙에 복수를 더함으로써 새로운 운명에 빠져든 오레스테스
제19강 설득의 말과 신의 도움으로 이율배반을 벗어나는 오레스테스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제20강 운명에 수긍하면서도 자기를 굽히지 않는 인간
제21강 지혜와 권세로 오만해진 오이디푸스
제22강 자신에 대한 앎이 파멸로 귀착된 오이디푸스

 

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
제23강 배신으로 인해 분열된 자아의 처참한 복수극
제24강 증오를 위한 증오에 빠져든 메데이아
제25강 저주를 실현하고 허망하게 사라지는 메데이아

 

셰익스피어 《맥베스》
제26강 안정된 규범 없이 쟁투를 벌이는 인간들의 무대
제27강 자연적 힘과 초자연적 위력을 모두 동원하여 왕이 되려는 맥베스
제28강 권력욕의 끝에서 초자연적 힘에 의해 살해당하는 맥베스

 

셰익스피어 《오셀로》
제29강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속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
제30강 자신의 아름다운 사랑을 과시하는 오셀로
제31강 의심으로 허구를 쌓아올려 살인과 파멸을 부르는 오셀로
파스칼 《팡세》
제32강 스스로 ‘불멸’에 이르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하는 개인의 고투
제33강 신으로부터 멀어져 본성이 타락하게 된 인간
제34강 《성서》를 통해 다시 신에게로 향하는 속죄자 인간
괴테 《파우스트》
제35강 삶과 앎과 자연의 합일을 추구하는 낭만주의적 인간 편력
제36강 감각적 삶을 통해 감각을 초월하고자 노력하는 파우스트
제37강 심오하고 포괄적인 가치의 영역으로 올라서는 파우스트

 

멜빌 《모비 딕》
제38강 겪음을 통해 앎에 이르는 충일한 인간의 삶
제39강 진리 닮은 환영을 보기 위해 바다로 나가는 선원 이슈메일
제40강 위엄 있는, 신을 믿지 않는, 신을 닮은 선장 에이해브

 

마지막 시간

 

  • 본문 중에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이 예언한 것은 오뒷세우스의 일생이 휴식 없는 고난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뒷세우스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뒷세우스의 모습이고, 오뒷세우스의 정체성입니다. 자기에게 끝없이 고난이 닥쳐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으니 오뒷세우스는 불멸에 대한 욕심 자체가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어떤 고난이 닥쳤을 때 ‘이걸 이겨내고 나면 그때부터는 행복이 계속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점이 우리를 《오뒷세이아》로 끌어당기는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런 환상도 없이 우리가 직면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희랍의 정신을 일반적으로 ‘합리적 정신’이라는 말로 규정하곤 합니다. 비극 작품들을 읽어나가기 전에 희랍 사상이나 비극과 관련하여 이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이것은 희랍 세계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논의가 될 것입니다. 앞서 읽은 <욥기>를 떠올려보면서 비교를 해봅시다. 이 텍스트는 유대 문학인데 이에 대해서는 합리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욥은 경건한 사람으로 규정되었는데, 그 경건함을 규정할 때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윤리적인 술어들이라고 하는 것들을 사용하였습니다. 욥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은 ‘악에서 떠난 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 악에서 떠난 자인데도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자신 이 왜 그러한 고난을 겪었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신앙의 돈독함만을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욥기>에서 사건의 전개는 사탄과 야훼의 ‘내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욥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욥이 알고 있는 차원이 있고, 야훼와 사탄이 일을 벌이는 차원이 있습니다. <욥기>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주제는 ‘신은 정의로운가’인데, 신과 사탄의 차원에서 해명되는 것과 욥과 그의 친구들 차원에서 해명되는 것이 달랐습니다. 따라서 신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정의와 인간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정의는 합치되지 않습니다. 신의 정의와 인간의 정의는 다르다, 신은 인간을 설득하려 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그저 신의 말에 따르는 수밖에 없고 그것이 신앙이다, 이것이 <욥기> 가 주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문학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이에 관한 일반론을 좀 살펴봅시다. 예술사에 관한 고전적 저작이라 할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저자는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이 “예술적으로 채 소화되지 않은 새 소재를 너무나 급격히 문학 영역에 투입”하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두 가지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서 다루어지는 소재는 기존의 비극 작가들이 다루지 않는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어떤 소재들 이 그의 작품에 “투입”되었는지는 《메데이아》를 아이스퀼로스나 소포클레스와 비교하여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소재들이 “예술적으로 채 소화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문학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무엇인가’와 관련 있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하우저가 에우리피데스를 평가할 때에는 자신이 가진 ‘예술적 소화’ 의 기준이 있었을 것이며, 에우리피데스는 그것에 합치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메데이아》를 읽을 때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일단 이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에우리피데스가 그 소재를 다룬 방식이 반드시 예술적이지 않다고 판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선대의 작가들이 사용하지 않던 방식을 자기 스스로 고안하여 사용함으로써 그가 예술적 표현의 새로운 형식을 창안해냈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가 사용한 방식에 결함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혁신의 방식인지를 예단하지 말고 그 의 작품들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극장들은 관람석과 무대가 구별되어 있기는 했지만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한 공간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보는 관객들 상당수는 서기, 장인, 도제, 여자 등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숙련 노동자 일주일 임금이 6실링(30페니) 정도였고 입석 입장료는 1페니로 추정됩니다. 셰익스피어의 관객들은 듣기에 아주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텔레비전 같은 영상 매체를 보면서도 자막을 봅니다. 그만큼 읽기에 익숙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읽을 만한 것들이 널리 보급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관객들이 듣기에 능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에 쓰인 영어는, 셰익스피어 당시의 수많은 관객들이 도대체 이 정도의 영어를 알아들었을까라고 의심스러울 정도로 수준이 높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데 관객들은 그것을 알아들었습니다. 그의 영어는 관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었음에 주의해야 합니다. 셰익스피어는 희곡 작가이면서 극장주였기 때문에 당연히 관객들이 잘 들을 만한 이야기와 대사를 썼습니다. 이것도 아주 중요한 고려사항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드라마는 이를테면 ‘대중 드라마’였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에 대해 한번 생각해봅시다. ‘사랑’이라는 관념 아래 포섭되는 현상 형태들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사랑은 무엇으로 시작되고 무엇으로 지속되겠습니까. 오셀로는 세상의 평판에 기대어 자신의 고귀함을 드러내고, 그의 사랑 또한 그런 허위의식의 부속물로서 소유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데스데모나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질투에 사로잡히며 자신의 고귀함이 무너지려 하자 데스 데모나를 살해하였습니다. 이아고가 교활하고 악마적이기는 하나 오셀로가 합리적으로 대처했다면 그의 말들은 전혀 귀기울 필요가 없는 허언일 뿐이었을 것입니다. 데스데모나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순정한 사랑이라는 이상적인 모형에 자신을 맞춰가려고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셀로에게 답답하고 멍청해 보이기까지 하는 말과 행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브라반치오의 권위를 무너뜨리면서까지 강하게 밀고간 사랑은 오셀로의 의심 앞에서 너무도 어이없이 나약하였습니다. 이아고는 고귀한 관념으로서의 사랑 따위는 믿지 않았습니다. “지갑에 돈을 채워”라는 말을 반복하며, 관념적인 사랑은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 앞에서 무너져버릴 것이라고 로드리고에게 단언합니다.

독일 낭만주의는 근대의 상황을 분열(Entzweiung) 또는 소외(Entfremdung)라 봅니다. 신과 인간의 분리, 자연과 인간의 분리, 인간과 낭만주의에서만 문제된 것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파스칼의 《팡세》의 출발점은 인간이 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존재라는 것입니다. 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 인간의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상황에 대해 파스칼은 신에게 철저하게 복종하는 방식, 복음서의 방법이라는 대답을 내놓았습니다.이는 인간이 신의 뜻을 알 수 없다는 것, 신은 숨어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이는 욥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어떤 형태든지 인간은 분열이라는 상황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것을 통일하려는 시도가 독일 낭만주의라면,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이러한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여겨서 아예 나서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아니면 신과의 분리 자체를 문제상황이라 생각하지 않고 충일한 인간의 삶을 추구하는 태도도 있습니다. 우리가 다음에 읽을 《모비 딕》에 등장하는 에이해브 선장 같은 이가 후자의 태도를 잘 표상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굳이 이름을 붙여주자면 ‘초인’( Uebermensch)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