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에로스를 찾아서>

지은이: 강유원
출판사: 라티오
분야: 인문학/철학 일반/미학
발행일: 2017년 12월 05일
ISBN: 979-11-959288-2-8  03100
판형: 188*128(B6)
가격 및 쪽수: 14,000원/ 148쪽

 <<에로스를 찾아서>>

결핍과 갈망이라는 이중적 계기, 에로스에 관한 학적 탐구

인간은 결핍을 자각할 때에야 비로소 무엇인가를 갈망하며, 그러한 갈망이 있을 때에야 생성도 가능하다. 욕망은 생명력이다. 그러한 욕망은 어디를 향해 가는가. 그 욕망이 단계를 높여 가면서 궁극적으로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은 결핍과 갈망이라는 두 가지 모순적 계기를 끌어안는 에로스에 관한 학적 탐구이다. 에로스를 학적으로 탐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다시 모순적인데, 에로스는 인간의 주관적 정념이고, 에로스를 탐구하는 것은 그러한 정념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에로스를 객관적으로 관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로스를 학적으로 탐구하기 위해서는, 에로스의 궁극적인 대상이 ‘아름다운 것’이며 그 아름다움은 ‘좋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렇게 미美와 악惡, 또는 선善이 연관되면 미학은 철학이 된다. 대표적인 예가 플라톤이다. 플라톤에서는 아름다운 것과 선한 것이 동등한 위치에 있다.

이 책은 플라톤, 플로티노스, 쿠자누스, 피치노, 헤겔, 소동파, 헤시오도스, 호메로스, 발터 벤야민, 아르놀트 하우저, 에른스트 카시러 등의 글을 통해 ‘아름다움이란 무엇이고 아름다움의 기준은 객관적으로 가능한가’ 등에 대해 성찰하고 있으며, 시대적 연관 속에서 고전주의, 바로크, 매너리즘, 인상주의 등의 철학적 근원도 제시한다. 이에 독자는 미학과 예술철학의 주요 문제들을 사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적 체험의 이해에도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소개

강유원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철학, 역사, 문학, 정치학, 사상사 등에 대한 탐구 성과를 바탕으로 공동 지식과 공통 교양의 확산에 힘써왔으며, 최근에는 실천학과 이론학 체계 일반의 정립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 《책과 세계》(살림, 2004),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라티오, 2008), 《인문 古典 강의》(라티오, 2010), 《역사 古典 강의》(라티오, 2012), 《철학 古典 강의》(라티오, 2016), 《문학 古典 강의》(라티오, 2017), 《숨은 신을 찾아서》(라티오, 2016) 등을 쓰고, 《헤겔 근대 철학사 강의》(공역, 이제이북스, 2005), 《경제학 철학 수고》(이론과실천, 2006), 《철학으로서의 철학사》(공역, 유유, 2016)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차례

하늘 한구석의 미인을 바라본다.

진실처럼 들리는 거짓말,

무사 여신이여!

당신은 아마도 알고 계시겠지만

어떤 놀라운 것,

모든 좋은 것,

이런 건 조금도 겪어 본 적이 없네.

불꽃에서 댕겨진 불빛처럼 혼 안에 비로소 생겨나서,

때는 밤이었다.

아름다움을 넘어선 아름다움,

닮은 것은 닮은 것에서 태어나니…

예술적으로 재현한 것,

끝없는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게 해주시길 빕니다.

사랑이 당당하게.

위기,

탈취,

정신은 감각적인 것에 발을 내딛으면서도

이후 심하게 아팠다.

당신이 한 말은 모두 도리에 맞는 말이오!

주해註解

 

■ 본문 중에서

“인간은 갈망에서 다른 인간의 몸을 탐하고, 그 몸에서 흘러나 오는 것을 들이마시고, 그것을 마시고 자신을 발산함으로써 무아無我의 순간을 향해 간다. 그리하여 그때까지는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의 차원에 올라선다. 이는 갈망에서 시작되었으니 에로틱erotic하고, 전혀 낯선 것이니 엑조틱exotic하며, 절정의 환희를 경험하는 것이니 엑스타틱ecstatic할 것이다.”(38쪽)

“피치노는 플라톤의 《향연》을 읽으며, 그 형식을 그대로 본떠서 또 하나의 ‘향연’을 만들어 내며 사랑, 그것도 경건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신에 대한 사보나롤라의 불 타는 사랑에 놀랐는지, 피치노의 사랑은 따스하다. 성급하지 않다. 물론 피치노도 사보나롤라와 마찬가지로 신과 인간, 신과 세상 사이의 완전한 일치와 교류를 시도하는데, 그 교류의 매개는 역시 사랑이다. 다만 피치노는 뜨겁지 않으며 활활 타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치노는 스승으로서의 소크라테스를 찬양한다. 알키비아데스를 흉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피치노가 사랑하는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다. 인간을 사랑하면 곧바로 절망을 대가로 얻게 되지만 신을 사랑하는 것은, 죽도록 충족에 이를 수 없다는 본연의 양상 때문에 죽을 때까지 사랑을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그리하여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영원한 사랑을 구가하는 극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51쪽)

“지금은 이렇게 그럴싸한 말들로써 인상주의를 치장하는 우리들이 과연 19세기에 그것을 마주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울퉁불퉁하던 세계가 돈 앞에 무너져 평탄하게 되어 가던 세계에서,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 때문에 애국심이 파탄나는 세계에서, ‘파리코뮌’이라 불리는 계급투쟁의 시가지 전투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은 유례없는 혹평을 견디면서 자신들의 그림을 고수했다. 분명 그들은 19세기라는 시대의 혼란함과 교감하고 있었고, 당대의 ‘높으신 분’들은 시대를 살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예술가는 정치적 권위도 후원자도, 더 나아가 관객도 믿어서는 안 되는, 오로지 자신만을 믿어야 하는 시대였던 것 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믿었던 자들은 후대의 평가를 얻어 불멸을 획득하게 되었다.”(67쪽)

“동파가 바라보는 것은 ‘하늘 한구석의 미인’이다. 이는 동파의 마음속에 그리고 있던 실제의 미인이 하늘에 투사된 것일 수도 있고, 인간세人間世를 벗어난 이상적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이해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초의 무격은 하늘과 대화하였고, 동파는 초의 무격을 떠올리며 하늘을 바라본다. 무격은 시인에게 영감을 주었고 시인은 그 영감으로써 시를 내놓았으며,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 시를 읽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동파의 시를 읽는 이들은 무엇을 읽는 것인가. 초의 무격들이 전해 준 하늘의 이야기를 읽는 것인가, 아니면 동파의 시를 읽는 것인가, 아니면 시를 읽을 때 자신 안에서 생겨나는 감흥을 느끼고 있을 뿐인가.”(79쪽)

“체계공간 안에서 보느냐 집합공간 안에서 보느냐에 따라 세계는 다르게 파악되므로, 사물을 어떤 방식으로 보느냐는 화가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단초라 할 수 있다. 집합공간 안에 놓인 사물들은 그것들 각각의 의의를 독자적으로 표현하며, 그것들 사이의 빈 공간에도 일정한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체계공간 안에 사물을 놓는 원근법에 따르면 사물들은 하나의 시점에 수적으로, 또는 연속량(Quantum continuum)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 시점을 중심으로 현실의 모든 사물들이 추상화되어 정돈된다. 후대의 인상파 화가들이나 입체파 화가들은 그러한 이상화된, 또는 신적 입장에 올라선 시점을 폐기하고 눈앞에 놓인 현상들의 순간적 집합 인상(또는 인상 묶음)을 나열하거나, 그러한 다양하고 다면적인 인상을 묶어서 전체를 재구성해 보려 한다. 이들의 시도는 근본적으로 ‘르네상스 고전기’를 지배한 양식원리인 원근법과의 연관 속에 있는 것이다.”(115쪽)

[강유원의 고전 연속 강의]에서 다룬 고전들

인문 고전 강의

 

<<일리아스>> , 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ISBN9788991290167)

<<안티고네>>, 소포클레스, 천병희 옮김, 문예출판사 (#ISBN9788931001686)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강상진 외 옮김, 길 (#ISBN9788964450383)

<<신곡:지옥>>, 단테,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ISBN9788932910154)
<<신곡:연옥>>, 단테,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ISBN9788932910161)
<<신곡:천국>>, 단테,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ISBN9788932910178)

<<군주론>>, 마키아벨리, 강정인 외 옮김, 까치 (#ISBN9788952114679)

<<방법서설>>, 데카르트, 이현복 옮김, 문예출판사 (#ISBN9788931003277)

<<통치론>>, 로크, 강정인 외 옮김, 까치 (#ISBN9788972914280)

<<법의 정신>>, 몽테스키외, 고봉만 옮김, 책세상 (#ISBN9788970135861)

<<직업으로서의 정치>>, 베버, 전성우 옮김, 나남 (#ISBN9788908061194)

<<파놉티콘>>, 벤담, 신건수 옮김, 책세상 (#ISBN9788970136325)

<<거대한 전환>>, 폴라니, 홍기빈 옮김, 길, (#ISBN9788987671314)

<<논어>>, 공자, 미야자키 이치사다 해석, 박영철 옮김, 이산 (#ISBN9788987608235)

 

역사 고전 강의

 

<<역사>>, 헤로도토스,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ISBN9788991290266)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퀴디데스,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ISBN9788991290402)

<<갈리아 원정기>>, 율리우스 카이사르,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ISBN9788991290440)

<<신국론>>, 아우구스티누스, 조호연 외 옮김, 현대지성사 (#ISBN9788944724268)

<<새로운 학문>>, 잠바티스타 배코, 이원두 옮김, 동문선 (#ISBN9788980384204)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 마르퀴 드 콩도르세, 장세룡 옮김, 책세상 (#ISBN9788970133003)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프리드리히 엥겔스, 이재만 옮김, 라티오 (#ISBN9788996056188)

<<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 강성호 옮김, 책세상 (#ISBN9788970133256)

<<공산당 선언>>,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강유원 옮김, 이론과실천 (#ISBN9788931360226)

<<20년의 위기>>, 에드워드 카, 김태현 옮김, 녹문당 (#ISBN9788988684160)

 

철학 고전 강의

 

<<신들의 계보>>, 헤시오도스,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ISBN9788991290297)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옮김, 아카넷 (#ISBN9788957330630)

<<파이돈>>, 플라톤, 박종현 역주, 서광사 (#ISBN9788930606202)

<<국가>>, 플라톤, 박종현 역주, 서광사 (#ISBN9788930606097)

<<형이상학 1, 2>>, 아리스토텔레스, 조대호 옮김, 나남 (#ISBN9788930085823)

<<철학의 원리>>, 데카르트, 원석영 옮김, 아카넷 (#ISBN9788957332436)

<<성찰>>, 데카르트, 이현복 옮김, 문예출판사 (#ISBN9788931003260)

<<형이상학 서설>>, 칸트, 백종현 옮김, 아카넷 (#ISBN9788957332474)

<<판단력 비판>>, 칸트, 이석윤 옮김, 박영사 (#ISBN9788971890103)

<철학백과>, <<논리학 서론, 철학백과 서론>>, 헤겔, 김소영 옮김, 책세상 (#ISBN9788970133133)

<<정신현상학>> 서문, 헤겔, 강유원 번역문

 

문학 고전 강의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옮김, 휴머니스트 (#ISBN9788958620242)

<<오뒷세이아>>, 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ISBN9788991290150)

<욥기>, <<공동번역 성서>>, 대한성서공회 엮음, 대한성서공회 (#ISBN9788941250050)

오레스테이아 3부작: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 아이스퀼로스,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2008 (#ISBN9788991290204)

<오디푸스 왕>,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소포클레스,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ISBN9788991290211)

<메데이아>,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에우리피데스,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ISBN9788991290259)

<<맥베스>>, 윌리엄 셰익스피어, 김정환 옮김, 도서출판 아침이슬 (#ISBN9788988996867)

<<오셀로>>, 윌리엄 셰익스피어, 김정환 옮김, 도서출판 아침이슬 (#ISBN9788988996843)

<<팡세>>, 블레즈 파스칼 지음, 김형길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ISBN9788952117458)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이인웅 옮김, 문학동네 (#ISBN9788954601528)

<<모비 딕>>, 허먼 멜빌, 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ISBN9788972883906)

 

[강유원의 고전 연속 강의] 출간을 마무리하며

<인문 고전 강의>, <역사 고전 강의>, <철학 고전 강의>, <문학 고전 강의> 네 권의 고전 강의 시리즈가 완간되었습니다. 강의가 시작되고 책이 완간되기까지는 9년(2009년~201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실제로 강의가 이루어진 기간은 160주(2009년 40주, 2011년 40주, 2014년 40주, 2015년 40주)입니다. 이 기간 동안 수백 명의 수강생들이 공공도서관에서 현장 강의를 들었고, 몇 만 명의 독자분들이 책을 읽어주셨습니다.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앎에 대한 존숭심과 수강생들에 대한 애정으로 강의를 이끌어주신 강유원 선생님(“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앎이 지혜의 근본임을 믿고 꾸준히 공부하신 수강생분들에게도 감사드리며, 묵묵히 책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과 그런 독자분들과의 만남에 애써주시는 MD분들(“강유원의 고전 강의 마지막 시간”)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2017년 5월15일 라티오 드림.

[강유원의 고전 연속 강의]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문학 고전 강의>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인간은 말을 함으로써 인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이 아닌 동물들도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을 가지고 있을 터이니 인간만이 말을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단순히 기능적인 사용에서 멈추지 않고, 말에 거리를 두고 말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보고, 말 자체를 꾸미고 말을 더 잘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은 적어도 지금까지 알려진 지식에 따르면 인간만이 하는 일입니다.

사람은 말을 통해서라야 뭐든 알 수 있습니다. 말을 해야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소리를 내지 않는 혼잣말이라 해도 그것은 자기 자신을 상대로 하는 대화입니다. 누군가와 대면하여 말을 하든 머리 속으로 혼잣말을 하든, 사람은 끊임없이 말을 합니다. 그런 까닭에 사람이 더이상 말을 하지 않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사람답게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상대에게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할 말이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상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일 것입니다. ‘한 마디도 하고 싶지 않은 상대’란 사실상 우리에게는 ‘꼴도 보기 싫은 상대’보다 훨씬 더 무의미한 존재입니다. 그 사람과 우리 사이는, 마주 앉아 있다 해도 결코 이어질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말을 걸고 싶지 않은 상태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몹시도 혐오스럽거나 절망스러울 때 그러할 것 입니다. 침묵은 상대를 끊은 상태입니다. 우리는 말하고 싶어서 말을 하는 존재라기보다는 별수 없이 말을 해야만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가 문학이라 부르는 것은 특정한 학문 영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라고 하는 인간 본연의 행위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아닌 ‘문학함’이 더 적절한 표현일 테고 이를 달리 말해본다면 ‘이야기하기’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눈앞에 놓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즐겁거나 괴로웠던 일들을 기억하고 노래합니다. 삶을 아름답게 물들였거나 참담하게 했던 장면을 되살려 그려냅니다.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그리는 것의 소재는 이렇게 자신의 삶에서 길어올린 것들일테지만 그것 안에는 오로지 자신만 있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 장소, 물건, 사건들이 함께 묻어 들어가서 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든 다른 사람에게 노래하기 위해서든 모든 이야기에는 이야기하는 이가 만들어 넣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들이 빈틈없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만큼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것은 무척이나 지리하여 다시 듣고 싶지 않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되새길수록 재미있고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또는 스스로의 흥에 겨워서 ‘잘’ 이야기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잘 이야기된 것, 잘 노래된 것, 잘 그려진 것 중에서 오래도록 사람들이 되풀이하여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그리는 것들을 우리는 ‘문학 고전’이라 부를 것 입니다. 이 책에서 우리가 읽게 될 이야기들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디에서나 찾아낼 수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잘 이야기된 것들이어서 이야기 속 사람들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양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잘 읽음으로써 우리는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자신에 대해 더 잘 이야기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처음 쓴 고전 해설서는 《책과 세계》였습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강의를 하다가 학교를 떠난 것은 1990년대 말이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강의할 일도 없던 터에 혼자 재미삼아 그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하였던 서구의 고전들을 읽던 중, 뜻밖에도 출판사에서 문고판으로 된 고전 해설서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퇴근 후에, 주말에, 이럭저럭 원고를 써서 2004년에 출간한 것이 《책과 세계》입니다. 회사를 그만둔 다음에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강의를 하다가 서울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2009년 2월부터 11월까지 40주 동안 하게 된 것이 ‘고전 열 권 읽기’라는 강의였습니다. 그때의 강의가 《인문 古典 강의》로 묶여 2010년에 출간되었습니다. 2011년에는 같은 곳에서 역사에 관한 책들을 40주 동안 강의하여 《역사 古典 강의》를 2012년에 출간하였습니다. 이후 서울시 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2014년에 40주 동안 형이상학에 대한 강의를 하여 2016년에 《철학 古典 강의》를 출간하였고, 2015년에 서울시 성북정보도서관에서 문학 고전들을 40주 동안 강의하여 지금 2017년에 《문학 古典 강의》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제가 읽은 책들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습니다만 고전 연속 강의를 위해 읽은 책들은 문자 그대로 격동적인 2017년의 한국과는 무관해 보이기만 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했나 하는 회한이 남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고전을 읽음으로써 생각의 힘이 강해지고 깊어졌으리라고, 별것도 아닌 삶을 살면서 우는 소리를 덜 하게 되었으리라고 막연하게 위안을 해봅니다. 앞서 출간한 책들을 다시 읽어보니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를 이런저런 멋진 말들로써 맺으려 노력한 듯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런 말들을 할 염치가 없습니다.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강의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 이들, 강의를 들어준 이들, 그리고 제가 알아차리지 못한 도움을 준 이들에게 고맙다는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거듭 고맙습니다.

2017년 5월 강유원 적음

 

 

<철학 고전 강의>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이 책은 오늘날 철학이라 불리는 학문 영역 중에서도 형이상학 분야의 고전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철학이라 불리는”이라고 한 것은 무엇보다도 고대의 철학자들, 즉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들이 철학 연구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이전 사람들, 즉 헤시오도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 등은 더욱이나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대의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철학 연구자임을 의식하였던 데카르트, 칸트, 헤겔은 모두 자신들이 세계의 근본원리를 탐구하고 있다는 자각을 뚜렷하게 가졌을 것입니다.

철학은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그리고 그 세계 안에 살고 있는 자신에 관하여 가장 근본적인 것을 물음으로써 시작됩니다. 이러한 물음은 그저 살고 있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평온하든 혼란스럽든, 나날을 살아가면서도 그러한 나날에서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궁금해 하는, 그 나날로부터 한 발짝 물러선 지점에 서 있는 사람에게만 철학적 물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흔히들 역사가 끝난 지점에서 철학이 시작된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유도 자신의 몸을 세상과 곧바로 맞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역사적 사유 역시 반성적 사유이고 철학적 사유와 닮아 있습니다. 다만 철학적 사유는 조금은 더 깊게 내려간 근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세계의 역사에 관하여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만 철학적 관심도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고대 중국의 역사 책에 《춘추》春秋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자孔子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책입니다. 이 책 이름을 살펴보겠습니다. ‘봄·가을’입니다. 계절 이름입니다. 굳이 봄·여름·가을·겨울을 다 말하지 않아도 이 두 계절만으로도 한 해를 말할 수 있습니다. 춘추는 자연입니다. 자연自然은 말 그대로 늘 그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올 봄에는 꽃이 예년만 못했고, 이렇게 덥기는 한 10여 년 만에 처음이고, 올해 단풍은 유난히 어여뻤으며, 이번 겨울은 벌써 추위가 사무치는데, 도대체 뭐가 늘 그러하다는 말인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 들여다본다면 이런 반문이 생겨날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마다 계절은 달랐으니까 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늘 그러합니다. 봄에 핀 꽃이 아무리 흐드러졌다 해도 겨울까지 피어 있을 리는 없습니다. 반드시 죽습니다. 그것이 늘 그러한 것입니다. 핀다, 죽는다, 다시 핀다, 죽는다, 다시 핀다… 바뀌는 게 있어 보이는데 그 안에 변함없는 것이 있습니다. 있어 ‘보이는 것’이 있고, 늘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있는 것’이 있습니다. 둘 다 있습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가리키고, 다른 하나가 하나를 드러냅니다. 이렇게 해서 불변(에 가까운 것)을 이룹니다.

“춘추”는 역사책 이름입니다. 자연의 겉모습을 보고 지었는지, 자연 뒤에 있는 것을 겨냥하여 지은 것인지, 둘을 겹쳐 지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춘추는 사람의 일을 적습니다. 꽃보다 유한한 사람의 일을 적습니다. 사람은 태어난다, 사람은 죽는다, 이걸로 끝입니다. 사람에 관하여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역사는 그처럼 당연해 보이는 것을 기록하였고, 철학은 인간의 일에서 근원적인 것, 변함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찾아보려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철학은 그 탐구가 찾아낸 성과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뻔해 보이는 것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철학이라는 말보다는 ‘철학함’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수 있습니다. 이 철학함은, 또는 공부는, 변함 속의 인간이 변함 없음을 향해 가는 행위입니다. 그러한 탐구 행위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떠한지, 그 안에서 자신은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를 막연하게나마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철학은 사람을 철들게 하는 학문입니다.

저는 2009년 2월부터 11월까지 40주 동안 서울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인문학 고전들을 강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강의는 《인문 古典 강의》로 묶여 2010년에 출간되었습니다. 2011년에 같은 곳에서 역사 고전들을 강의하고, 《역사 古典 강의》를 출간한 것은 2012년입니다. 그 뒤 이런저런 사정으로 철학 고전들을 읽을 기회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시 서대문구립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2014년에 40주 동안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 강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강의 시간에는 더 많은 고전들을 읽었고 자질구레한 논의도 더 있었습니다만, 책으로 묶기에 적절한 것들만을 여기에 적었습니다.

오늘날 철학은 쇠퇴하는 학문이라고들 합니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그러한 판단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합니다. 겪은 바가 적고, 시야가 좁은 탓에 저는 이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져볼 재주는 없습니다만, 이 고전들을 읽는 동안에는 그러한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였습니다. 저와 함께 이 고전들을 읽었던 이들은 세상사와 별 관계없어 보이는 이 텍스트들을 읽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들을 이끌어간 힘은 세상에 불멸의 이름을 남기려는 명예욕도, 삶의 고통을 잊으려는 도피적 소망도, 주변 사람들에게 어려운 책을 읽고 있음을 보이려는 과시욕도 아닌, 잔잔하면서도 끊이지 않는 학문정신이었을 것입니다. 2014년에 40주 동안 함께 공부했던 그들의 학문정신을 각별히 기억해둡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학문의 토대이자 정수精髓인 철학을 공부하는 장을 마련하고 지켜준 도서관 사서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2016년 7월 강유원 적음

 

<역사 고전 강의>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고전은 언제 읽어도 새로운 지혜를 길어 올릴 수 있는 책입니다. 역사 고전은 그 새로움이 더욱 강렬합니다. 역사 고전은 과거의 이야기와 교훈 등을 담고 있지만, 그것들은 책을 읽는 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에 따라 다른 의미를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강의를 하기 위해서 예전에 읽었던 역사 고전들을 다시 읽으니,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가 고전의 내용들에 겹쳐지면서 역사적 사실들이 단순한 과거의 것으로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가 이행기라는 어렴풋한 자각이, 이른바 ‘역사의 이행기’라 일컬어지는 시대의 사태들에 비춰지면서 일종의 역사철학적 통찰을 가져다주었던 것입니다.

저는 1990년대 초반부터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 전반에 관한 강의를 다양한 사람들에게 해왔습니다. 2009년에는 서울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2월부터 11월까지 40주 동안 매주 2시간씩 인문학 고전을 강의했으며, 그 강의 내용은《인문 古典 강의》라는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인문 古典 강의》와 마찬가지로 강의를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저는 2011년에도 2월부터 11월까지 40주 동안 매주 2시간씩 서울시 동대문구정보화 도서관과 인천시 연수 도서관에서 서양의 역사와 고전에 관한 강의를 했습니다.《인문 古典 강의》가 인문학 전반에 걸친 기본적인 고전을 다루었다면 이 책은 인문학의 세 분야인 문학, 역사, 철학 중 역사만을 다루었습니다. 인문학 공부는 어떤 분야에서 시작하여도 무방하겠지만, 저는 역사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속에서 형성된 우리 자신의 참된 모습, 즉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 자신의 역동적 상호작용에 대한 역사적 통찰이 있어야만 인문학 공부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역사 고전’이라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특정 시대를 연구한 ‘역사학’의 고전을 가리킬 수도 있고, 어떤 시대의 인간 행위자가 자신의 시대를 탁월하게 기록한 ‘역사’의 고전일 수도 있으며, 어떤 시대에 관한 것이면서도 그것을 넘어 역사 전체에 대한 통찰과 세상의 이치를 아우르는 ‘역사철학’의 고전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 고전은 이러한 특징들을 조금씩이라도 모두 담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에 나오는 역사고전들은 그 시대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 것들이거나, 미래에 대한 역사철학적 전망을 탁월하게 제시하는 것들입니다. 저는 이 역사 고전들을 강의하면서 그 고전들이 생겨난 시대적인 맥락부터 주의 깊게 살펴보았습니다. 모든 고전은 반드시 이러한 맥락에 따라 공부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 다만 역사 고전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고대 지중해 세계와 폴리스 시대, 로마와 중세 가톨릭 제국 시대, 근대 국민국가 체제와 세기말, 제1, 2차 세계대전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로 크게 나뉘어 있습니다. 이 시대 구분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이 아닌 정치체제와 국제관계라는 범주에 근거한 것입니다. 시대 구분 아래 강의별 세부 항목들에는 각 시대의 구체적인 전개 과정과 역사 고전에 관한 설명, 시대의 의의 등이 들어 있는데, 이것의 대강은 “차례”와 본문에 서술형 문장으로 적혀 있습니다. “차례”에서 이 대강을 읽어 책 전체 내용을 개관하고 본문으로 들어가면, 본문에서 제시하는 역사의 큰 흐름과 독서의 맥을 짚어 내기가 수월할 것입니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강의를 하면서 소개 했던 “더 읽어 볼 책들”을 읽음으로써 이 책의 한계를 넘어서는 공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앞서 밝혔듯이 이 책을 쓰는 데에는 도서관 강의가 큰 도움이 되었 습니다. 공공 도서관은 말 그대로 ‘공공 장소’이고, 그런 까닭에 공공 도서관에서 강의를 하고 공부를 하는 것은 ‘공적인 일’, 라틴어로 말하면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입니다. 공공 장소를 시설로만 간주하여 그것을 관리하는 것이 전부라고 여기거나 공공 장소에 대한 접근과 허용을 제한하는, 심지어 사적 이익 창출의 수단으로 만들려고 하는 시도가 만연한 시대에, 도서관을 비롯한 여러 공공 장소에서 공적인 강의와 공부가 제약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민주 공화국의 이념을 실현하는 데 적으나마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러한 도움이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함께 공부한 이들에게 다시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고단한 사정 속에서도 강의를 준비하고 진행함으로써 지식 공동체 형성에 있어 큰 기여를 해온 사서들의 우정을 각별히 기억해둡니다.

 
2012년 6월 강유원 적음

 

<인문 고전 강의>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이 책을 읽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고전에 대해 관심은 있으나 막상 혼자 읽기는 버거워서 도움을 얻고자 했다면, 이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책을 펼쳐든 경우입니다. 그러나 그처럼 확연한 목표를 가지고 책을 읽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저 한 번 읽어본다는 생각으로 단순한 호기심에 책을 손에 쥐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어떤 경우든 우리가 책을 읽는 순간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책은 그대로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앞에 놓인 고정된 사물로서의 책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은 변할 수 있습니다. 책 속의 몇몇 문구가 마음속에 남아 있다가 언제고 우리 삶에 싹터오를지 모릅니다. 아주 크게는 인생관이 바뀔 수도 있고 생활습관이나 태도에 변화가 올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이 쓰이게 된 과정이 바로 그러한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2009년 서울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진행한 강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 강의는 2월부터 11월까지 40주 동안 매주 2시간씩 행해졌습니다. 제가 고전을 강의한 일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렇게 오랜 기간 연속적으로 해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러 온 이들이 그렇게 각양각색이었던 것도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10대 청소년부터 자녀를 출가시킨 어머니, 직장인, 대학생까지, 여러 세대와 직업을 가진 이가 함께 모여서 공부를 했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중요한 점을 깨달았습니다. 우선 이렇게 다양한 세대와 직업을 가진 이를 한데 모아줄 수 있는 책은 역시 고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고전은 우리 모두가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공동 지식’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의 주인이고자 하는 진지함과 성실함, 고전 텍스트에 대한 존중감 등의 태도를 갖추기만 하면, 학식의 깊이와 분야에 관계없이 누구나 고전으로부터 오늘날의 지혜를 얻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공부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고전읽기 강의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고전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롭고 놀라웠습니다. 뜻이 맞고 취미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것도 인생의 큰 즐거움이겠습니다만,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삶이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면서 강의를 공유하는 재미와 유익함도 무척 컸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강의는 저 자신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저는 1990년대 초반부터 철학과 인문학을 강의해왔습니다. 역사, 철학, 문학, 정치 등에 관한 다양한 목적의 강의를 많은 사람들에게 했습니다. 이번에 10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고전을 읽으면서는, 저 자신에게 고전이 무엇인지, 공부하는 이들과 어떻게 대화를 나눌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전을 배우러 온 사람들이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모두 1년 가까이 고전을 읽음으로써 책에 대한 생각과 태도는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시각과 마음가짐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는 이들도 이와 같은 변화를 겪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인류 최고의 지식과 지혜가 담겨 있는 고전에 가까이 다가가고, 그로 인해 현재의 자신의 삶을 고상하고 참되게 바꾸어 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고전의 지혜가 가장 지혜롭습니다. 이 책을 쓰는 데에는 동대문구 정보화도서관에서의 강의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함께 공부한 이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강좌를 준비하고 진행함으로써 지식공동체 형성에 있어 큰 기여를 해온 사서들의 우정을 기억해둡니다.

2010년 4월 강유원 적음

출간 <문학 古典 강의>

지은이: 강유원
출판사: 라티오
분야: 인문학/문학 일반/고전
발행일: 2017년 5월 15일
ISBN: 979-11-959288-1-1  03800
판형: 신국판
가격 및 쪽수: 27,000원/ 406쪽

<<문학 古典 강의>>(#ISBN9791195928811)

나의 삶을 지혜롭게 할, 우리 시대의 공통 교양 

강유원의 ‘고전 연속 강의’ 마지막 권 <문학 古典 강의> 출간

 

“이 책은 최초의 서사시부터 근대의 장편 소설까지 대표적인 서사 고전들을 통해, 
개인이 겪는 고난의 의미와 인간 도야의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자아는 세계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 서사 또는 이야기는 자신의 겪음을 재구성하고 그러한 재구성을 통해 
자신이 사는 공동체, 더 나아가 세계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라야 우리는 타자와 ‘같은 마음’을 갖게 될 것이며, 
개인으로서 구원의 길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40주 동안 공공도서관에서 고전을 강의해왔던 철학자 강유원의 ‘고전 연속 강의’ 시리즈가 완간되었다. ⟪인문 古典 강의⟫(2010), ⟪역사 古典 강의⟫(2012), ⟪철학 古典 강의⟫(2016)에 이은 마지막 권은 ⟪문학 古典 강의⟫(2017)이다.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고전의 지식과 시대적 통찰을 전달하되 학문적 해석도 놓치지 않는 이 시리즈는 “자식을 넘어 손주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은 고전 강의 시리즈”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시리즈는 인문학의 세 영역에 각각 충실하면서도 세 영역들을 아우를 만한 연계성을 가지고 기획되어, ‘성찰’, ‘사유’[관조], ‘매개’[표현]라는 술어들로써 역사, 철학, 문학의 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정신 활동을 통일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인문 古典 강의⟫가 세 영역의 공동 지식을 탐구하면서 삶과 시대의 의미를 새롭게 밝혀내는, 이 시리즈의 입문서라면, ⟪역사 古典 강의⟫는 고전으로서는 다소 덜 알려진 역사 분야의 고전들을 골라 세계 역사의 전진을 바라보는 인간의 성찰적 지식을 탐구한다. ⟪철학 古典 강의⟫는 역사적 맥락을 벗어나 오로지 정신으로서 무한자에 이르려는 인간의 고투와 열망을 체계적 형이상학으로써 서술하고 있으며, ⟪문학 古典 강의⟫는 생 전체를 자기 안으로 내면화하는 과정으로서의 체험, 그리고 그러한 체험을 다시금 타자에게 표현하는 서사[이야기]로서의 문학 작품에 대해 이야기한다. 역사, 철학, 문학은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분야들이며, 각각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므로 균형 잡힌 사유와 종합적 시각을 얻으려면 이 세 분야의 고전 텍스트들을 고루 읽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문학 古典 강의⟫에서 다루는 문학 작품들은, 가장 오래된 문학 형식인 영웅 서사시(길가메쉬 서사시, 오뒷세이아)부터, 서사시의 새로운 형식이라 할 셰익스피어의 드라마(맥베스, 오셀로), 그리고 기존 서사시의 형식적 장점들이 집약된 현대 소설(모비딕)에 이르기까지, 문학 작품들의 원형이라 할 만한 서사 고전들이다. 구약 성서에 속하는 <욥기>나 파스칼의 단편 모음집인 ⟪팡세⟫가 이러한 서사 작품 목록에 들어가 있는 것이 의아할 수 있으나 인류의 가장 오래된 주제 의식을 문학적 형식으로 잘 다룬다는 점에서는 넓은 의미의 서사 고전으로 묶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서사 고전들이 갖는 형식적이면서도 내용적인 공통점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이 일련의 과정, 즉 자기를 찾기 위해서 우선 자기를 잃어버려야 하는 과정을 겪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기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같은 마음을 얻기 위해 타자를 겪는 것’, ‘불멸을 얻기 위해 세상과 부딪히는 것’, 그리고 ‘신에게 향하기 위해 고난을 극복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물론 각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상황과 성격, 사건 전개 방식은 다 다르다.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쉬 서사시》는 주제에 있어서나 구조, 등장인물에 있어서 훗날 등장하는 영웅 서사시들의 원형과 같은 작품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뒷세이아》는 장대한 모험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서 생겨나는 인간 삶의 미세한 국면을 놓치지 않음으로써,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것의 정교한 교합을 보여준다. <욥기>는 구약 성서에 들어 있는 사상서이지만 찬찬히 읽다보면 신앙과는 무관한 삶의 통찰들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이다. 희랍 비극의 3대 작가인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들 안에는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문학 작품들의 오래된 주제와 형식 요소들이 전부 들어 있다. 희랍 비극의 주인공들은 운명에 의해 이율배반의 가장 극적인 상황에 놓이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봄으로써 자신을 비극으로 몰고가는 장엄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도 드라마의 요소들이 모두 들어가 있는데, 희랍의 작품들과의 차이점이라면 등장인물들 간의 성격 차이이다. 희랍 비극에서와는 달리 셰익스피어의 드라마에서 운명은 우연적 요소일 뿐이고 결말을 결정하는 것은 인물의 성격이다. 《팡세》가 신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하는 인간의 유약함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면, 《파우스트》는 낭만주의적 인간형을 통해 인간성의 최대 국면을 거침없이 보여주며, 《모비 딕》 역시 욥의 고래와 싸우는 이교도의 모습에서 인간 실존의 고뇌를 장대하게 묘사한다.

⟪문학 古典 강의⟫를 통해 이러한 서사 고전들의 주제와 형식을 깊이 있게 파악한다면 철학적 역사적 문제들을 사유하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고전들의 모티프를 이어받은 오늘날의 다양한 서사 매체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차례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첫 시간

 

점토서판 기록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제1강 불멸을 향해 나아간 인간의 귀결
제2강 도시를 세운 정치적 영웅, 길가메쉬
제3강 사적인 욕망을 함부로 충족시켰던 길가메쉬
제4강 엔키두와 함께 세속적 야망을 성취하려 했던 길가메쉬
제5강 친구의 죽음 이후 구도자의 여행을 떠났던 길가메쉬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6강 자기만의 것을 찾기 위한 겪음
제7강 고향을 떠나는 젊은 오뒷세우스, 텔레마코스
제8강 애타게 귀향을 원하는 오뒷세우스
제9강 고난과 불안을 감내하는 오뒷세우스
제10강 이야기로써 ‘같은 마음’을 갖게 된 페넬로페와 오뒷세우스

 

구약 성서 <욥기>
제11강 신의 전지전능과 인간 도덕의 한계
제12강 경건한 사람, 욥
제13강 인과불명의 고난에도 입술로 죄를 짓지 않는 욥
제14강 자신을 저주하다가 신에게 반항하는 욥
제15강 말의 잘못을 회개하고 신에게 무릎 꿇는 욥

 

아이스퀼로스 《오레스테이아 3부작》 :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
제16강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이율배반의 상황
제17강 자신의 선택 때문에 운명의 죽음을 맞게 된, 오레스테스의 아버지 아가멤논
제18강 자신의 재앙에 복수를 더함으로써 새로운 운명에 빠져든 오레스테스
제19강 설득의 말과 신의 도움으로 이율배반을 벗어나는 오레스테스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제20강 운명에 수긍하면서도 자기를 굽히지 않는 인간
제21강 지혜와 권세로 오만해진 오이디푸스
제22강 자신에 대한 앎이 파멸로 귀착된 오이디푸스

 

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
제23강 배신으로 인해 분열된 자아의 처참한 복수극
제24강 증오를 위한 증오에 빠져든 메데이아
제25강 저주를 실현하고 허망하게 사라지는 메데이아

 

셰익스피어 《맥베스》
제26강 안정된 규범 없이 쟁투를 벌이는 인간들의 무대
제27강 자연적 힘과 초자연적 위력을 모두 동원하여 왕이 되려는 맥베스
제28강 권력욕의 끝에서 초자연적 힘에 의해 살해당하는 맥베스

 

셰익스피어 《오셀로》
제29강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속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
제30강 자신의 아름다운 사랑을 과시하는 오셀로
제31강 의심으로 허구를 쌓아올려 살인과 파멸을 부르는 오셀로
파스칼 《팡세》
제32강 스스로 ‘불멸’에 이르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하는 개인의 고투
제33강 신으로부터 멀어져 본성이 타락하게 된 인간
제34강 《성서》를 통해 다시 신에게로 향하는 속죄자 인간
괴테 《파우스트》
제35강 삶과 앎과 자연의 합일을 추구하는 낭만주의적 인간 편력
제36강 감각적 삶을 통해 감각을 초월하고자 노력하는 파우스트
제37강 심오하고 포괄적인 가치의 영역으로 올라서는 파우스트

 

멜빌 《모비 딕》
제38강 겪음을 통해 앎에 이르는 충일한 인간의 삶
제39강 진리 닮은 환영을 보기 위해 바다로 나가는 선원 이슈메일
제40강 위엄 있는, 신을 믿지 않는, 신을 닮은 선장 에이해브

 

마지막 시간

 

  • 본문 중에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이 예언한 것은 오뒷세우스의 일생이 휴식 없는 고난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뒷세우스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뒷세우스의 모습이고, 오뒷세우스의 정체성입니다. 자기에게 끝없이 고난이 닥쳐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으니 오뒷세우스는 불멸에 대한 욕심 자체가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어떤 고난이 닥쳤을 때 ‘이걸 이겨내고 나면 그때부터는 행복이 계속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점이 우리를 《오뒷세이아》로 끌어당기는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런 환상도 없이 우리가 직면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희랍의 정신을 일반적으로 ‘합리적 정신’이라는 말로 규정하곤 합니다. 비극 작품들을 읽어나가기 전에 희랍 사상이나 비극과 관련하여 이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이것은 희랍 세계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논의가 될 것입니다. 앞서 읽은 <욥기>를 떠올려보면서 비교를 해봅시다. 이 텍스트는 유대 문학인데 이에 대해서는 합리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욥은 경건한 사람으로 규정되었는데, 그 경건함을 규정할 때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윤리적인 술어들이라고 하는 것들을 사용하였습니다. 욥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은 ‘악에서 떠난 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 악에서 떠난 자인데도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자신 이 왜 그러한 고난을 겪었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신앙의 돈독함만을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욥기>에서 사건의 전개는 사탄과 야훼의 ‘내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욥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욥이 알고 있는 차원이 있고, 야훼와 사탄이 일을 벌이는 차원이 있습니다. <욥기>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주제는 ‘신은 정의로운가’인데, 신과 사탄의 차원에서 해명되는 것과 욥과 그의 친구들 차원에서 해명되는 것이 달랐습니다. 따라서 신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정의와 인간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정의는 합치되지 않습니다. 신의 정의와 인간의 정의는 다르다, 신은 인간을 설득하려 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그저 신의 말에 따르는 수밖에 없고 그것이 신앙이다, 이것이 <욥기> 가 주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문학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이에 관한 일반론을 좀 살펴봅시다. 예술사에 관한 고전적 저작이라 할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저자는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이 “예술적으로 채 소화되지 않은 새 소재를 너무나 급격히 문학 영역에 투입”하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두 가지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서 다루어지는 소재는 기존의 비극 작가들이 다루지 않는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어떤 소재들 이 그의 작품에 “투입”되었는지는 《메데이아》를 아이스퀼로스나 소포클레스와 비교하여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소재들이 “예술적으로 채 소화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문학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무엇인가’와 관련 있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하우저가 에우리피데스를 평가할 때에는 자신이 가진 ‘예술적 소화’ 의 기준이 있었을 것이며, 에우리피데스는 그것에 합치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메데이아》를 읽을 때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일단 이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에우리피데스가 그 소재를 다룬 방식이 반드시 예술적이지 않다고 판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선대의 작가들이 사용하지 않던 방식을 자기 스스로 고안하여 사용함으로써 그가 예술적 표현의 새로운 형식을 창안해냈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가 사용한 방식에 결함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혁신의 방식인지를 예단하지 말고 그 의 작품들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극장들은 관람석과 무대가 구별되어 있기는 했지만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한 공간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보는 관객들 상당수는 서기, 장인, 도제, 여자 등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숙련 노동자 일주일 임금이 6실링(30페니) 정도였고 입석 입장료는 1페니로 추정됩니다. 셰익스피어의 관객들은 듣기에 아주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텔레비전 같은 영상 매체를 보면서도 자막을 봅니다. 그만큼 읽기에 익숙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읽을 만한 것들이 널리 보급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관객들이 듣기에 능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에 쓰인 영어는, 셰익스피어 당시의 수많은 관객들이 도대체 이 정도의 영어를 알아들었을까라고 의심스러울 정도로 수준이 높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데 관객들은 그것을 알아들었습니다. 그의 영어는 관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었음에 주의해야 합니다. 셰익스피어는 희곡 작가이면서 극장주였기 때문에 당연히 관객들이 잘 들을 만한 이야기와 대사를 썼습니다. 이것도 아주 중요한 고려사항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드라마는 이를테면 ‘대중 드라마’였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에 대해 한번 생각해봅시다. ‘사랑’이라는 관념 아래 포섭되는 현상 형태들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사랑은 무엇으로 시작되고 무엇으로 지속되겠습니까. 오셀로는 세상의 평판에 기대어 자신의 고귀함을 드러내고, 그의 사랑 또한 그런 허위의식의 부속물로서 소유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데스데모나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질투에 사로잡히며 자신의 고귀함이 무너지려 하자 데스 데모나를 살해하였습니다. 이아고가 교활하고 악마적이기는 하나 오셀로가 합리적으로 대처했다면 그의 말들은 전혀 귀기울 필요가 없는 허언일 뿐이었을 것입니다. 데스데모나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순정한 사랑이라는 이상적인 모형에 자신을 맞춰가려고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셀로에게 답답하고 멍청해 보이기까지 하는 말과 행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브라반치오의 권위를 무너뜨리면서까지 강하게 밀고간 사랑은 오셀로의 의심 앞에서 너무도 어이없이 나약하였습니다. 이아고는 고귀한 관념으로서의 사랑 따위는 믿지 않았습니다. “지갑에 돈을 채워”라는 말을 반복하며, 관념적인 사랑은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 앞에서 무너져버릴 것이라고 로드리고에게 단언합니다.

독일 낭만주의는 근대의 상황을 분열(Entzweiung) 또는 소외(Entfremdung)라 봅니다. 신과 인간의 분리, 자연과 인간의 분리, 인간과 낭만주의에서만 문제된 것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파스칼의 《팡세》의 출발점은 인간이 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존재라는 것입니다. 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 인간의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상황에 대해 파스칼은 신에게 철저하게 복종하는 방식, 복음서의 방법이라는 대답을 내놓았습니다.이는 인간이 신의 뜻을 알 수 없다는 것, 신은 숨어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이는 욥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어떤 형태든지 인간은 분열이라는 상황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것을 통일하려는 시도가 독일 낭만주의라면,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이러한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여겨서 아예 나서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아니면 신과의 분리 자체를 문제상황이라 생각하지 않고 충일한 인간의 삶을 추구하는 태도도 있습니다. 우리가 다음에 읽을 《모비 딕》에 등장하는 에이해브 선장 같은 이가 후자의 태도를 잘 표상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굳이 이름을 붙여주자면 ‘초인’( Uebermensch)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출간 <숨은 신을 찾아서>

신념 체계와 삶의 방식에 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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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강유원
출판사: 라티오
분야: 철학/인문학/신학
발행일: 2016년 12월 5일
ISBN: 979-11-959288-0-4  03100
판형: 188*128mm (B6)
가격 및 쪽수: 14,000원/ 160쪽
<<숨은 신을 찾아서>>

 

숨은 신이라 불릴 만한 형이상학적 신념들은

우리의 삶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

“우리 눈앞에 다양하게 흩어진 사태들이 있다. 그것들을 나누고 모아서 하나로 꿰어진 설명을 만들어낼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그 사태를 이해하였다고 믿는다. 즉 현전하는 사태들에 대한 그럴 듯한, 믿을 만한 설명을 꿰어서 체계적으로 만들어낼 때에라야 만족에 이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가 ‘신념의 체계’다. 과학도, 철학도, 종교도, 예술도 이러한 체계들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런데 철학이 하는 일은 하나 더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신념의 체계들이 잘된 것인지 검토하는 것이다. 철학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을, 신념의 체계들을 음미한다.” 이러한 신념 체계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실존에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

이 책은 아우구스티누스, 데카르트, 파스칼, 키에르케고어의 사상과 불교 사상, 자연과학적 태도, 그리고 오뒷세우스와 에이해브 같은 서사 주인공들의 삶의 방식을 통해, 신념 체계들을 성찰한다. 인간은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이 ‘신념 체계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른 종류의 삶의 방식을 결단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저자 고유의 문체와 겪음이 담겨 있으며, <<성서>>, <<고백록>>, <<성찰>>, <<팡세>>, <<오뒷세이아>>, <<모비 딕>> 등의 인용 텍스트를 통해, 깊게는 형이상학의 근본 테제들에 관한 개념적 파악을, 넓게는 삶의 현실에 대처하는 지혜를 음미할 수 있다.

■ 차례

1 2 3 . . . 7 8 . . . . . . . . . . 19 . 21 . 23 24 . . . . . . . . 33 34 . . 37 38 39  추기追記

■ 본문 중에서

“바울로가 아테나이에서 만난 이들은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몇몇 철학자들’이다. 그들도 분명히 신을 말하였다. 그들의 신은 어떤 신인가.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을 추구한다. 정신의 쾌락을 찾는다. 맘에 맞는 친구들과 함께 쾌락을 누리려 한다. 마음의 평정심, 아타락시아ataraxia를 찾으려 한다. 스토아 학파는 고대 희랍 사유의 최종 결집체이다. 단순한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modus vivendi)으로까지 자리잡은 것이다. 스토아주의자들은 법칙(logos)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우주 만물에 관철되어 있다. 이 법칙은 섭리(providentia)다.”

“불교 수행자들은 육체를 폐기하고, 육체에 깃든 생각을 폐기하고, 생각을 폐기했다는 것마저도 폐기하고, 저절로 멍한 상태로 들어간다. 이것은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이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이다.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한번 해보라. 온갖 잡념雜念이 머리 속에 쏟아져 들어오고 무럭무럭 솟아난다. 몸이 있으니 생각이 있다. 몸을 버리면 생각이 없어질 것이다. 몸을 버리지 않은 채 생각을 끊을 수는 없다. 몸을 버리는 것은, 소중한 몸뚱아리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몸을 비롯한 일체의 사물에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몸을 버림으로써, 생명체를 끊어냄으로써 수월하게 무념무상의 경지로, 우주의 참다운 근원으로 들어설 수 있고 되돌아갈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사건들에 대해 의견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의견들은 다양한 정보들을 취사선택하는 과정에서 생겨나고, 의견이 행동으로 여러 번 실행되어 일정한 효과를 거두면 상당히 견고한 믿음이 된다. 믿음의 자리에까지 올라간 것들은 여간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을 겪고 나서야 달라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 체계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충돌에 관한, 그리고 충돌이 생겨났을 때 어떻게 하는지를 둘러싼 다양한 심리적 논의들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논의에 등장한 여러 사람들을 그러한 분석틀로써 면밀하게 고찰할 수는 없으나 어렴풋하게나마 짐작을 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읽을 만한 책들_강유원]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책들

제러드 L. 와인버그의 2차 세계대전사가 세 권으로 출간되었다.
<<2차 세계대전사 1 – 뒤집어진 세상>>(#ISBN9788960523470)
<<2차 세계대전사 2 – 전세 역전>>(#ISBN9788960523487)
<<2차 세계대전사 3 – 베를린에서 미주리 협상까지>>(#ISBN9788960523494)

제2차세계대전에 관한 가장 최신의 정보를 담고 있는 저작이다. 제1권 서두에 채승병이 적은 ‘권하는 말’에 따르면 이 책은 “첫째, 국제정치의 대국적 틀에서 조망하는 시각을 잘 견지하고 있다.” 전쟁은 무엇보다도 국제정치의 시각에서 파악해야 하는 것이지만 자칫하면 전쟁 자체의 흥미에 빠져드는 실수가 벌어지기 쉽다. 이 책은 그러한 실수를 벗어나 있다. “둘째, (오늘날까지 유효한) 당대의 최신 연구 성과를 아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시각은 1980~90년대 냉전 종식, 소련 붕괴, 독일 통일을 기점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구소련의 비밀문건이 빛을 보고, 독일과 러시아의 저작들이 대거 소개되면서 사실관계부터 달리 쓰이게 된 내용이 한둘이 아니다.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와인버그는 이러한 성과를 최대한 수용해내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하여 알고 싶으면 이 책이면 된다는 것이다. 더 읽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셋째 권 말미에 채승병이 덧붙여둔 ‘국내 독자들을 위한 독서 가이드’에 소개된 책들 몇을 덧붙인다.

‘전쟁사’ 하면 존 키건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제1차 세계대전에 관한 통사도 그가 쓴 것부터 읽는 것이 순서이다.
존 키건,
<<2차세계대전사>>(#ISBN9791158710248)
<<1차세계대전사>>(#ISBN9791158710231)

제2차 세계대전의 주 전장은 동부전선, 즉 독소전쟁이다. 적어도 이 점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데이비드 M. 글랜츠 | 조너선 M. 하우스, <<독소 전쟁사 1941~1945 >>(#ISBN9788932907437)

독소전쟁의 두 주역인 히틀러와 스탈린을 다룬 책도 덧붙일 수 있다.
리처드 오버리, <<독재자들 – 히틀러 대 스탈린, 권력 작동의 비밀>>(#ISBN9788991799394)

이언 커쇼의 히틀러 전기 2부작은 전기로서의 탁월함까지 갖춘 책이다.
<<히틀러 1 – 의지 1889~1936>>(#ISBN9788991799479)
<<히틀러 2 – 몰락 1936~1945>>(#ISBN9788991799486)

독일이 구사한 작전으로 유명한 ‘전격전’(Blitzkrieg)을 다룬 책을 하나 덧붙인다. 이 책은 초기 개전과정, 즉 프랑스 침공을 다룬 것이다.
칼 하인츠 프리저, <<전격전의 전설 >>(#ISBN9788933705308)

참전자들이 남긴 글은 여러 종류가 있으나 꼭 읽어볼만한 것으로는 헤르베르트 브루네거의 책을 추천할 수 있다.
채승병의 설명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저자 브루네거가 복무한 부대가 무장친위대 중에서도 특히 악명 높던 ‘해골(Totenkopf)’사단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단은 전쟁의 고비마다 결정적인 용맹을 떨치기도 했으나, 포로를 학대하고 잔인한 학살극도 벌이는 등 다수의 전쟁범죄를 자행했다. 때문에 이 사단 출신이라고 밝히는 것 자체가 상당한 터부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전후 반세기도 넘어 그런 끔찍한 전쟁범죄를 직시하며 써내려간 이 회고록은 전쟁의 어두운 구석으로 내몰린 병사의 시각을 느껴보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헤르베르트 브루네거, <<폭풍 속의 씨앗 – 한 무장친위대 병사의 2차 세계대전 참전기 >>(#ISBN9788960522084)

나치 체제 자체에 관한 책들은 다른 기회에 소개하기로 한다.

[읽을 만한 책들_강유원] 제러드 다이아몬드 외, 역사학, 사회과학을 품다

역사학은 변화를 다루는 학문이다. 과거의 사건들을 인과관계에 따라 설명하는 과정에서 원인이 되는 사건(또는 사태)들을 식별해내고 그것이 어떤과정을 거쳐서 결과에 이르는지를 따져묻기 때문이다. 인과관계를 따지는 과정에서는 비교가 주요한 방법론이 된다. 그렇다면 이 비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지금 상황이 과거의 어떤 상황과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맥락이 전혀 다른 사건들을 비교한다. 이를테면 “오늘날 한국의 상황은 구한말 망국 때와 정확히 일치한다.”와 같은 말을, 거대서사를 동원하여 아주 간단하게 말하곤 한다. 역사학자도 ‘지금은 명청교체기의 조선과 비슷하다’는 취지의 말을 어려움 느끼지 않고 공론장에 내놓기도 한다. 이는 오늘날의 현안에 대한 자신의 주장 — 근거없는 것이기 십상인 — 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를 무분별하게 가져다 조각내어 맞춰 놓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제러드 다이아몬드(그는 지리학과 교수이다)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쓴 글을 모은 이 책은 역사학에서 섣부른 비교를 일삼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근거가 될 만한 수치를 제시하지도 않고 혹은 관련 통계도 내지 않은 채 단순하게 이와 같은 진술을 한다는 것은 비교도 하지 않은 채 비교 프레임을 짜는 셈”이라고 지적한다. 역사에서 그러한 잘못된 비교를 피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는 “자연 실험”이다.(이 책의 원제는 “역사의 자연실험 Natural Experiments of History”이다.)

자연 실험은 비교 방법으로서 공통적인 방법론적 주제를 가지고 있다. “섭동된 지역의 ‘선택’, 섭동의 효과가 나타나는 시간 지체, 전도된 인과성 및 생략 변수 편향 등과 같은 관찰된 통계적 상관성으로부터 인과성을 추론하는 문제와 저변에 깔린 작동 메커니즘, 과도하게 단순화한 설명과 과도하게 복잡한 설명이라는 서로 반대되는 함정 사이에서 조정을 해나가는 방법, 모호한 현상을 ‘조작 가능하게’ 만드는 것, 양화와 통계학의 역할, 한정된 사례 연구와 광범위한 종합 사이의 긴장 등이 그것이다.”

역사는 과거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다면 골치아픈 방법론에 관한 책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 이야기가 믿을만한 진실이어야 한다고 여긴다면 역사가 어느 정도까지 정확함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며, 이 책은 그 관심의 출발점 역할을 할 것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 | 제임스 A. 로빈슨(엮음), <<역사학, 사회과학을 품다 – 새로운 연구 방법론으로서 자연 실험 >>(#ISBN9788962631333)

<철학 古典 강의>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이 책은 오늘날 철학이라 불리는 학문 영역 중에서도 형이상학 분야의 고전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철학이라 불리는”이라고 한 것은 무엇보다도 고대의 철학자들, 즉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들이 철학 연구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이전 사람들, 즉 헤시오도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 등은 더욱이나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대의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철학 연구자임을 의식하였던 데카르트, 칸트, 헤겔은 모두 자신들이 세계의 근본원리를 탐구하고 있다는 자각을 뚜렷하게 가졌을 것입니다.

철학은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그리고 그 세계 안에 살고 있는 자신에 관하여 가장 근본적인 것을 물음으로써 시작됩니다. 이러한 물음은 그저 살고 있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평온하든 혼란스럽든, 나날을 살아가면서도 그러한 나날에서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궁금해 하는, 그 나날로부터 한 발짝 물러선 지점에 서 있는 사람에게만 철학적 물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흔히들 역사가 끝난 지점에서 철학이 시작된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유도 자신의 몸을 세상과 곧바로 맞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역사적 사유 역시 반성적 사유이고 철학적 사유와 닮아 있습니다. 다만 철학적 사유는 조금은 더 깊게 내려간 근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세계의 역사에 관하여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만 철학적 관심도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고대 중국의 역사 책에 《춘추》春秋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자孔子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책입니다. 이 책 이름을 살펴보겠습니다. ‘봄·가을’입니다. 계절 이름입니다. 굳이 봄·여름·가을·겨울을 다 말하지 않아도 이 두 계절만으로도 한 해를 말할 수 있습니다. 춘추는 자연입니다. 자연自然은 말 그대로 늘 그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올 봄에는 꽃이 예년만 못했고, 이렇게 덥기는 한 10여 년 만에 처음이고, 올해 단풍은 유난히 어여뻤으며, 이번 겨울은 벌써 추위가 사무치는데, 도대체 뭐가 늘 그러하다는 말인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 들여다본다면 이런 반문이 생겨날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마다 계절은 달랐으니까 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늘 그러합니다. 봄에 핀 꽃이 아무리 흐드러졌다 해도 겨울까지 피어 있을 리는 없습니다. 반드시 죽습니다. 그것이 늘 그러한 것입니다. 핀다, 죽는다, 다시 핀다, 죽는다, 다시 핀다… 바뀌는 게 있어 보이는데 그 안에 변함없는 것이 있습니다. 있어 ‘보이는 것’이 있고, 늘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있는 것’이 있습니다. 둘 다 있습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가리키고, 다른 하나가 하나를 드러냅니다. 이렇게 해서 불변(에 가까운 것)을 이룹니다.

“춘추”는 역사책 이름입니다. 자연의 겉모습을 보고 지었는지, 자연 뒤에 있는 것을 겨냥하여 지은 것인지, 둘을 겹쳐 지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춘추는 사람의 일을 적습니다. 꽃보다 유한한 사람의 일을 적습니다. 사람은 태어난다, 사람은 죽는다, 이걸로 끝입니다. 사람에 관하여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역사는 그처럼 당연해 보이는 것을 기록하였고, 철학은 인간의 일에서 근원적인 것, 변함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찾아보려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철학은 그 탐구가 찾아낸 성과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뻔해 보이는 것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철학이라는 말보다는 ‘철학함’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수 있습니다. 이 철학함은, 또는 공부는, 변함 속의 인간이 변함 없음을 향해 가는 행위입니다. 그러한 탐구 행위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떠한지, 그 안에서 자신은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를 막연하게나마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철학은 사람을 철들게 하는 학문입니다.

저는 2009년 2월부터 11월까지 40주 동안 서울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인문학 고전들을 강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강의는 《인문 古典 강의》로 묶여 2010년에 출간되었습니다. 2011년에 같은 곳에서 역사 고전들을 강의하고, 《역사 古典 강의》를 출간한 것은 2012년입니다. 그 뒤 이런저런 사정으로 철학 고전들을 읽을 기회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시 서대문구립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2014년에 40주 동안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 강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강의 시간에는 더 많은 고전들을 읽었고 자질구레한 논의도 더 있었습니다만, 책으로 묶기에 적절한 것들만을 여기에 적었습니다.

오늘날 철학은 쇠퇴하는 학문이라고들 합니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그러한 판단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합니다. 겪은 바가 적고, 시야가 좁은 탓에 저는 이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져볼 재주는 없습니다만, 이 고전들을 읽는 동안에는 그러한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였습니다. 저와 함께 이 고전들을 읽었던 이들은 세상사와 별 관계없어 보이는 이 텍스트들을 읽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들을 이끌어간 힘은 세상에 불멸의 이름을 남기려는 명예욕도, 삶의 고통을 잊으려는 도피적 소망도, 주변 사람들에게 어려운 책을 읽고 있음을 보이려는 과시욕도 아닌, 잔잔하면서도 끊이지 않는 학문정신이었을 것입니다. 2014년에 40주 동안 함께 공부했던 그들의 학문정신을 각별히 기억해둡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학문의 토대이자 정수精髓인 철학을 공부하는 장을 마련하고 지켜준 도서관 사서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2016년 7월 강유원 적음

출간 <철학 古典 강의>

지은이: 강유원
출판사: 라티오
분야: 철학, 고전
발행일: 2016년 8월 5일
ISBN: 978-89-960561-9-5  03110
판형: 신국판
가격 및 쪽수: 27,000원/ 460쪽
<<철학 古典 강의>>(#ISBN9788996056195)

2009년부터 매년 40주 동안 공공도서관에서 고전을 가르치고 있는 철학자 강유원이 4년만에 내놓는 저작이다. <인문 古典 강의>(2010년 출간), <역사 古典 강의>(2012년 출간)에 이은, 古典 강의 세 번째 책 <철학 古典 강의>. 2017년에 <문학 古典 강의>를 출간함으로써 이 시리즈는 완간될 예정이다. 그동안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수백 명의 사람들이 현장 강의를 들었으며, 모든 강의를 수강한 수강생들의 수도 상당하다. 대학 안에서는 진정한 학문 정신이 사라졌고 대학 밖에서는 가짜 인문학이 판을 친다고 한탄하는 시대이지만 이 강의를 들은 수강생들이 가지게 된, 앎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교양인으로서의 지속적인 열정은 도서관이 일반인들을 위한 학문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다양한 수준과 배경을 가진 일반인들을 고려하되, 이들을 수준 높게 이끌어갈 만한 일관성 있는 커리큘럼으로써 이 강의들과 저작들을 기획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강의를 몇 년 동안이나 진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하는 수강생들과 도서관 사서들의 도움이 컸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과정으로 공부해 나갈 수 있도록 이 책은 강의 내용을 보다 더 완성도 있게 정리하고자 했다.

이 시리즈의 입문서 격인 첫 번째 책 <인문 古典 강의>가 대표적인 서구 고전들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과 고귀한 삶의 의미를 탐색했다면, 인문학 분야 중 가장 먼저 익혀야 할 역사에 관한 두 번째 책 <역사 古典 강의>는 역사적 계기들을 중심으로 서양사를 서술하면서, 역사를 움직이는 힘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원천적인 모습을 밝히고자 했다.

이번에 출간된 <철학 古典 강의>는 고전적인 의미의 철학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전통적으로 추구해온 고도의 추상적 사유들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것이 주요 철학자들의 저작들에서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이러한 사유들은 역사의 흐름과 무관해 보이지만, 깊이 있게 탐구해보면 형이상학적 사유의 원리의 전환이 시대의 큰 변화에 작용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학문인 ‘철학’에 관한 강의이므로 이전 책들에 비해 내용 파악이 간단하지 않다. 이러한 어려움을 감안하고도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철학이야말로 우리의 이성을 단련시키는 엄격한 학문이자 우리의 삶과 세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유일한 반성적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철학의 가장 중심 분야인 존재론과 형이상학의 토대를 익힘으로써, 우리의 앎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차례

I 희랍 철학의 시작: 세계 전체에 대한 통찰

희랍 우주론의 원형| 헤시오도스, <<신들의 계보>>

제1강_우주론, 철학적 사유의 시작

제2강_희랍 사유에서 우주의 구조와 생성 과정

세계의 원리에 관한 자연학적 파악|<<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제3강_존재의 근본 개념(파르메니데스)

제4강_일자와 두 세계 이론(파르메니데스에 관한 ‘전통적’ 해석)

제5강_대상 세계에 관한 탐구(파르메니데스에 관한 ‘현상-법칙’ 해석)

제6강_학문 탐구의 방법(파르메니데스에 관한 ‘학의 시원’ 해석)

제7강_세계를 지배하는 원리, 로고스(헤라클레이토스)

제8강_변화하는 여러 현상들과 궁극적인 ‘하나’(헤라클레이토스)

II 플라톤: ‘좋음’ 위에 인간과 공동체를 세우려는 노고

인간의 영혼과 형상이라는 목적|<<파이돈>>

제9강_잘 산다는 것

제10강_형상실재론과 형상시원론

제11강_합의된 규약에 의지하는 ‘차선의 방법’

제12강_같음과 같음 자체에 관한 논변

공동체, 넓은 의미의 인간학|<<국가>>

제13강_참으로 좋은 것에 관한 앎(태양의 비유)

제14강_참으로 좋은 것에 관한 앎과 그것의 실천(동굴의 비유)

제15강_아는 것과 하는 것, 이론과 실천의 통일

III 아리스토텔레스: 희랍 형이상학의 체계적 완결

앎의 체계와 궁극적 실재|<<형이상학>>

제16강_<<형이상학>>의 구성

제17강_앎의 종류와 단계들

제18강_형상의 분리와 내재

제19강_학의 성립에 관한 물음, 보편적 존재론과 신학의 관계

제20강_실체론, ‘이것’(tode ti)과 ‘무엇’(ti esti)

제21강_운동론, 가능태와 현실태

IV 데카르트: 주체인 인간의 세계 구축

데카르트 형이상학의 근본 구도|<<철학의 원리>>

제22강_자기의식, 데카르트 철학의 근대성

제23강_진리의 원천과 진리 인식의 원천

자기의식의 형이상학|<<성찰>>

제24강_<<성찰>>의 구성과 목적

제25강_감각적 앎의 부정, 철저한 의심(제1성찰)

제26강_자립적 자기의식의 현존, 정신의 우선성(제2성찰)

제27강_인간의 유한성에 의거하는 신의 무한성 증명(제3성찰)

제28강_참과 거짓을 식별하는 정신, 정신과 신체의 합성체로서의 인간(제4성찰, 제6성찰)

V 칸트: 인간의 한계 자각과 ‘장래의 형이상학’

초월론적 이념들에 대한 일반적 주해|<<형이상학 서설>>

제29강_‘장래의 형이상학’의 성립 가능성

제30강_이성의 사변적 사용

제31강_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데카르트?칸트?헤겔 형이상학의 핵심 문제

자연과 자유의 통일적 체계|<<판단력비판>>

제32강_판단력의 연원

제33강_미감적 판단력, 목적론적 판단력

제34강_판단력을 통한 오성과 이성의 결합

VI 헤겔: 신적 입장으로 올라선 인간

절대적인 것의 자기전개|<<철학백과>>

제35강_헤겔 철학 체계의 구성

제36강_헤겔 형이상학의 기본 개념들

제37강_사변적 사유와 정신철학에 대한 일반적 논의

학적 인식으로 올라서는 사다리|<<정신현상학>>

제38강_<<정신현상학>>의 구성, 의식-자기의식-이성

제39강_진리의 역사성, 진리주체론

제40강_헤겔 철학의 목적, 역사와 이념의 통일

 

■ 본문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규정을 따른다면 우리는 헤시오도스의 텍스트를 읽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논증을 통해 주장을 내세우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과 우주의 전 국면에는 논증을 통해서 해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으며, 그것까지도 포괄해야만 철학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철학의 한 영역인 형이상학을 공부하면서 《신들의 계보》를 읽는다는 것은 철학에 대한 관점도 달리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신들의 계보》를 읽으면서 그것의 내용도 따져봐야 하지만, 종래의 철학이라는 것에 포함시킬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 《신들의 계보》를 읽는 이유는 이러한 우주론 안에 철학적 사색의 맹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신화(뮈토스)에서 이성(로고스)으로의 전환, 이것이 철학의 시작이다’라는 말은 일단 배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인간의 눈앞에는 수다한 것이 쫙 펼쳐져 있습니다. 많은 것들(다多)이 있습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만 보고 있는 사람은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것처럼 ‘개처럼 짖기만’ 할 것입니다. 진리를 모르는 자들에게는 무엇이든 낯설 것입니다. 인간이 그 낯선 것들을 파악하여 법칙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하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것은 언제까지나 낯선 ‘여럿’일 뿐입니다. 봄이 와도 봄이라고 이름 붙일 줄도 모를 것입니다. 첫째 강물, 둘째 강물, 셋째 강물, 이렇게 강물들이 계속해서 흘러가도 그것에 ‘강’이라는 이름을 붙일 줄 모를 것입니다. 강물들이 흘러가다 더 이상 흐르지 않으면 ‘웅덩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하는데 그렇게 할 줄도 모를 것입니다. 이렇게 개념을 바꾸어 쓸 줄 모를 것이고, 이렇게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그것은 한정되지 않은 것, 규정되지 않은 것입니다.”

“형상에 관한 플라톤의 입장은 일관적이지 않습니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사물 바깥에 실체인 형상이 따로 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살펴보면, 《파이돈》에서는 형상실재론과 형상시원론이 혼재하고 《국가》를 거쳐서 《필레보스》 등에 이르면 형상실재론의 입장이 고수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후기 형상론을 플라톤의 일관된 주장으로 파악합니다. ‘사물과 따로 떨어져서 사물 외부에 실체인 형상이 실제로 있다’, 이것이 플라톤의 입장이라고 정리하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이 사물들의 실체이려면 그것이 사물들과 분리되지 않고 사물 안에 있어야 한다는 형상내재론을 주장하려 합니다.”

“데카르트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해야만 신의 무한성을 알 수 있는 아주 불안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신에 의존하면서도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데카르트의 자기 의식입니다. 이론과 실천 양 측면에서 인간 자신이 유한자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이런 자기의식이 칸트에도 들어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칸트에서는 인간과 신이 합치될 수 없습니다. 인간과 신은 마주보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유한자와 무한자가 맞서 있습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유한자인 인간이 노력하면 무한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고대적인 사유입니다. 근대적인 사유에서는 자기의식이 등장하면서 신과 멀어져버렸습니다. 내가 나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신이 안 보이는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트는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가 ‘그 어떤 매개를 거치지 않고도 신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가톨릭에서 내세우는 성사聖事를 거치지 않고도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의식입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단독자로서의 인간의 위치를 확보했는데, 확보하면 확보할수록 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헤겔 철학에서는, 외부 세계에서 뭔가 데이터가 주어진다 해도, 인간이 데이터를 그냥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스스로의 힘으로 대상 세계까지 나아갑니다. 우리 인간 정신의 활동이 대상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정신이 스스로 바깥으로 나아가서 대상 세계와 접촉하고 그 대상의 본성을 자신에게 가지고 옵니다. 정신은 무한자의 입장으로까지 뻗어나갑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의 통일된 총체성(Totalität)을 이룹니다. 헤겔의 체계 안에서는 이러한 총체성이 유기적으로 짜여 있습니다. 그러나 헤겔의 체계를 벗어나면 그것은 거대한 사기처럼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