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스터디] 소개글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는 전혀 신선하지 않다. 인문학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위기라는 말만 되풀이하다보니 ‘위기를 위한 위기’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이다. 어쨌든 아주 오래 전부터 위기가 진행되어 왔으니 아주 당연하게도 인문학 공부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한국의 대학에는 초보자가 인문학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장치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는 학교탓만 할 일도 아니다. 학벌을 중시하는데다 대학을 안정된 고소득 직장을 얻기 위한 준비 기관으로만 간주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결코 인문학 정신이 자리잡고 현실화될 수 없다. 몇몇 사람이 그러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해도 모든 것을 취직과 출세로 환원시켜버리는 무섭고도 거대한 흐름에 저항하기는 더욱 어렵다.

인문학에 관심을 가진 이들의 큰 불만 중의 하나는 마땅한 종합적 안내서가 없다는 것이다. 대학에는 학회나 동아리 등에서 전해지던 이른바 ‘족보’들이 사라진지 오래다. 학교 밖에 있는 사람들 사정도 크게 나을 것이 없다. 여기저기서 열리는 아카데미 강좌들도 수강해보고, 인터넷 사이트 검색 등을 통해 도서목록을 구해 책도 들여다보고, 관심사가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스터디도 해보지만, 늘 어딘가 허전하고 미심쩍은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우선은 과연 우리가 제대로 범위를 잡아서 잘 해나가고 있는가 하는 의심이 있는 것이고, 두번째로는 도대체 어떤 수준의 책들을 어느 정도 읽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걱정이 있는 것이다.

<<인문학 스터디>>는 바로 이러한 의심과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은 본래 미국의 <대학연구소>에서 여러 대학의 강좌들을 조사하고 다양한 전공 분야의 유명한 학자들의 자문을 받은 다음, 8개의 과정으로 핵심을 압축하여 펴낸 것이다. 그래서 원제가 ‘학생들을 위한 핵심 커리큘럼 안내 A Student’s Guide to the Core Curriculum’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이 미국에서는 타당하다해도 한국에서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곤란하다. 서구 인문학이 보편적인 것이 아님은 물론이고, 한국에서의 공부는 강조점이 다를 수 있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편역자들은 원서의 핵심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에서의 인문학 공부라는 상황에 걸맞도록 재편집을 시도하였다.

우선 원서와 달리 문학.예술학/ 철학.정치학/ 역사학/ 기독교의 최상위 범주를 설정하였다. 한국에서는 인문학을 ‘문사철文史哲’의 통합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고 편역자들도 그런 견해에 동의하였으므로 이러한 항목이 뚜렷하게 드러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원서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았거나 상대적으로 아주 간략하게 언급되었던 부분들을 새로 써넣거나 보완할 수밖에 없었다. 근대철학 입문, 미국 헌법해석, 경제사상사, 고대 로마사, 과학의 역사 등의 세부 항목이 그런 부분에 해당한다. 이 책을 가지고 공부의 안내를 삼으려는 이들은 이 범주들 중에서 자신이 관심가는 부분부터 참조하면 될 것이다. 먼저 본문을 꼼꼼하게 읽어 그 영역이 왜 중요한지, 그 영역에서 제기되는 주요한 논제들은 무엇이 있는지 등을 파악하여 자신이 탐구하고자 하는 세부적인 영역을 정하면 되리라 본다.

편역자들이 만들어넣은 또다른 영역은 ‘읽어야 할 도서목록’이다. 원서에도 각 항목 마지막에 원저자의 추천 도서목록이 붙어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영어로 된 것이어서 구하기도 읽기도 수월하지가 않다. 그러므로 편역자들은 해당 영역에서 읽어야 할 책들을 골라서 각 장 말미에 덧붙였다. 이 목록은 크게 ‘원전’과 ‘참고도서’로 나뉜다. ‘원전’은 국내에 번역된 주요 저자의 핵심 저서를 시대순으로 소개하였다. ‘참고도서’는 해당 영역 전체를 개괄하는 입문서, 해당 시대에 대한 이해를 돕는 역사책, 세부적인 주제에 관한 입문서와 연구서 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사람은 원전 목록에서 해당 고전들을 확인하여 곧바로 도전하면 될 것이나 그렇지 않은 이들은 될 수 있으면 참고도서 목록의 순서, 즉 전체에 대한 개괄, 시대를 읽는 역사책, 세부 주제로 공부 해나가면 적절할 것이다.

이 책은 작은 판형의 150쪽 남짓한 얇은 책이다. 그런데 편역에 참여한 이가 여럿이다. 그것은 인문학의 특성상 어느 한 사람이 책 내용 전체를 검토하고 번역하며 수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편역자들은 각자가 담당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검토하면서도 서로의 초고를 함께 검토했으며 도서목록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힘을 합하였다. 이처럼 다학제적인 협동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점이 이 책의 또다른 장점으로 부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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