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도서 소개] From PCs to T-shirts: the world pays for our stuff

개인 컴퓨터에서 티셔츠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위해 세계가 값을 치르다
Jeremy Seabrook

Confessions of Eco-sinnerFred Pearce, Confessions of an Eco-Sinner: Tracking Down the Sources of My Stuff, Beacon Press, 2008.

오늘날의 거대한 이주현상 — 지방에서 도시로 이전하거나 지구상의 변두리 지역을 버리고 떠나는 — 을 살펴보면, 영국의 산업화 초기에 일어났던 현상이 전지구적인 규모로 단순히 되풀이 되고 있다고 결론짓기 쉽다. 세계화의 드라마가 19세기 영국에서 일어났던 격변을 세계적인 무대에서 재상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화의 한가운데로 떠난 피어스Fred Pearce의 여행담은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제국권력의 경험은 “개발”이라는 거대한 채취사업이 구축될 수 있었던 반영부半影部인 “내륙지역hinterland”에 의존하였다. 오늘날 맹렬한 속도로 이루어지는 산업화는 이러한 공급원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이 때문에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지역이 전례 없이 자신들의 — 그리고 다른 — 정부에 의한 내부 식민주의에 고통 받고 있다.

피어스가 찾는 것은 매우 단순해 보인다. 그는 운송되는 상품과 일상생활에서 받고 있는 서비스와 같은 “물건”들이 실제 어디에서 오는지 알고 싶어한다. 이것들을 생산하는데 관여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당연하게만 여겨지는 이런 것들이 어떤 상황 아래서 우리의 세속적인 즐거움이라는 정원에 기적적으로 등장하는 것일까? 피어스는 인류에 대해서 염려하는 만큼 환경적 발자취에 대해서 염려하고 있다.

그는 일모작으로 인해 하얗게 반짝이는 소금으로 덮인 논을 가진 그리고 중개인, 마피아, 정치인들의 조직이 가난한 자들을 위협하는 방글라데시의 적막한 새우 농장으로 떠난다. 그는 여성 노동자들이 시간외 근무와 과도한 노동, 학대에 저항함에 따라 폭력사태가 일어났던 의류공장을 방문한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의 소금기 가득찬 불모지로 향하는데, 그곳에서는 목화가 아랄해를 집어 삼키고 있다.

피어스는 금으로 된 그의 결혼반지의 기원을 지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남아프리카의 드리폰테인Driefontain의 광산에서 찾는다. 그는 컴퓨터, 파란색의 곰 인형, 신발, 가짜 유화 그림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는 중국의 모든 도시들을 찾아간다.

과학저술가인 피어스는 지구가 망가지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 없어 하는 것을 손만 쥐어짜면서 고통스러워 하는 녹색당원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인위적인 구조와는 다른 맥락 — 이것이 업계에서는 업계에는 현실적인 세계로 알려져 있다 — 에 우리의 일상 생활을 가져다 놓으며, 삶의 유용한 것들을 선전할 때 거의 드러나지 않는 관계를 밝히고 있다. 경이로운 그의 여정 — 항공여행으로 180,000km라는 — 은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에너지로 입증된다. 그는 시베리아의 유전에서, 마닐라의 매춘굴에서, 말레이시아의 익명의 야자기름 일모작에서 그리고 에이즈에 시달리고 있는 스와질란드에서 취재한 것을 보고한다. 불안정하지만 안락한 생활을 다른 지역을 착취하고 소진시키는 것과 결부시키는 이 연결망에 대해 “무언가 하려고” 노력함으로써 피어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정해지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탄소를 상쇄하는 것에서, 중고의류를 탄자니아의 사업가에 판매하는 것에서, 다카의 의류 공장으로 이주했던 시골 여성의 삶이 대단하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 개선된 것에서 그 유효성을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해답”을 찾는데 이르면 피어스는 절망적인 열심 녹색당원만큼이나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그는 다루기 힘든 문제에 당면하였을 때 “국제적 공동체”로 단합되는 포괄적인 “우리”, 신뢰할 수 없는 일인칭 복수로 물러서고 있다. 세계의 보상물이 분배될 때 “우리와 그들” 사이의 격차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는 세계가 대체물이 없을 정도로 자원을 소진하고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환기시킴으로써 생존이 위협받는 조건에 처하면 인류가 단결할 것이라는 생각을 맹신하고 있다. 이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자신들의 숙명을 실현하지 못한 것처럼 인류 생존을 위한 가장 최근의 청사진도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이 밝혀졌으니 우리는 지나치게 낙관적이어서는 안된다. “우리”를 제외한, 버려진 컴퓨터에서 금속을 회수하기 위해 산酸에 손을 담그는 델리의 어린 노동자들, 사우디 아라비아 황실의 쾌락에 빠진 이들, 아프가니스탄의 양귀비 재배자들, 워싱턴의 무기 판매상들, 그리고 노예제가 공식적으로 끝나는 시점에서 존재했던 것보다 더 많은 수의 노예화된 사람들이 포함된 이들에게는 초기 자본주의보다 더 위험한 현 상황에서 어떤 구원의 대리인도 없는 것이다. 이들이 연합하는 일은 세계에 흩어져 있는 무력한 노동자들이 연합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글을 쓴 시브룩의 최근 저서로는 Consuming Cultures (New Internationalist) 가 있다.

출처: The Independent, 2008.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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