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古典 강의>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이 책은 오늘날 철학이라 불리는 학문 영역 중에서도 형이상학 분야의 고전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철학이라 불리는”이라고 한 것은 무엇보다도 고대의 철학자들, 즉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들이 철학 연구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이전 사람들, 즉 헤시오도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 등은 더욱이나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대의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철학 연구자임을 의식하였던 데카르트, 칸트, 헤겔은 모두 자신들이 세계의 근본원리를 탐구하고 있다는 자각을 뚜렷하게 가졌을 것입니다.

철학은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그리고 그 세계 안에 살고 있는 자신에 관하여 가장 근본적인 것을 물음으로써 시작됩니다. 이러한 물음은 그저 살고 있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평온하든 혼란스럽든, 나날을 살아가면서도 그러한 나날에서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궁금해 하는, 그 나날로부터 한 발짝 물러선 지점에 서 있는 사람에게만 철학적 물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흔히들 역사가 끝난 지점에서 철학이 시작된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유도 자신의 몸을 세상과 곧바로 맞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역사적 사유 역시 반성적 사유이고 철학적 사유와 닮아 있습니다. 다만 철학적 사유는 조금은 더 깊게 내려간 근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세계의 역사에 관하여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만 철학적 관심도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고대 중국의 역사 책에 《춘추》春秋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자孔子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책입니다. 이 책 이름을 살펴보겠습니다. ‘봄·가을’입니다. 계절 이름입니다. 굳이 봄·여름·가을·겨울을 다 말하지 않아도 이 두 계절만으로도 한 해를 말할 수 있습니다. 춘추는 자연입니다. 자연自然은 말 그대로 늘 그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올 봄에는 꽃이 예년만 못했고, 이렇게 덥기는 한 10여 년 만에 처음이고, 올해 단풍은 유난히 어여뻤으며, 이번 겨울은 벌써 추위가 사무치는데, 도대체 뭐가 늘 그러하다는 말인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 들여다본다면 이런 반문이 생겨날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마다 계절은 달랐으니까 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늘 그러합니다. 봄에 핀 꽃이 아무리 흐드러졌다 해도 겨울까지 피어 있을 리는 없습니다. 반드시 죽습니다. 그것이 늘 그러한 것입니다. 핀다, 죽는다, 다시 핀다, 죽는다, 다시 핀다… 바뀌는 게 있어 보이는데 그 안에 변함없는 것이 있습니다. 있어 ‘보이는 것’이 있고, 늘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있는 것’이 있습니다. 둘 다 있습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가리키고, 다른 하나가 하나를 드러냅니다. 이렇게 해서 불변(에 가까운 것)을 이룹니다.

“춘추”는 역사책 이름입니다. 자연의 겉모습을 보고 지었는지, 자연 뒤에 있는 것을 겨냥하여 지은 것인지, 둘을 겹쳐 지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춘추는 사람의 일을 적습니다. 꽃보다 유한한 사람의 일을 적습니다. 사람은 태어난다, 사람은 죽는다, 이걸로 끝입니다. 사람에 관하여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역사는 그처럼 당연해 보이는 것을 기록하였고, 철학은 인간의 일에서 근원적인 것, 변함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찾아보려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철학은 그 탐구가 찾아낸 성과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뻔해 보이는 것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철학이라는 말보다는 ‘철학함’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수 있습니다. 이 철학함은, 또는 공부는, 변함 속의 인간이 변함 없음을 향해 가는 행위입니다. 그러한 탐구 행위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떠한지, 그 안에서 자신은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를 막연하게나마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철학은 사람을 철들게 하는 학문입니다.

저는 2009년 2월부터 11월까지 40주 동안 서울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인문학 고전들을 강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강의는 《인문 古典 강의》로 묶여 2010년에 출간되었습니다. 2011년에 같은 곳에서 역사 고전들을 강의하고, 《역사 古典 강의》를 출간한 것은 2012년입니다. 그 뒤 이런저런 사정으로 철학 고전들을 읽을 기회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시 서대문구립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2014년에 40주 동안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 강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강의 시간에는 더 많은 고전들을 읽었고 자질구레한 논의도 더 있었습니다만, 책으로 묶기에 적절한 것들만을 여기에 적었습니다.

오늘날 철학은 쇠퇴하는 학문이라고들 합니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그러한 판단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합니다. 겪은 바가 적고, 시야가 좁은 탓에 저는 이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져볼 재주는 없습니다만, 이 고전들을 읽는 동안에는 그러한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였습니다. 저와 함께 이 고전들을 읽었던 이들은 세상사와 별 관계없어 보이는 이 텍스트들을 읽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들을 이끌어간 힘은 세상에 불멸의 이름을 남기려는 명예욕도, 삶의 고통을 잊으려는 도피적 소망도, 주변 사람들에게 어려운 책을 읽고 있음을 보이려는 과시욕도 아닌, 잔잔하면서도 끊이지 않는 학문정신이었을 것입니다. 2014년에 40주 동안 함께 공부했던 그들의 학문정신을 각별히 기억해둡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학문의 토대이자 정수精髓인 철학을 공부하는 장을 마련하고 지켜준 도서관 사서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2016년 7월 강유원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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