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고전 연속 강의]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문학 고전 강의>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인간은 말을 함으로써 인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이 아닌 동물들도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을 가지고 있을 터이니 인간만이 말을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단순히 기능적인 사용에서 멈추지 않고, 말에 거리를 두고 말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보고, 말 자체를 꾸미고 말을 더 잘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은 적어도 지금까지 알려진 지식에 따르면 인간만이 하는 일입니다.

사람은 말을 통해서라야 뭐든 알 수 있습니다. 말을 해야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소리를 내지 않는 혼잣말이라 해도 그것은 자기 자신을 상대로 하는 대화입니다. 누군가와 대면하여 말을 하든 머리 속으로 혼잣말을 하든, 사람은 끊임없이 말을 합니다. 그런 까닭에 사람이 더이상 말을 하지 않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사람답게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상대에게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할 말이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상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일 것입니다. ‘한 마디도 하고 싶지 않은 상대’란 사실상 우리에게는 ‘꼴도 보기 싫은 상대’보다 훨씬 더 무의미한 존재입니다. 그 사람과 우리 사이는, 마주 앉아 있다 해도 결코 이어질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말을 걸고 싶지 않은 상태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몹시도 혐오스럽거나 절망스러울 때 그러할 것 입니다. 침묵은 상대를 끊은 상태입니다. 우리는 말하고 싶어서 말을 하는 존재라기보다는 별수 없이 말을 해야만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가 문학이라 부르는 것은 특정한 학문 영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라고 하는 인간 본연의 행위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아닌 ‘문학함’이 더 적절한 표현일 테고 이를 달리 말해본다면 ‘이야기하기’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눈앞에 놓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즐겁거나 괴로웠던 일들을 기억하고 노래합니다. 삶을 아름답게 물들였거나 참담하게 했던 장면을 되살려 그려냅니다.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그리는 것의 소재는 이렇게 자신의 삶에서 길어올린 것들일테지만 그것 안에는 오로지 자신만 있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 장소, 물건, 사건들이 함께 묻어 들어가서 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든 다른 사람에게 노래하기 위해서든 모든 이야기에는 이야기하는 이가 만들어 넣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들이 빈틈없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만큼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것은 무척이나 지리하여 다시 듣고 싶지 않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되새길수록 재미있고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또는 스스로의 흥에 겨워서 ‘잘’ 이야기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잘 이야기된 것, 잘 노래된 것, 잘 그려진 것 중에서 오래도록 사람들이 되풀이하여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그리는 것들을 우리는 ‘문학 고전’이라 부를 것 입니다. 이 책에서 우리가 읽게 될 이야기들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디에서나 찾아낼 수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잘 이야기된 것들이어서 이야기 속 사람들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양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잘 읽음으로써 우리는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자신에 대해 더 잘 이야기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처음 쓴 고전 해설서는 《책과 세계》였습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강의를 하다가 학교를 떠난 것은 1990년대 말이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강의할 일도 없던 터에 혼자 재미삼아 그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하였던 서구의 고전들을 읽던 중, 뜻밖에도 출판사에서 문고판으로 된 고전 해설서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퇴근 후에, 주말에, 이럭저럭 원고를 써서 2004년에 출간한 것이 《책과 세계》입니다. 회사를 그만둔 다음에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강의를 하다가 서울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2009년 2월부터 11월까지 40주 동안 하게 된 것이 ‘고전 열 권 읽기’라는 강의였습니다. 그때의 강의가 《인문 古典 강의》로 묶여 2010년에 출간되었습니다. 2011년에는 같은 곳에서 역사에 관한 책들을 40주 동안 강의하여 《역사 古典 강의》를 2012년에 출간하였습니다. 이후 서울시 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2014년에 40주 동안 형이상학에 대한 강의를 하여 2016년에 《철학 古典 강의》를 출간하였고, 2015년에 서울시 성북정보도서관에서 문학 고전들을 40주 동안 강의하여 지금 2017년에 《문학 古典 강의》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제가 읽은 책들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습니다만 고전 연속 강의를 위해 읽은 책들은 문자 그대로 격동적인 2017년의 한국과는 무관해 보이기만 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했나 하는 회한이 남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고전을 읽음으로써 생각의 힘이 강해지고 깊어졌으리라고, 별것도 아닌 삶을 살면서 우는 소리를 덜 하게 되었으리라고 막연하게 위안을 해봅니다. 앞서 출간한 책들을 다시 읽어보니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를 이런저런 멋진 말들로써 맺으려 노력한 듯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런 말들을 할 염치가 없습니다.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강의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 이들, 강의를 들어준 이들, 그리고 제가 알아차리지 못한 도움을 준 이들에게 고맙다는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거듭 고맙습니다.

2017년 5월 강유원 적음

 

 

<철학 고전 강의>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이 책은 오늘날 철학이라 불리는 학문 영역 중에서도 형이상학 분야의 고전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철학이라 불리는”이라고 한 것은 무엇보다도 고대의 철학자들, 즉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들이 철학 연구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이전 사람들, 즉 헤시오도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 등은 더욱이나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대의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철학 연구자임을 의식하였던 데카르트, 칸트, 헤겔은 모두 자신들이 세계의 근본원리를 탐구하고 있다는 자각을 뚜렷하게 가졌을 것입니다.

철학은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그리고 그 세계 안에 살고 있는 자신에 관하여 가장 근본적인 것을 물음으로써 시작됩니다. 이러한 물음은 그저 살고 있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평온하든 혼란스럽든, 나날을 살아가면서도 그러한 나날에서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궁금해 하는, 그 나날로부터 한 발짝 물러선 지점에 서 있는 사람에게만 철학적 물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흔히들 역사가 끝난 지점에서 철학이 시작된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유도 자신의 몸을 세상과 곧바로 맞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역사적 사유 역시 반성적 사유이고 철학적 사유와 닮아 있습니다. 다만 철학적 사유는 조금은 더 깊게 내려간 근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세계의 역사에 관하여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만 철학적 관심도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고대 중국의 역사 책에 《춘추》春秋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자孔子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책입니다. 이 책 이름을 살펴보겠습니다. ‘봄·가을’입니다. 계절 이름입니다. 굳이 봄·여름·가을·겨울을 다 말하지 않아도 이 두 계절만으로도 한 해를 말할 수 있습니다. 춘추는 자연입니다. 자연自然은 말 그대로 늘 그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올 봄에는 꽃이 예년만 못했고, 이렇게 덥기는 한 10여 년 만에 처음이고, 올해 단풍은 유난히 어여뻤으며, 이번 겨울은 벌써 추위가 사무치는데, 도대체 뭐가 늘 그러하다는 말인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 들여다본다면 이런 반문이 생겨날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마다 계절은 달랐으니까 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늘 그러합니다. 봄에 핀 꽃이 아무리 흐드러졌다 해도 겨울까지 피어 있을 리는 없습니다. 반드시 죽습니다. 그것이 늘 그러한 것입니다. 핀다, 죽는다, 다시 핀다, 죽는다, 다시 핀다… 바뀌는 게 있어 보이는데 그 안에 변함없는 것이 있습니다. 있어 ‘보이는 것’이 있고, 늘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있는 것’이 있습니다. 둘 다 있습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가리키고, 다른 하나가 하나를 드러냅니다. 이렇게 해서 불변(에 가까운 것)을 이룹니다.

“춘추”는 역사책 이름입니다. 자연의 겉모습을 보고 지었는지, 자연 뒤에 있는 것을 겨냥하여 지은 것인지, 둘을 겹쳐 지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춘추는 사람의 일을 적습니다. 꽃보다 유한한 사람의 일을 적습니다. 사람은 태어난다, 사람은 죽는다, 이걸로 끝입니다. 사람에 관하여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역사는 그처럼 당연해 보이는 것을 기록하였고, 철학은 인간의 일에서 근원적인 것, 변함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찾아보려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철학은 그 탐구가 찾아낸 성과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뻔해 보이는 것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철학이라는 말보다는 ‘철학함’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수 있습니다. 이 철학함은, 또는 공부는, 변함 속의 인간이 변함 없음을 향해 가는 행위입니다. 그러한 탐구 행위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떠한지, 그 안에서 자신은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를 막연하게나마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철학은 사람을 철들게 하는 학문입니다.

저는 2009년 2월부터 11월까지 40주 동안 서울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인문학 고전들을 강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강의는 《인문 古典 강의》로 묶여 2010년에 출간되었습니다. 2011년에 같은 곳에서 역사 고전들을 강의하고, 《역사 古典 강의》를 출간한 것은 2012년입니다. 그 뒤 이런저런 사정으로 철학 고전들을 읽을 기회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시 서대문구립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2014년에 40주 동안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 강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강의 시간에는 더 많은 고전들을 읽었고 자질구레한 논의도 더 있었습니다만, 책으로 묶기에 적절한 것들만을 여기에 적었습니다.

오늘날 철학은 쇠퇴하는 학문이라고들 합니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그러한 판단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합니다. 겪은 바가 적고, 시야가 좁은 탓에 저는 이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져볼 재주는 없습니다만, 이 고전들을 읽는 동안에는 그러한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였습니다. 저와 함께 이 고전들을 읽었던 이들은 세상사와 별 관계없어 보이는 이 텍스트들을 읽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들을 이끌어간 힘은 세상에 불멸의 이름을 남기려는 명예욕도, 삶의 고통을 잊으려는 도피적 소망도, 주변 사람들에게 어려운 책을 읽고 있음을 보이려는 과시욕도 아닌, 잔잔하면서도 끊이지 않는 학문정신이었을 것입니다. 2014년에 40주 동안 함께 공부했던 그들의 학문정신을 각별히 기억해둡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학문의 토대이자 정수精髓인 철학을 공부하는 장을 마련하고 지켜준 도서관 사서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2016년 7월 강유원 적음

 

<역사 고전 강의>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고전은 언제 읽어도 새로운 지혜를 길어 올릴 수 있는 책입니다. 역사 고전은 그 새로움이 더욱 강렬합니다. 역사 고전은 과거의 이야기와 교훈 등을 담고 있지만, 그것들은 책을 읽는 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에 따라 다른 의미를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강의를 하기 위해서 예전에 읽었던 역사 고전들을 다시 읽으니,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가 고전의 내용들에 겹쳐지면서 역사적 사실들이 단순한 과거의 것으로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가 이행기라는 어렴풋한 자각이, 이른바 ‘역사의 이행기’라 일컬어지는 시대의 사태들에 비춰지면서 일종의 역사철학적 통찰을 가져다주었던 것입니다.

저는 1990년대 초반부터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 전반에 관한 강의를 다양한 사람들에게 해왔습니다. 2009년에는 서울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2월부터 11월까지 40주 동안 매주 2시간씩 인문학 고전을 강의했으며, 그 강의 내용은《인문 古典 강의》라는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인문 古典 강의》와 마찬가지로 강의를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저는 2011년에도 2월부터 11월까지 40주 동안 매주 2시간씩 서울시 동대문구정보화 도서관과 인천시 연수 도서관에서 서양의 역사와 고전에 관한 강의를 했습니다.《인문 古典 강의》가 인문학 전반에 걸친 기본적인 고전을 다루었다면 이 책은 인문학의 세 분야인 문학, 역사, 철학 중 역사만을 다루었습니다. 인문학 공부는 어떤 분야에서 시작하여도 무방하겠지만, 저는 역사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속에서 형성된 우리 자신의 참된 모습, 즉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 자신의 역동적 상호작용에 대한 역사적 통찰이 있어야만 인문학 공부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역사 고전’이라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특정 시대를 연구한 ‘역사학’의 고전을 가리킬 수도 있고, 어떤 시대의 인간 행위자가 자신의 시대를 탁월하게 기록한 ‘역사’의 고전일 수도 있으며, 어떤 시대에 관한 것이면서도 그것을 넘어 역사 전체에 대한 통찰과 세상의 이치를 아우르는 ‘역사철학’의 고전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 고전은 이러한 특징들을 조금씩이라도 모두 담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에 나오는 역사고전들은 그 시대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 것들이거나, 미래에 대한 역사철학적 전망을 탁월하게 제시하는 것들입니다. 저는 이 역사 고전들을 강의하면서 그 고전들이 생겨난 시대적인 맥락부터 주의 깊게 살펴보았습니다. 모든 고전은 반드시 이러한 맥락에 따라 공부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 다만 역사 고전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고대 지중해 세계와 폴리스 시대, 로마와 중세 가톨릭 제국 시대, 근대 국민국가 체제와 세기말, 제1, 2차 세계대전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로 크게 나뉘어 있습니다. 이 시대 구분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이 아닌 정치체제와 국제관계라는 범주에 근거한 것입니다. 시대 구분 아래 강의별 세부 항목들에는 각 시대의 구체적인 전개 과정과 역사 고전에 관한 설명, 시대의 의의 등이 들어 있는데, 이것의 대강은 “차례”와 본문에 서술형 문장으로 적혀 있습니다. “차례”에서 이 대강을 읽어 책 전체 내용을 개관하고 본문으로 들어가면, 본문에서 제시하는 역사의 큰 흐름과 독서의 맥을 짚어 내기가 수월할 것입니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강의를 하면서 소개 했던 “더 읽어 볼 책들”을 읽음으로써 이 책의 한계를 넘어서는 공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앞서 밝혔듯이 이 책을 쓰는 데에는 도서관 강의가 큰 도움이 되었 습니다. 공공 도서관은 말 그대로 ‘공공 장소’이고, 그런 까닭에 공공 도서관에서 강의를 하고 공부를 하는 것은 ‘공적인 일’, 라틴어로 말하면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입니다. 공공 장소를 시설로만 간주하여 그것을 관리하는 것이 전부라고 여기거나 공공 장소에 대한 접근과 허용을 제한하는, 심지어 사적 이익 창출의 수단으로 만들려고 하는 시도가 만연한 시대에, 도서관을 비롯한 여러 공공 장소에서 공적인 강의와 공부가 제약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민주 공화국의 이념을 실현하는 데 적으나마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러한 도움이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함께 공부한 이들에게 다시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고단한 사정 속에서도 강의를 준비하고 진행함으로써 지식 공동체 형성에 있어 큰 기여를 해온 사서들의 우정을 각별히 기억해둡니다.

 
2012년 6월 강유원 적음

 

<인문 고전 강의>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이 책을 읽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고전에 대해 관심은 있으나 막상 혼자 읽기는 버거워서 도움을 얻고자 했다면, 이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책을 펼쳐든 경우입니다. 그러나 그처럼 확연한 목표를 가지고 책을 읽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저 한 번 읽어본다는 생각으로 단순한 호기심에 책을 손에 쥐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어떤 경우든 우리가 책을 읽는 순간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책은 그대로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앞에 놓인 고정된 사물로서의 책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은 변할 수 있습니다. 책 속의 몇몇 문구가 마음속에 남아 있다가 언제고 우리 삶에 싹터오를지 모릅니다. 아주 크게는 인생관이 바뀔 수도 있고 생활습관이나 태도에 변화가 올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이 쓰이게 된 과정이 바로 그러한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2009년 서울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진행한 강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 강의는 2월부터 11월까지 40주 동안 매주 2시간씩 행해졌습니다. 제가 고전을 강의한 일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렇게 오랜 기간 연속적으로 해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러 온 이들이 그렇게 각양각색이었던 것도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10대 청소년부터 자녀를 출가시킨 어머니, 직장인, 대학생까지, 여러 세대와 직업을 가진 이가 함께 모여서 공부를 했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중요한 점을 깨달았습니다. 우선 이렇게 다양한 세대와 직업을 가진 이를 한데 모아줄 수 있는 책은 역시 고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고전은 우리 모두가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공동 지식’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의 주인이고자 하는 진지함과 성실함, 고전 텍스트에 대한 존중감 등의 태도를 갖추기만 하면, 학식의 깊이와 분야에 관계없이 누구나 고전으로부터 오늘날의 지혜를 얻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공부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고전읽기 강의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고전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롭고 놀라웠습니다. 뜻이 맞고 취미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것도 인생의 큰 즐거움이겠습니다만,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삶이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면서 강의를 공유하는 재미와 유익함도 무척 컸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강의는 저 자신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저는 1990년대 초반부터 철학과 인문학을 강의해왔습니다. 역사, 철학, 문학, 정치 등에 관한 다양한 목적의 강의를 많은 사람들에게 했습니다. 이번에 10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고전을 읽으면서는, 저 자신에게 고전이 무엇인지, 공부하는 이들과 어떻게 대화를 나눌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전을 배우러 온 사람들이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모두 1년 가까이 고전을 읽음으로써 책에 대한 생각과 태도는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시각과 마음가짐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는 이들도 이와 같은 변화를 겪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인류 최고의 지식과 지혜가 담겨 있는 고전에 가까이 다가가고, 그로 인해 현재의 자신의 삶을 고상하고 참되게 바꾸어 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고전의 지혜가 가장 지혜롭습니다. 이 책을 쓰는 데에는 동대문구 정보화도서관에서의 강의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함께 공부한 이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강좌를 준비하고 진행함으로써 지식공동체 형성에 있어 큰 기여를 해온 사서들의 우정을 기억해둡니다.

2010년 4월 강유원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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