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도서 소개] Culture: High, Low, Middlebrow and Popular

문화: 고급문화, 저급문화, 중류문화, 그리고 대중문화
Mark Henrie
2004. 10. 15.

내용 요약
‘문화’라는 관념은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문화’라는 말의 용례는 아주 많아 그 말이 관념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실체를 가진 것인지조차 불분명하다. ‘문화’라는 답이 나오는 질문은 과연 무엇일까? 먼저 우리에게 익숙한 ‘다문화주의’와 ‘문화 전쟁’을 살펴보자.

다문화주의에 따르면 문화들을 판단할 초월적 입장은 없다. 문화란 그 자체가 완전한 ‘전체’로, 그 안에 나름의 판단 기준을 지니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문화주의는 역설적이게도 세계의 다양한 문화들의 산물을 이해할 초월적인 시각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얼핏 비슷하게 보일지 모르나 전통적인 교양교육과 다문화주의는 의도하는 목적이 아주 다르다. 전자는 판단력이나 식별력을 날카롭게 다듬으려 하고, 후자는 그러한 구별을 없애려 한다.

이상의 논의에서 다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문화는 ‘미적이거나 지적인’ 무언가를 가리킨다. 이러한 문화는 특정한 집단이 공통으로 보유하는 것으로, 인류가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문화는 구별을 가리키는 용어이기도 하다. 문화인이란 고급과 저급을 식별할 수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문화란 통합과 분리, 공통성과 구별 모두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문화 전쟁’에서 문화는 무엇보다 ‘도덕적’ 의미로 쓰인다. 문화란 우리가 공통으로 갖는 도덕이라는 것이다. 미합중국에서 ‘문화 전쟁’은 공통의 도덕적 지평의 상실과 그에 대한 두 가지 반응, 곧 찬양과 반동을 포함한다. 오래된 전통의 지지자들이 도덕적 반항자들을 새로운 공통성을 벼리려는 집단으로 이해하게 된 바로 그 순간에 미합중국의 ‘도덕적 위기’는 ‘문화 전쟁’이 되었다. 문화란 특정한 공통성이다.

문화와 정치 중 무엇이 우선하는가? 고전시대에는 정치가 문화에 우선했다. 그러나 계시종교가 출현한 이래로 ‘사회적’인 무언가가 정치 영역 외부에서 등장했고, 이는 상당 부분 ‘컬트cult’가 도시의 주권적 감독에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문화(culture)라는 관점에서 말하기 시작했을까? 문화는 유럽혁명시대 이후의 범주이다. 그리고 ‘문화’는 — 우리가 문화를 경험하는 문제적 방식으로 — 자유주의 체제의 산물이다. 어떻게 그러한가?

애초에 ‘공적인 것res publica’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완전한 삶의 방식을 구성했다. 기독교는 개인들을 공적인 것에서 떼어낸 후 상이하고 더 높은 수준에서 공통의 지반을 재구성했다. 그리고 자유주의 체제는 사람들을 ‘개인들’로 추상화함으로써 정치와 문화를 분리했다. 한때 정치적 삶은 공동체의 열망을 반영하고 표출했지만, 자유주의 체제는 그와는 다른 것 — 개인들의 의지의 총합? 최소공통분모? 최고악을 피하자는 합의? 자유롭고 평등한 거래를 위한 전제조건? — 을 표출했다.

문화의 문제는 이러한 전개의 결과이다. 따라서 문화라는 답이 나오는 질문은 이것이다: 정치가 한때 자신의 자율성이라고 선언했던 공동선의 잔여물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문화는 공통의 무언가에 관해 공적으로 더 말하려는 공통된 열망의 표현이다. 따라서 자유주의 체제에서는 문화의 범위가 줄어드는데, 이는 공동선, 인간의 선 또한 위축된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의 논의가 ‘고급문화, 저급문화, 중류문화, 대중문화’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 대중문화(mass culture)는 대중들에게 호소하여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생산된 문화이다. 곧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된 사람들이 아니라 추상적인 개인들을 위한 문화이다. 오늘날의 문화는 모조리 대중문화 — 저급문화, 엔터테인먼트로서의 문화 — 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중류문화 역시 고급문화인 척하는 대중문화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고급문화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문화는 ‘공통성’에 뿌리 박고 있어야 한다. ‘공통적인 것’에서 등을 돌리는 것은 문화에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문화는 인간 공동체의 공동선을 표상하는 것이며, 이심성(離心性)이 아니라 중심성이 진정한 문화의 표어이다. 이러한 문화 내에서만이 고급이 저급을 이끄는 방식으로 고급과 저급이 공존할 수 있다. 따라서 수도사가 우리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수도사는 그들 자신의 공통성에 뿌리 박고 있으면서도 가장 공통적인 것들을 길러내기 때문이다.

전체 번역문: Mark Henrie, Culture
출처: The Intercollegiate Review

번역: 라티오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