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 이유선, 라티오 (#ISBN9788996056126)

이 원고는 필자가 문예지인 정신과 표현에 ‘문학과 철학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2002년부터 연재해 온 글들 가운데 일부를 골라 모은 것이다.

아이러니의 일상, 공동체의 삶에 대한 생각, 사적이고 철학적인 진리 등의 주제에 해당하는 문학작품과 철학적인 통찰을 담고 있다.

초고: 문학과 철학의 경계

2008년 10월 출간 예정

우리 아버지들이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Francis Beckett

거의 한 세기가 지났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네 권의 책에서 고통스럽고 격렬한 제1차 세계대전을 본다.


[[우리는 싸우지 않을 것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말하지 못한 세계대전 이야기(We Will Not Fight: The Untold Story of World War One’s Conscientious Objectors)]]by Will Ellsworth-Jones, 320pp, Aurum, £18.99

[[왕과 조국을 위해 — 제1차 세계대전의 목소리(For King and Country – Voices from the First World War)]]by Brian MacArthur, 480pp, Little, Brown, £20

[[사상자들: 다섯 남자는 어떻게 제1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았나(Casualty Figures: How Five Men Survived the First World War)]] by Michèle Barrett, 224pp, Verso, £14.99

[[솜 진흙탕: 한 보병의 프랑스에서의 경험 1916-1919(Somme Mud: The Experiences of an Infantryman in France 1916-1919)]] by E.P.F. Lynch, edited by Will Davies, 368pp, Doubleday, £17.99

2008년 11월 11일은 휴전 90주년 기념일이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그 시대를 살아오진 않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은 여전히 생생하고 쓰라린 기억이다. 작가와 역사가들은 더 이상 뽑아낼 만한 것이 없을 때까지 제1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수없이 다루어왔다. 우리는 키치너(Kitchener)와 헤이그(Haig), 애스키스(Asquith)와 로이드 조지(Lloyd George), 클레망소(Clemenceau)와 카이저(Kaiser) 황제에 관해 읽기 원하는 것은 모두 읽어왔고, 현명하게도 올해 출간된 책들은 그런 부류가 아니다.

그 전쟁이 특별히 생생한 이유는 한 세대 전체에게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손상을 입혔고, 그들이 누구인지 우리 대부분이 알 수 있을 만큼 그들과 우리가 가깝기 때문이다 — 그리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여전히 내가 방금 끝마친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과 싸웠던 남자들에 관한 이 네 권의 책을 연달아 읽은 후에(물론 태평한 주말을 위한 사전준비로 추천하고 싶진 않다), 나는 상자에서 얇고 누런 편지들을 꺼내 나의 할아버지가 경험했던 것을 다시 상상했다.

그는 세 명의 어린 딸이 있어서 징병을 면제받았고, 1914년에 지원병을 신청했지만 근시여서 거부당했다. 그러나 그가 1916년에 사무실에서 런던 남부에 있는 집으로 가는 도중에 한 여성이 그에게 흰 깃(겁쟁이의 상징)을 건넸다. 그는 다음날 입대했다. 그들에게는 근시가 문제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포탄을 멈추게 할 신체를 원했고, 라이플총병 제임스 컷모어(James Cutnore)는 1918년 2월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다가 3월 28일에 부상으로 사망했다. 그때 나의 어머니는 9살이었고 평생 그 사건을 극복하지 못했다. 한때 총명했던 그녀는 말년인 1980년대에 치매로 뇌가 크게 손상받아 자식들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지만, 무섭고 오래 지속되고 헛된 할아버지의 죽음만은 여전히 기억했다. 그녀는 여전히 할아버지의 마지막에 관해 말할 수 있었는데, 그때 그는 탄환 충격을 크게 입어 거의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고 할머니는 이(louse)를 잡을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매일 할아버지의 군복을 다림질했다. 할머니는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가 전선에서 쓴 편지들과 마찬가지로 사망한 그의 형제들 및 사촌들에 관한 정보를 보관했다.

할머니는 정치인들을 비난했다. 할머니는 그를 전쟁터로 보낸 세대를 비난했다. 할머니는 키플링(Kipling)의 말에 공감하였다: “누군가 우리가 왜 죽었는지 묻는다면 / 우리 아버지들이 거짓말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오.” 할머니는 사슨(Sassoon)에게도 공감하였다: “내가 난폭하고, 대머리이고, 숨을 헐떡인다면 / 기지에서 육군 소령들과 함께 지낼 텐데 / 그리고 시무룩한 영웅들을 점점 더 빠르게 사선으로 보낼 텐데…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젊은이들이 죽었을 때 / 나는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서 죽을 텐데.”

그러나 할머니는 무엇보다 할아버지에게 흰 깃을 건넨 불명의 여성과 전국에서 그와 똑같은 짓을 했던 인정머리 없고 독선적인 수천 명의 여성들을 비난했다. 윌 엘즈워스-존스가 [[우리는 싸우지 않을 것이다]]에서 일군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흡입력 있고 사려 깊은 설명을 통해 명확히 밝혔듯이, 실제로 그런 여성들이 수천 명 있었다. 전후에 버지니아 울프는 흰 깃을 건넨 사람이 50-60명에 불과하다고 말했지만, 엘즈워스-존스의 성실한 연구가 보여주듯 이는 허튼소리이다.

엘즈워스-존스의 이야기들 중 일부는 여전히 독자를 화나게 할 힘을 가지고 있다. 15살 먹은 한 소년이 1914년에 자신의 나이를 속이고 입대했다. 그는 열병에 걸려 집으로 보내지기 전에 몽스(Mons)에서의 후퇴, 마른(Marne) 전투, 첫 번째 이프르(Ypres) 전투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가 푸트니(Putney)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소녀 네 명이 그에게 흰 깃을 건넸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군대에 있다가 제대했으며 이제 겨우 16살이라고 설명했다. 몇몇이 소녀들 주위에 몰려들어 킬킬거렸다. 나는 안절부절 못했고 몹시 당황했고… 매우 수치스러웠다.” 그는 곧장 가장 가까운 신병 모집소로 가서 다시 입대했다.

이어서 엘즈워스-존스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 버트 브로클스비(Bert Brocklesby)의 이야기를 전하는데, 그의 어머니는 다른 아들 두 명이 전선에 있었는데도 우편으로 흰 깃을 받았다고 한다. 영국에서 그는 수감될 수 있었을 뿐이지만, 군은 그를 포함한 수감자 16명을 군사법정의 관할 아래 있는, 명령에 불응하면 총살당할 수 있는 프랑스로 보내버렸다. 그들 16명은 자신들에 대한 판결이 마지막 순간에 징역 10년형으로 감형된 이유를 까맣게 몰랐지만, 엘즈워스-존스의 성실한 연구는 최초로 그 이유를 밝혀낸다. 그것은 정치적 문제들에 대한 통제력을 거의 완전히 잃어버린 군대에 대한 흡입력 있고 놀라운 이야기다.

브로클스비는 기독교 평화주의자였지만, 이 책들에 나오는 기독교는 호전적이고 위선적으로 보인다. 잉글랜드 교회의 입장은 모든 남자는 신에게서 싸워야 할 의무를 부여받았다는 것이었다 — 성직자들은 예외인데, 캔터베리 대주교가 병역이 서품과 모순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은 자기 자신을 돌본다는 것이다.

하원 의장을 돕는 사제인 부주교 바실 윌버포스(Basil Wilberforce)는 “독일인을 죽이는 것은 성서의 말씀과 완전히 일치하는 성스러운 일입니다”라고 설교했다. 불로뉴(Boulogne)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더러운 감방에 갇혀있던 브로클스비는 악취에 코를 틀어막은 한 사제의 방문을 받았다. “네 종교가 무엇이냐?” 그 사제가 물었다. “저는 감리교도입니다.” “오, 이런, 너를 도울 수 없겠구나 — 나는 영국 국교도다.” 그 사제가 사형집행이 연기된 브로클스비를 방문해 그를 “인류에 대한 치욕”이라고 부른 후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런 사제들이 동틀녘에 총살을 선고받은 300명의 남자들에게 보내졌을 때 그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브라이언 맥아더는 [[왕과 조국을 위해서]]에서 한 군목의 설명을 통해 이 사형수 감방을 보여준다. “내가 어떻게 그의 영혼에 닿을 수 있을까요? 나는 성서를 꺼내 그에게 복음서 한 구절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분명 관심이 없었고, 읽은 구절에 관해 조금이나마 대화하려는 나의 시도에 냉담하게 반응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결국 그들은 함께 찬송가를 불렀고 사형을 선고받은 그 불쌍한 군인은 그로부터 약간의 위로를 받은 듯 보였다. 나는 어떤 시끄러운 노래도 그를 위로할 수 있었던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맥아더의 책은 전쟁으로 삶이 갈갈이 찢긴 남성들과 여성들의 편지와 일기를 선별해 묶은 것으로, 그는 참고할 만한 글을 거의 제공하지 않고 또한 거의 아무런 편집도 하지 않은 채 편지와 일기가 스스로 말하도록 한다. 이것이 한 세대에게 상처를 입힌 공포에 독자를 더 가까이 데려간다.

여기 1916년에 동생에게 화를 내며 편지를 쓰고 있는 군인이 있다: “머저리처럼 지원하다니… 너는 여기로 와서 뒈지는 것이 잘하는 짓이라고 생각할 거야. 일단 기다려. 너는 죽음 때문이 아니라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때문에 속 태우고 있어. 공격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일단 기다리고, 그 다음에 맨 앞으로 나서기 전까지 기다리면서 네 동료들이 기관총에 맞아 고꾸라지는 걸 본 후에, 그러고 나서 그것이 영광스러운 행동인지 생각해봐… 어머니는 누군가의 생명이 여기서는 0.5펜스의 값어치도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나를 생각하면서 가슴을 찢으며 슬퍼하고 계셔. 너는 그걸 보지 못한 거야? 그런데도 자원해서 어머니의 슬픔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거야?”

죽음의 비참함은 미셸 바렛의 [[사상자들]]에서 모든 페이지에 걸쳐 나온다. 한 예로 갈리폴리 전투(Gallipoli campaign)를 치르는 동안 한 군인이 쓴 글을 보자: “터키인들은 이 참호들을 쌓을 때 분명 모래자루가 부족해서 그 대신 여기저기 널린 터키인 시체들 한가운데에서 작업하곤 했다… 그 시체들은 터키인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속이는 데 적합했는데, 자신을 존중하는 모래자루라면 결코 그렇게 하진 않았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참호 사이를 뛰어다닌 군인이 전달한 노트를 보자: “선생님, 오늘밤 구덩이를 파고 심하게 부패한 프랑스인을 다시 묻어야 하는 뚱뚱한 네 녀석이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럼주를 약간 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건 정말이지 야만적인 일이어서 불쌍한 악마들은 그 대가로 무언가를 받을 만하고 게다가 저는 한 방울도 마시지 못했습니다.” 썩어가는 시체들이 내뿜는 엄청난 악취 한가운데에서 시체들은 장비와 함께 땅속에 묻히고 있었고, 군인들은 삐져나온 라이플총의 총신을 무덤 속으로 집어넣고 시체들의 이름을 개머리판에 적고 있었다. 전장의 규율은 사라졌다: “병기와 장비가 부족해지자 이 관례는 금지되었다.”

바렛의 짧고 흡입력 있는 책은 참전했다가 기적적으로 생환한 생존자 다섯 남자의 회고록이다. 그녀의 강조점은 생존자들이 전사한 그들의 전우들만큼이나 심한 충격을 받은 사상자들이라는 것으로, 그녀는 전쟁 중과 전후 그들의 궤적을 쫓는다.

1917년 6월 8일, 그들 중 한 사람인 포병 로널드 스커스(Ronald Skirth)는 모든 전우들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보았다. 사방이 피범벅이었지만 그의 악몽에 나오는 사람은 피를 흘리지 않은 독일인이었다. 그 독일인은 소년이었고 작은 언덕에 앉아 있었다. 그 소년은 분명 지갑 속에 있던 부모님과 여자친구 사진을 보다가 죽었는데, 그 여자는 훗날 아내가 된 스커스의 여자친구와 매우 닮아 보였다. 그 여자의 사진에는 “나의 한스”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무엇이 한스를 죽였는가? “내가 쏜 포탄이 그를 죽였을 리 없다. 그랬다면 그의 몸은 다른 이들, 다른 것들처럼 부풀어올라 터져버렸을 것이다. 그는 탄환 충격으로 죽은 것이 분명하다”라고 스커스는 썼다. 스커스는 포탄을 쏘고 있었다.

또 다른 생존자 E.P.F. 린치는 젊은 오스트레일리아인으로 1921년 연습장 20권에 연필로 놀랍도록 생생한 전쟁 회고록을 썼지만, 시장(market)이 장군과 정치인의 자기정당화를 요구하고 실제 전쟁 기억이 감내하기에는 너무나 쓰라렸던 기간에는 출간되지 않았다. 린치가 죽고 20년이 흐른 뒤인 2002년 그의 손자는 린치의 회고록을 영화제작자이자 군사 전문 역사가인 윌 데이비스(Will Davies)에게 보여주었고 그는 그것을 편집해 [[솜 진흙탕]]으로 출간했다.

데이비스는 소개글에서 자신은 린치의 “정치적으로 매우 올바르지 못한 언급과 인종적 서술”을 완화하려는 유혹을 거부했다고 썼는데, 독자는 그것 때문에 처음 몇 쪽만을 읽고도 곧바로 역겨움을 느끼겠지만 나는 그것이 전적으로 옳은 결정이었다고 본다. 린치를 실은 군수송선이 케이프타운(Capetown)으로 가는 도중에 멈춰 섰을 때 “깜둥이들은 고함을 질렀고 우리를 불렀다.” 그들은 페니를 원했고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몇 페니를 던져주고 그들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누군가 1실링을 내보이며 거구인 깜둥이 두 명에게 다시 싸우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들은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고 다시 한 번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이것에 싫증이 나자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동전을 빨갛게 될 때까지 달궈서 던졌고 그 결과를 보며 박장대소했다. 기껏해야 몇 페이지에 지나지 않는 이 괴이한 에피소드에 관한 서술과 같은 것이야말로 전쟁에 관한 린치의 솔직하고 호소력 있는 글이 가진 힘이며, 우리는 점차 그와 그의 동료들을 걱정하면서 그들이 보았던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은 진흙탕에 빠진 한 남자를 구하려고 했지만 가까이 가보니 그는 “난도질 당해 엉망이 된 시체”였다. 그는 깨끗하게 반으로 절단되어 있었고 가슴은 양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피투성이에 석고처럼 굳은 그의 육체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 젊은 오스트레일리아인의 회고는 대다수 영국인의 서술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 가지, 바로 쓰라리고 격한 환멸을 결여하고 있다. 누구도 보아서는 안 될 것들을 목격하고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입은 영국 군대는 슬픔을 안고 귀국했다. 그들 중 일부는 거리에서 구걸하는 신세로 전락했고, 조국이 그들의 희생을 존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 역시 방식은 달랐지만 똑같이 상처 입은 삶을 살았다. 어머니, 아내, 여자형제, 연인들은 죽은 자들을 애도했고, 자신들이 지킨 소수의 낯설고 상처 입은 남자들을 이해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전쟁만큼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어떤 전쟁도 제1차 세계대전처럼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진 못했다. 1920년대 초만 하더라도 혁명은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나이든 남자들이 다시 권리를 주장하면서 혁명은 점차 시들어갔지만, 1945년 이후 전쟁과 싸운 세대가 마침내 국가를 운영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사회적 합의와 복지국가는 애틀리(Attlee)와 맥밀런(Macmillan)에 의해 수행되었고, 발을 질질 끄는 것으로 유명한 맥밀런의 걸음걸이 — 1960년대 풍자작가들에게는 큰 선물이었던 — 는 전쟁에서 부상을 입어 그렇게 된 것이었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났지만 역사가들에게 그 전쟁은 여전히 균형 잡힌 시각으로 되돌아보면서 냉정하게 분석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과 우리 사이에는 학문적인 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네 권의 책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바와 같이 우리는 여전히 그 전쟁을 고통과 열정을 가지고 바라본다. 1914년 수상 애스키스(Asquith)는 말했다: “전쟁은 언제나 폭도들에게 인기가 좋다.” 당시에는 그 말이 사실이었지만 그 이후로는 결코 그렇지 않으며, 제1차 세계대전이 우리에게 쓰라리고 실제적인 것으로 남아 있는 한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출처: The Guardian, 2008. 5. 17.

번역: 라티오 출판사

성자 뒤의 여인
Eamon Duffy

John Guy, A Daughter’s Love: Thomas and Margaret More, Fourth Estate, 2008.

토머스 모어(Thomas More)는 가장 사랑받았지만 동시에 가장 논란의 여지가 많은 잉글랜드 정치가라는 점에서 처칠에 견주어지곤 한다. 그를 연구한 대다수 사람들은 그에게서 천재와 영웅 둘 다를 발견했다. 기독교 인문주의자인 모어는 1516년에 출간한 [[유토피아(Utopia)]]에서 서구 문화의 위대한 우화들 가운데 하나를 창조했다. 모어는 변호사들 가운데는 드물게 정치가였으며, 전제적인 왕이 강요하는 그릇된 서약을 묵인하기보다는 참수당하는 편을 선택할 만큼 흔들림 없는 청렴한 인물이었다. 가톨릭교도들에게 그는 교회 통합을 위해 희생된 결연한 순교자였다. 로버트 볼트(Robert Bolt)와 같은 세속적 자유주의자들에게 그는 “사계절의 사나이“, 이데올로기에 맞선 개인적 양심의 주창자였다.

그러나 이와 명백히 모순되는 또 다른 모어가 있다. 이 인물은 1529-1533년에 점차 높아지는 프로테스탄티즘의 파도에 맞서 백오십만 자에 달하는, 때로는 신랄한 논증을 퍼붓고, 이교도들에 대한 추적과 처형을 열정적으로 정당화한 논쟁적인 저술가였다. 모어는 대법관이 되기 전에도 금서들을 찾아내기 위한 단속에 앞장섰다. 그는 프로테스탄트로 의심되는 자들을 심문하는 일에 관여했고, 대법관 임기 중에는 이단 혐의를 받은 여섯 명 중 세 명에 대한 화형을 집행하겠다는 영장에 개인적으로 서명했다. 이러한 모어는 그를 찬양하는 이들에게 언제나 골칫거리였다. 튜더 왕조 시대의 가톨릭 전기작가들은 그의 경력 가운데 이러한 측면을 무시하는 쪽을 택한 반면 프로테스탄트 저술가들은 존 폭스(John Foxe) 이래로 그를 고문가이자 광신자라고 비난했다.

존 가이는 지난 50년 동안 대다수 다른 잉글랜드 역사가들보다 모어의 위대함을 학적으로 재평가하는 작업에 더 많은 기여를 했다. 모어의 공적 경력에 대한 그의 1980년 연구(The Public Career of Sir Thomas More는 십여년 동안 모어에 대한 가장 독창적인 저서였다. 가이는 튜더 왕조의 혼란스러운 초기 정치에서 모어가 수행한 역할을 밝혀내고, 계몽적이고 혁신적인 대법관으로서의 토머스 경의 위상을 드러내기 위해 이전에는 경시되었던 많은 문헌을 이용했다. 모어의 삶과 평판에 대한 그의 2000년 연구(Thomas More)는 여전히 최선의 입문서이다.

가이의 새 책은 이러한 저술들의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을 포함하지만 그 호소력은 매우 다르다. [[딸의 사랑(A Daughter’s Love)]]은 모어와 그의 맏딸 마가렛(Margaret)에 대한 이중 전기이다. 모어는 여자아이도 남자아이만큼 교육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시대를 한참 앞서 있었다. 그는 자신의 딸들이 아들들과 똑같은 교양 교육을 받도록 했다.
신동이었던 마가렛은 라틴어와 희랍어에 숙달해 당대의 가장 위대한 학자이자 아버지의 친구인 에라스무스가 편집한 텍스트들을 교정할 수 있었다. 1524년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시행하게 될 검열법에 저항하여 에라스무스가 쓴 [[주의 기도에 대한 성찰(Meditations on the Lord’s Prayer]]의 뛰어난 번역본을 출간했다. 모어의 마지막 10년 동안 그는 아버지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상담자가 되어 그의 사유를 공유했으며 은밀히 아버지가 입었던 참회의 마모직(馬毛織) 상의를 빨았다.

그는 모어가 처형을 기다리는 동안 마지막이자 가장 적합한 위안 상대였다. 모어가 자신의 독방에서 썼던, 일부는 목탄불에 그을려 조각만 남은 일련의 숭고한 편지들 가운데 가장 친밀하고 솔직한 편지는 그에게 보낸 것이었다. 아버지가 처형당한 후에 그는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고 런던교의 대못에 걸려 있던 모어의 머리를 구했다. 결국 그는 그것을 자신의 무덤까지 가지고 갔다. 그의 가장 귀중한 보존 행위는, 마침내 마리 영왕 치세에 인쇄된 위대한 2절판에 대비해, 런던탑에서 쓴 편지들로 감동적인 절정에 달한 아버지의 모든 영어 저술을 모은 것이었다.

가이는 재능과 위대함이라는 측면에서 모어의 경쟁자로서 마가렛을 매우 높게 평가하며, 그가 모어라는 인물에 대한 우리의 지식 가운데 반드시 필요한 자료 대부분을 제공했다고 본다. 그는 눈감아줄 수 있는 과장을 섞어 마가렛이 없었다면 그의 아버지는 “단지 역사의 또 다른 각주”가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그는 마가렛의 탁월한 희랍어 학식과 번역에 근거하여 마가렛을 튜더 왕조 초기 잉글랜드에서 틴들(Tyndale)의 것에 필적하는 신약성서 번역본을 내놓을 수 있었던 정통 가톨릭교도로 본다. 가이는 이 점을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헨리 왕조의 주교들을 몰아세운다: “그러나 물론 그녀는 여자였고, 그리하여 그들은 결코 그 사실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는 회고담으로 모어에 대한 초기 전기작가들에게 최선의 자료를 제공한 마가렛의 남편 윌리엄 로퍼(William Roper)를 모욕한다. 가이는 그를 부인의 성취로 명성을 얻은 기회주의자로 본다. 그는 가부장제를 맹목적으로 신봉하여 모어의 정치적 삶에서 마가렛을 “덮어버렸다”는 이유로 모어에 대한 최초의 전기작가인 성직자 니콜라스 합스필드(Nicholas Harpsfield)를 비난한다. 이는 전혀 공정하지 못하다: 합스필드는 제한된 사료를 가지고 작업했으면서도 마가렛의 학식과 선한 성품 그리고 토머스의 “가장 중요하고 거의 유일한 세속적 위안”으로서의 그의 역할을 열광적으로 칭찬했다. 그럼에도 가이의 책은 모어의 가장 중요한 관계에 적절한 초점을 맞춘, 모어의 삶에 공감하는 전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모어에 대한 가이의 공감은 몇 가지 측면에서 놀랍다. 가이의 이전 작업은 그의 훌륭한 스승 제프리 엘튼 경(Sir Geoffrey Elton)의 특징들 가운데 하나인 모어의 종교적 견해에 대한 열광의 결여를 공유했다. 그러나 이번 저작에서 가이는 따뜻하고 탄복하는 어조로 모어에 관해 저술하며, 모어가 분명 영웅이었고 심지어 성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듯이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몇 가지 유보조건을 유지한다. 그는 모어의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저술들을 따분해하며 그 맹렬한 표현을 거부한다. 그는 튜더 왕조 시대의 논박들 가운데 걸작으로 널리 인정받은 모어의 [[이교도들에 관한 대화(Dialogue Concerning Heresies)]]를 두고 “매우 중요하다”는 입에 발린 말을 한다. 그러나 이 기지 넘치고 강력한 논증을 펼친 책에 대한 그의 열광에는 확신이 없으며, 그는 이 저작에서 이교도들에 대한 폭력의 정당화에 초점을 맞춘다. 가이는 모어의 복잡한 인성 가운데 이러한 측면을 충분한 시간을 두고 탐색하지 않은 채 이전의 이상에 대한 배반으로만 본다.

가이의 책은 인쇄된 자료에 대한 독보적인 지식뿐 아니라 기록보관소들에서의 새로운 작업에 근거한다. 이 책은 지식을 가볍게 전달한다 — 각주는 없으며 학식은 뒷부분의 도서목록에 대한 에세이 안에 감추었다. 그러나 잉글랜드 역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대한 이 따뜻하고 생생한 초상화는 일반 독자뿐 아니라 전문가도 읽을 만할 것이다.

Eamon Duffy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기독교 역사학 교수이다.

토머스 모어
토머스 모어 경(1478-1535)은 런던시의 주 장관 대리로 정치적 삶을 시작하여 승진을 거듭해 하원 의장이 되었으며 이후 1529-1532년에는 대법관을 지냈다. 1516년에 펴낸 [[유토피아]]는 책 제목이 하나의 술어가 되었다.. 그는 헨리 8세에 의해 반역죄로 처형당한 지 400년 후인 1935년 교황 피우스 11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그는 처형대에 올라서서 “나는 왕의 충실한 신하이지만 무엇보다 하느님의 착한 종”으로 죽는다고 말했다.

출처: The Independent, 2008. 7. 18.

번역: 라티오 출판사

물, 어디에나 있는 물: 이 신선한 역사는 우리가 마시기에 충분한 것을 제공한다
Jonathan Gibbs

Rupert Wright, Take Me to the Source: In Search of Water, Harvill Secker, 2008.

밀레투스의 탈레스에 따르면 “만물은 물이다.” 우리의 신체는 말할 것도 없고, 지구 전체의 2/3가 물로 이뤄져있다는 사실은, 물이 인간생활의 모든 요소들 — 정치, 종교, 예술 그리고 학문 — 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주제를 아우르는, 물에 대한 책을 쓰는 일은, 웃자고 하는 일이 아니라면, 바보같은 짓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우리가 무시하는 것만큼 우리가 취하는 것이 줄어들 것이다. 우리는 물의 즐거움 — 목욕할 때 아이들이 물장구 — 과 그것의 무서운 면 사이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1931년 중국 황하에서 일어난 홍수는 “어디든지 백만에서 사백만에 이르는” 인명을 앗아갔다.

“물을 찾아서”란 부제가 달린 Rupert Wright의 개관은 독자들에게 개인적인 관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세계은행에서 물 문제에 관해 일하면서 그의 관점은 더 세련돼졌다. 정치인들이 수질보건 관련 팜플렛을 망쳐놓았던 우간다에서 일했던 경험과 슬럼가의 가족들이 하루치의 식수를 배급받기 위해 길 모퉁이에서 기다리던 뉴델리에서의 여행을 그는 회상한다. 물은 깨끗하고 이용이 자유롭지만, 그곳의 아이들은 학교 바깥에서 식수를 실은 물 탱크를 줄지어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Wright는 거대한 스케일의 물 관련 프로젝트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놀랄만치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는 경고를 포함한 10개의 계율을 제공하기까지 한다. “사람은 그들이 먹을 물을 위해 지불해야 할 것이다. 배송비용을 지불하고도 물의 낭비를 막기에 충분한 비용을 말이다.” 그러나 그는 1983년에 전임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Boutros Boutros-Ghali의 “앞으로 서아시아에서의 전쟁은 정치가 아닌 물과 관련해서 일어날 것이다”라는 발언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라크에서 두 차례의 전쟁이 일어났지만, 그것은 확실히 물 때문이 아니었다고 반문할 수 있다.

환경정치를 다루는 부분은 이 책에 무게감을 부여한다. 나는 지하수의 최대 매장지인, 여러 대수층帶水層에 관해 배운 것이 만족스러웠다. 몇몇은 유익했지만 몇몇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예시의 나열이나 숨겨진 이야기가 아닌, 사실과 전체적인 지도를 원했다. 이러한 산발적인 접근은 독자들에게 피상적인 인상만 남길 수 있다. Wright는 미네랄이 함유된 깨끗한 물을 검사하며 수맥탐지업자가 자신의 정원을 살펴보게는 하지만, 현상을 속속들이 조사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는 이 책을 읽고자 하는 이들이 어떤 감명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조지아 주 의회의사당의 중앙 단상 위에 서서 이 지역의 사상 유례없는 가뭄을 끝내고자 기도하고 있는 Sonny Perdue 주지사의 엉뚱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세계은행은 그에게 연락을 줄 것이다.

출처: The Independent, 2008. 7. 22.

번역: 라티오 출판사

Kant and the Early Moderns

Editors: Daniel Garber, Beatrice Longuenesse
Paperback: 276 pages
Publisher: Princeton University Press (August 20, 2008)
Language: English
ISBN-10: 0691137013
ISBN-13: 978-0691137018

Review
이 책은 근대철학사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여가 될 것이다. 글쓴이들은 선행 철학자들에 대한 칸트의 비판을 면밀하게 살펴보면서 칸트와 근대 초기의 사상가들, 즉 데카르트, 로크, 라이프니츠, 버클리, 흄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Edwin McCann,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Product Description
지난 200년 동안 칸트는 철학사와 근대 초기 지성사에 관한 연구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렌즈 — 더러는 왜곡된 렌즈였지만 — 역할을 해왔다.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로크, 버클리, 흄에 관한 칸트의 저술은 굉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서 칸트의 관점에서 벗어나 이들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편집자들은 세계의 주도적인 철학사가들의 글을 묶어냄으로써 칸트를 선행하는 사상가들과의 관계 속에서 고찰할 수 있게 해준다.

기고된 글들은 몇 부분으로 나뉘어있다. 첫번째 글은 칸트가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로크, 버클리, 흄의 철학적 사상에 직접 관련을 맺는 것을 논의하고 있으며, 두번째 부분은 문제가 되고 있는 이러한 초기 철학자들에 좀 더 직접적인 관심을 가지고 칸트의 독해를 반성함으로써 그들 본래의 사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논의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은 근대 초기 인식론, 형이상학, 심리철학으로부터 칸트의 비판철학으로의 “초월론적 전환”을 형성하는 논쟁에 관한 풍부하고도 복합적인 그림이다.

기고자들은 다음과 같다. Jean-Marie Beyssade, Lisa Downing, Dina Emundts, Don Garrett, Paul Guyer, Anja Jauernig, Wayne Waxman, and Kenneth P. Winkler.

출처: Amazon.com

번역: 라티오 출판사

개인 컴퓨터에서 티셔츠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위해 세계가 값을 치르다
Jeremy Seabrook

Confessions of Eco-sinnerFred Pearce, Confessions of an Eco-Sinner: Tracking Down the Sources of My Stuff, Beacon Press, 2008.

오늘날의 거대한 이주현상 — 지방에서 도시로 이전하거나 지구상의 변두리 지역을 버리고 떠나는 — 을 살펴보면, 영국의 산업화 초기에 일어났던 현상이 전지구적인 규모로 단순히 되풀이 되고 있다고 결론짓기 쉽다. 세계화의 드라마가 19세기 영국에서 일어났던 격변을 세계적인 무대에서 재상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화의 한가운데로 떠난 피어스Fred Pearce의 여행담은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제국권력의 경험은 “개발”이라는 거대한 채취사업이 구축될 수 있었던 반영부半影部인 “내륙지역hinterland”에 의존하였다. 오늘날 맹렬한 속도로 이루어지는 산업화는 이러한 공급원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이 때문에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지역이 전례 없이 자신들의 — 그리고 다른 — 정부에 의한 내부 식민주의에 고통 받고 있다.

피어스가 찾는 것은 매우 단순해 보인다. 그는 운송되는 상품과 일상생활에서 받고 있는 서비스와 같은 “물건”들이 실제 어디에서 오는지 알고 싶어한다. 이것들을 생산하는데 관여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당연하게만 여겨지는 이런 것들이 어떤 상황 아래서 우리의 세속적인 즐거움이라는 정원에 기적적으로 등장하는 것일까? 피어스는 인류에 대해서 염려하는 만큼 환경적 발자취에 대해서 염려하고 있다.

그는 일모작으로 인해 하얗게 반짝이는 소금으로 덮인 논을 가진 그리고 중개인, 마피아, 정치인들의 조직이 가난한 자들을 위협하는 방글라데시의 적막한 새우 농장으로 떠난다. 그는 여성 노동자들이 시간외 근무와 과도한 노동, 학대에 저항함에 따라 폭력사태가 일어났던 의류공장을 방문한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의 소금기 가득찬 불모지로 향하는데, 그곳에서는 목화가 아랄해를 집어 삼키고 있다.

피어스는 금으로 된 그의 결혼반지의 기원을 지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남아프리카의 드리폰테인Driefontain의 광산에서 찾는다. 그는 컴퓨터, 파란색의 곰 인형, 신발, 가짜 유화 그림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는 중국의 모든 도시들을 찾아간다.

과학저술가인 피어스는 지구가 망가지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 없어 하는 것을 손만 쥐어짜면서 고통스러워 하는 녹색당원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인위적인 구조와는 다른 맥락 — 이것이 업계에서는 업계에는 현실적인 세계로 알려져 있다 — 에 우리의 일상 생활을 가져다 놓으며, 삶의 유용한 것들을 선전할 때 거의 드러나지 않는 관계를 밝히고 있다. 경이로운 그의 여정 — 항공여행으로 180,000km라는 — 은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에너지로 입증된다. 그는 시베리아의 유전에서, 마닐라의 매춘굴에서, 말레이시아의 익명의 야자기름 일모작에서 그리고 에이즈에 시달리고 있는 스와질란드에서 취재한 것을 보고한다. 불안정하지만 안락한 생활을 다른 지역을 착취하고 소진시키는 것과 결부시키는 이 연결망에 대해 “무언가 하려고” 노력함으로써 피어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정해지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탄소를 상쇄하는 것에서, 중고의류를 탄자니아의 사업가에 판매하는 것에서, 다카의 의류 공장으로 이주했던 시골 여성의 삶이 대단하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 개선된 것에서 그 유효성을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해답”을 찾는데 이르면 피어스는 절망적인 열심 녹색당원만큼이나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그는 다루기 힘든 문제에 당면하였을 때 “국제적 공동체”로 단합되는 포괄적인 “우리”, 신뢰할 수 없는 일인칭 복수로 물러서고 있다. 세계의 보상물이 분배될 때 “우리와 그들” 사이의 격차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는 세계가 대체물이 없을 정도로 자원을 소진하고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환기시킴으로써 생존이 위협받는 조건에 처하면 인류가 단결할 것이라는 생각을 맹신하고 있다. 이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자신들의 숙명을 실현하지 못한 것처럼 인류 생존을 위한 가장 최근의 청사진도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이 밝혀졌으니 우리는 지나치게 낙관적이어서는 안된다. “우리”를 제외한, 버려진 컴퓨터에서 금속을 회수하기 위해 산酸에 손을 담그는 델리의 어린 노동자들, 사우디 아라비아 황실의 쾌락에 빠진 이들, 아프가니스탄의 양귀비 재배자들, 워싱턴의 무기 판매상들, 그리고 노예제가 공식적으로 끝나는 시점에서 존재했던 것보다 더 많은 수의 노예화된 사람들이 포함된 이들에게는 초기 자본주의보다 더 위험한 현 상황에서 어떤 구원의 대리인도 없는 것이다. 이들이 연합하는 일은 세계에 흩어져 있는 무력한 노동자들이 연합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글을 쓴 시브룩의 최근 저서로는 Consuming Cultures (New Internationalist) 가 있다.

출처: The Independent, 2008. 6. 20.

Unwritten Philosophy

원제: The Unwritten Philosophy and other essays

지은이: F. M. 콘퍼드
옮긴이: 이명훈
판형: 신국판 변형; 216페이지(13,000원)
발간일: 2008년 7월15일
ISBN: 9788996056119

<<쓰여지지 않은 철학>> F. M. 콘퍼드, 이명훈, 라티오 (#ISBN9788996056119)

도서안내
희랍철학의 거장 콘퍼드가 말하는 서양고전의 기반

이 책의 저자인 F.M. 콘퍼드는 [[종교에서 철학으로]](남경희 옮김)와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이종훈 옮김)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희랍철학 연구의 대가이다. 앞의 두 저작과 달리 [[쓰여지지 않은 철학]]은 그동안 한국에서 번역 출간되지 않았던 콘퍼드의 논문들을 모은 유고집이며, W.K.C. 거스리가 회고문을 쓰고 편집하였다. 거스리는 이 저작에 실린 논문들 중 [쓰여지지 않은 철학]이 콘퍼드의 탐구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보아, 책의 제목을 ‘쓰여지지 않은 철학’으로 정했다. 콘퍼드에 따르면, 작품을 남긴 작가들 혹은 철학자들은 거미처럼 짜놓은 자신의 작품 뒤에 몸을 숨기기 때문에, ‘숨어있는 철학자의 정신이 어떤 것인가’를 밝히는 것이 진정한 철학적 탐구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콘퍼드의 제자이기도 한 거스리는 박종현 교수가 번역한 [[희랍철학입문]]과 아직 번역되지 않은 [[희랍철학사]]의 원저자이다. [[희랍철학사]]는 거스리를 세계적인 학자로 알려지게 만든 총 6권의 대작으로서 희랍철학에 관하여 방대하면서도 매우 엄정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희랍철학입문]]은 서양고전, 특히 희랍철학이 낯설었던 때에 일찍이 우리에게 그 안내서로서의 역할을 충당했으며, 고전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에게는 지금도 필독서로 읽힌다.

거스리는 콘퍼드를 “새로운 탐구를 하는 데 전혀 피곤해 하지 않는” 학문적 열정을 지닌 학자로 회고한다. 이러한 열정적 태도를 가졌던 콘퍼드는 당대가 옹호하는 개념이나 견해에 무의식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근본적 가정을 그대로 흘려버리지 않았다. 어느 시대이고 어떤 쟁점에 대해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벗어날 수 없었던 유산을 간직하고 있기에, 콘퍼드는 새로운 주제로 나아가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유산으로 전해져 오는 것들에 대한 탐구에 몰두했다. 그래서 그는 [[종교에서 철학으로]]에서 “명료한 철학적 진술에 이르는 사유의 양식은 이미 신화의 비추론적 직관에 함축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는, 그의 탐구가 내적으로 ‘선先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증거이다.

“인간의 영혼만이 스스로 운동하는 힘을 가졌으며, 이 영혼은 자신이 본래 있던 곳으로 가고자 한다. 그러나 영혼이 가려고 하지 않는 길이 있다. 아래로 가는 길은 영혼이 가고자 하는 길이 아니라 영혼 바깥에 있는 어떤 것에 의해 끌려가는 길이다. 그것이 권력과 금력일 수도 있지만, 다수가 받아들이는 믿음일 수도 있다. 어떤 믿음을 갖는다고 해서 반드시 영혼이 제 스스로 가고자 하는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혼의 불멸성, 그것은 영혼이 처음부터 있었고 나중까지 남아있는 것으로, 그런 영혼으로 사는 삶이 ‘영혼불멸의 삶’이 되겠다. 그렇다면 불멸하는 영혼으로 살아가는 자는 시간과 공간을 바라보는 자라야 하지 않겠는가. 콘퍼드의 이 글들이 그러한 통찰과 결단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차례
1. 문학과 철학에 깃든 무의식적 요소(1921)
2. 천체의 음악(1930)
3. 쓰여지지 않은 철학(1935)
4. 플라톤의 국가(1935)
5. 플라톤의 [[향연]]에 나타난 에로스(1937)
6. 희랍의 자연철학과 근대의 자연과학(1938)
7.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서 제의(祭儀)의 기반(1941)
8. 고대철학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1942)
부록: 콘퍼드의 고전학 관련 연구목록

저자 소개
콘퍼드(Francis Macdonald Cornford, 1874~1943)는 1899년부터 1902년까지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컬리지의 펠로우를 지냈으며, 1931년에 고대철학에 관한 권위있는 연구자에게 주어지는 로렌스 석좌교수가 되었다. 희랍철학의 대가이자 플라톤 저작들에 관한 탁월한 주석서로 유명하다.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 [[종교에서 철학으로]](남경희 옮김,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5),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이종훈 옮김, 박영사, 2006)가 있다.

옮긴이 소개
이명훈은 충남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연구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몇몇 대학 강의와 희랍고전 강독을 하고 있다.

<<쓰여지지 않은 철학>> F. M. 콘퍼드, 이명훈, 라티오 (#ISBN9788996056119)

이 책의 저자인 F. M. 콘퍼드는 <<종교에서 철학으로>>(남경희 옮김)와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이종훈 옮김) 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희랍철학 연구의 대가이다. 앞의 두 저작과 달리 [[쓰여지지 않은 철학]]은 그동안 한국에서 번역 출간되지 않았던 콘퍼드의 논문들을 모은 유고집이며, W.K.C 거스리가 회고문을 쓰고 편집하였다. 거스리는 이 저작에 실린 논문들 중 <쓰여지지 않은 철학>이 콘퍼드의 탐구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보아, 책의 제목을 ‘쓰여지지 않은 철학’으로 정했다.

콘퍼드의 제자이기도 한 거스리는 박종현 교수가 번역한 <<희랍철학입문>> (#ISBN9788930606127)의 원저자이자 아직 번역되지 않은 [[희랍철학사]]의 저자이다. [[희랍철학사]]는 거스리를 세계적인 학자로 알려지게 만든 총 6권의 대작으로서 희랍철학에 관한 방대하면서도 매우 엄정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희랍철학사]]는 아직 국내에 번역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희랍철학입문]]은 서양고전, 특히 희랍철학이 낯설었던 때에 일찍이 우리에게 그 안내서로서의 역할을 충당했으며, 고전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에게는 지금도 필독서로 읽힌다.

거스리는 콘퍼드를 “새로운 탐구를 하는 데 전혀 피곤해 하지 않는” 학문적 열정을 지닌 학자로 회고한다. 이러한 열정적 태도를 가졌던 콘퍼드는 당대가 옹호하는 개념이나 견해에 무의식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근본적 가정을 그대로 흘려버리지 않았다. 어느 시대이고 어떤 쟁점에 대해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벗어날 수 없었던 유산을 간직하고 있기에, 콘퍼드는 새로운 주제로 나아가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유산으로 전해져 오는 것들에 대한 탐구에 몰두했다. 그래서 그는 [[종교에서 철학으로]]에서 “명료한 철학적 진술에 이르는 사유의 양식은 이미 신화의 비추론적 직관에 함축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는, 그의 탐구가 내적으로 ‘선개념(先槪念)’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증거이다.

당대는 그 이전 시대와 ‘선개념’에 바탕을 두고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일관되고 기본적인 콘퍼드의 입장이다. 가령 [문학과 철학에 깃든 무의식적인 요소]라는 논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논문에서 콘퍼드는 역사가에 대해 비판을 가하려면 그가 이미 처음부터 취하고 있는 사유양식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즉 경제학이 태동하기 이전에 이미 형성된 사유양식에 대해 먼저 살펴볼 것을 권한다. 그리하여 “과거도 없고 전통도 없는 인류사회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했던 것이다. 철학이나 그 외의 학문들이 신화에서 곧장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통로를 거치되, 어느 한 개인과 무관하면서도 그들 각자가 무의식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러한 무의식적인 상태를 동일한 원천으로 하여 각 학문의 영역이 일정한 통로를 거쳐 나아가게 된다는 점을 살펴볼 수 있다.

2장에서 다루는 [천체의 음악]은 시작부터 아베크 족의 정서를 느끼게 한다. 달빛이 어려 있는 분위기에서 사랑하는 두 연인의 달콤한 속삭임이 이어진다. 매우 감상적이다. 그러나 주제는 엉뚱한 쪽으로 흘러간다. 살을 맞대고 몸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려할 텐데 이야기의 흐름은 전혀 그렇지 않다. 몸은 티끌이다. 그러니 한낱 부질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티끌이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으니 이것 또한 조화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질서를 가진다는 것은 한계를 가지는 것인데, 그 한계지음이 무한에 대한 척도가 된다. 그리하여 무한과 어우러짐이 되는 것이다. 티끌과 같은 몸이 영혼의 불멸성과 어우러지지 않는 한, 몸은 그저 티끌일 뿐이다. 수학자들의 영혼을 넘치는 기쁨에 빠져들게 했던 것은 무엇인가? 천체가 어떤 굉음소리를 낸다면 누군들 그 굉음소리를 듣지 못하겠는가? 그렇지만 천체의 음악은 소리 그 자체가 아니다. 물질로 된 어떤 전달체가 아니므로, 그것을 물질과 관련되어 있는 소리로 보는 한 결코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연인들의 속삭임이 천체의 음악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서구사상사에서 무엇을 뜻하는지를 2장의 논문에서 살펴볼 수 있겠다.

3장의 논문 [쓰여지지 않은 철학]은 콘퍼드의 철학적 탐구 자세를 보여준다. 우나무노(Unamuno)는 “철학적 탐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것을 찾기 위해 철학적 탐구를 한다”고 말했다. 콘퍼드는 이 점을 거미와 그물의 비유로 설명한다. 거미가 짜 놓은 그물은 당대의 작품이다. 그러나 철학자인 거미는 보이지 않는다. 작품을 남긴 작가들 또는 철학자들은 거미처럼 그물 뒤편으로 몸을 숨긴다. 숨어있는 철학자의 정신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것이 진정으로 철학적 탐구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래서 우리가 아주 흔하게 받아들이는 개념들은 실상 각 시대마다 같을 수가 없는데, 자신들의 시대에서 취하고 있는 관점이나 개념이해를 기준으로 지난 시대의 저작을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탐구자세가 된다고 콘퍼드는 경고한다. 그 예로서 그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간략하게 살펴본다. 시간이나 공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시대마다 다르고 또 당대에는 이러한 추상적 개념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4장의 논문에서 다루는 플라톤의 [[국가]]는 그의 참스승인 소크라테스의 평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플라톤의 고민은 그의 스승이 겪은 생애에 있다. 한번도 다른 사람을 옭아매려고 한 적도 없는 소크라테스가 다른 누군가에 의해 터무니없이 옭아매여 죄를 뒤집어 쓰는 현실에 대한 고민이다. 대화편을 통해 스승의 길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가장 극적으로 대립되는 인물은 칼리클레스이다. 그는 소크라테스에게 “철학을 포기하고 일상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할 것”을 충고한다. 그런데 이런 칼리클레스는 결국 플라톤의 시각에서는 소크라테스와는 정반대로 “신의 친구도 인간의 친구도 될 수 없는 강도와 무법자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다. 결국 알려진 바와 같이 플라톤은 철학적 소양을 갖춘 정치가를 양성하는 학교를 세우기로 결심한다. 이 장에서는 플라톤이 경험한 현실과 고민 그리고 인간의 유형에 따라 어떤 공동체가 가장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담겨 있다.

5장의 논문에서 다루는 주제는 ‘에로스’이다. 넓게 보면 열정이고 좁게 말하면 욕구이다. 그래서 에로스는 “모든 형태의 욕구가 지닌 충동”을 가리킨다. 인간이 지닌 욕망의 흐름이 어떤 곳으로 향하느냐에 따라 거기서 얻는 즐거움도 달라진다. 지식을 향해 있을 때는 영혼이 간직한 즐거움을 향해 간다. 그렇지 않고 반대로 치닫는 욕망으로서의 에로스도 있게 마련이다. 위로 향해 나아가려는 욕망은 각 단계마다 날아가기 위해 날개가 자란다. 그것은 프시케가 에로스에게서 받는 날개이다. 그렇게 해서 날개를 달고 날아가서 도달하는 목적지는 어디인가? 4장에서 본 칼리클레스와의 대조를 통해 인간의 영혼이 어떤 곳을 향해 가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도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가]] 편에서 철학자는 ‘왕 중의 왕으로서 자신을 다스리는 왕’이다. 칼리클레스는 힘과 권력으로 다스리기는 하겠지만, 자신을 다스리는 왕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나아가 칼리클레스는 태양과도 같은 신을 보고 인간의 삶을 가치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물을 수조차 없다. 이런 물음이 가능하다면 그리고 인간의 삶을 가치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는 명실상부하게 왕 중의 왕으로서 자신을 다스리는 왕이라고 할 것이다.

6장의 논문에서는 고대의 자연철학과 근대의 자연과학을 비교한다. 고대의 자연학은 ‘사물의 본성에 관한 탐구’이다. 세계는 생명체에서 자라난다. 그래서 진화형과 창조형으로 나뉘게 된다. 진화형은 데모크리토스에서 볼 수 있고, 창조형은 플라톤이 추구하는 도덕적 철학적 유형의 자연철학이다. 어느 것이 되었든 당대로서는 관찰의 범위를 넘어서 있다. 원초적 무질서의 상태를 본 적이 없다. 어떻게 질서가 원초적 무질서에서 생겨나고 생명이 태어났는지를 본 적도 없다. 그리하여 고대의 자연철학과 근대의 자연과학을 방법과 목적에 따라 구별해서 다룬다. 자연철학은 “무엇이 실제로 궁극적으로 있는가?”에 대한 탐구라면, 근대의 자연과학은 “세계의 만물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탐구이다. 이런 주제들이 왜 탐구의 목표가 되는가에 따라 콘퍼드의 논의를 따라가면 그가 지닌 탐구의 열정도 함께 느끼게 된다.

7장의 논문은 헤시오도스의 계획을 크게 셋으로 나누어 다룬다. 우선, 신들의 여러 세대를 구분한다. 그리고 우주생성론으로서 질서의 형성과 인류의 탄생에 주목한다. 셋째는 최고통치자로서 제우스를 논의의 중심에 놓는다. 신들의 계보에 따른 각종 일화는 서로 별개로 되어 있는 조각들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로 연결되는 이야기라는 점을 콘퍼드는 입증한다. 그렇게 해서 [창세기]는 마르두크 신화에 대한 야훼의 반성이듯이, 헤시오도스의 우주생성론은 제우스의 신화적 찬미에 대한 합리적 반성이 된다. 야훼가 리바이어던을 살해하고 마르두크가 티아마트를 살해하는 것은 ‘기묘한 환상’도 아니고 근거 없는 사유도 아니다. 별개로 떨어진 사건들이 아니므로 배경이 없었던 것이 아님을 보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논문에서 콘퍼드는 최근의 두 저서를 통해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해석을 고대철학에 적용해서 살펴보고 있다. 당시 역사개념은 노동계급의 운동이라는 ‘새로운 사실’에 의해 바뀌게 된다. 엥겔스는 적대계급의 탄생은 당대의 경제적 지위의 산물이며 이것이 실질적인 기반을 이루며, 이를 토대로 각 시대의 종교적·철학적 및 그 외의 개념들을 설명하고 있다고 보았다. 나아가 정치적인 제도의 전반적인 상부구조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진술은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콘퍼드는 이런 점에 주목하기보다는 적어도 일부 철학적 개념이 어떤 점에서는 매우 애매한 구절로 된 사회적인 기원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었다. 그리하여 파링톤과 톰슨의 두 저서를 검토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우선 파링톤이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을 지지하는 세 가지 이유를 검토한다. 즉 원자론이 과학적 참이고, 물질적 진보에 공헌하고 나아가 박애주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지지를 보낸다. 이런 이유에 적합하기 때문에 원자론은 대중의 철학으로서 플라톤의 철학과 대립을 이루게 된다. 플라톤의 철학은 ‘선전활동’이고 ‘고상한 거짓말’에 불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진리가 아닌 것을 참지 않으려는 진리에 대한 사랑과 거짓을 증오’하는 철학으로서 플라톤이 참스승으로 모신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수난을 받게 되었는가에 대한 철학을 물질론적인 기준에서 평가할 수 없다는 점이 콘퍼드가 취하는 입장이다. 지혜에 이르는 길이 좁고 설령 그 길을 따라간다고 하더라도 진리의 문에서 그것을 통과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는 점이 플라톤의 입장임을 강조한다. 상대성 이론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듯이 지혜에 이르는 길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래서 지혜의 길은 소수정예만을 위해 마련된 길도 아니다. 나아가 지혜는 ‘지배계급’이 비밀리에 거래하는 것일 수 없으니 결코 고상한 거짓말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시대가 가진 시각에서 고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 당대 저작을 그 작가의 정신에서 읽는다는 것은 고전읽기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콘퍼드의 [[쓰여지지 않은 철학]]은 희랍철학뿐 아니라 나아가 고전학을 대하는 하나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또한 콘퍼드의 이 글들은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관한 대답을 암시해주기도 한다.

이런 말을 한번 생각해보자. ‘운동의 비운동, 비운동의 운동.’ 이 말은 고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콘퍼드의 [[쓰여지지 않은 철학]]을 읽으며 나는 다소 엉뚱하게도 이런 고상한 언표를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저 문장에 한두 글자를 보태서 ‘운동권의 비운동적 삶, 비운동권의 운동적 삶’이라고 해 보자. 자극적인 표현일 수도 있다.

우리의 현실에서 학문과 사회의 괴리, 그리고 개인과 공동체의 갈등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소크라테스 시대에도 있었다. 이런 괴리와 갈등양상을 보며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본질을 묻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점을 통찰했다. 콘퍼드도 그 통찰을 알았기에 단순히 소크라테스의 업적을 기리거나 철학적 탐구가 인간의 활동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공동체의 개인에게는 위로 가는 길과 아래로 가는 길이 열려 있기 마련인데, 공동체를 위한다고 해서 그것이 위로 가는 길이요, 개인을 위한다고 해서 아래로 가는 길은 아니다.

인간의 영혼만이 스스로 운동하는 힘을 가졌으며, 이 영혼은 자신이 본래 있던 곳으로 가고자 한다. 그러나 영혼이 가려고 하지 않는 길이 있다. 아래로 가는 길은 영혼이 가고자 하는 길이 아니라 영혼 바깥에 있는 어떤 것에 의해 끌려가는 길이다. 그것이 권력과 금력일 수도 있지만, 다수가 받아들이는 믿음일 수도 있다. 어떤 믿음을 갖는다고 해서 반드시 영혼이 제 스스로 가고자 하는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혼의 불멸성, 그것은 영혼이 처음부터 있었고 나중까지 남아있는 것으로, 그런 영혼으로 사는 삶이 ‘영혼불멸의 삶’이 되겠다. 그렇다면 불멸하는 영혼으로 살아가는 자는 시간과 공간을 바라보는 자라야 하지 않겠는가. 콘퍼드의 이 글들이 그러한 통찰과 결단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7월
이명훈

문화: 고급문화, 저급문화, 중류문화, 그리고 대중문화
Mark Henrie
2004. 10. 15.

내용 요약
‘문화’라는 관념은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문화’라는 말의 용례는 아주 많아 그 말이 관념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실체를 가진 것인지조차 불분명하다. ‘문화’라는 답이 나오는 질문은 과연 무엇일까? 먼저 우리에게 익숙한 ‘다문화주의’와 ‘문화 전쟁’을 살펴보자.

다문화주의에 따르면 문화들을 판단할 초월적 입장은 없다. 문화란 그 자체가 완전한 ‘전체’로, 그 안에 나름의 판단 기준을 지니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문화주의는 역설적이게도 세계의 다양한 문화들의 산물을 이해할 초월적인 시각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얼핏 비슷하게 보일지 모르나 전통적인 교양교육과 다문화주의는 의도하는 목적이 아주 다르다. 전자는 판단력이나 식별력을 날카롭게 다듬으려 하고, 후자는 그러한 구별을 없애려 한다.

이상의 논의에서 다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문화는 ‘미적이거나 지적인’ 무언가를 가리킨다. 이러한 문화는 특정한 집단이 공통으로 보유하는 것으로, 인류가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문화는 구별을 가리키는 용어이기도 하다. 문화인이란 고급과 저급을 식별할 수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문화란 통합과 분리, 공통성과 구별 모두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문화 전쟁’에서 문화는 무엇보다 ‘도덕적’ 의미로 쓰인다. 문화란 우리가 공통으로 갖는 도덕이라는 것이다. 미합중국에서 ‘문화 전쟁’은 공통의 도덕적 지평의 상실과 그에 대한 두 가지 반응, 곧 찬양과 반동을 포함한다. 오래된 전통의 지지자들이 도덕적 반항자들을 새로운 공통성을 벼리려는 집단으로 이해하게 된 바로 그 순간에 미합중국의 ‘도덕적 위기’는 ‘문화 전쟁’이 되었다. 문화란 특정한 공통성이다.

문화와 정치 중 무엇이 우선하는가? 고전시대에는 정치가 문화에 우선했다. 그러나 계시종교가 출현한 이래로 ‘사회적’인 무언가가 정치 영역 외부에서 등장했고, 이는 상당 부분 ‘컬트cult’가 도시의 주권적 감독에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문화(culture)라는 관점에서 말하기 시작했을까? 문화는 유럽혁명시대 이후의 범주이다. 그리고 ‘문화’는 — 우리가 문화를 경험하는 문제적 방식으로 — 자유주의 체제의 산물이다. 어떻게 그러한가?

애초에 ‘공적인 것res publica’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완전한 삶의 방식을 구성했다. 기독교는 개인들을 공적인 것에서 떼어낸 후 상이하고 더 높은 수준에서 공통의 지반을 재구성했다. 그리고 자유주의 체제는 사람들을 ‘개인들’로 추상화함으로써 정치와 문화를 분리했다. 한때 정치적 삶은 공동체의 열망을 반영하고 표출했지만, 자유주의 체제는 그와는 다른 것 — 개인들의 의지의 총합? 최소공통분모? 최고악을 피하자는 합의? 자유롭고 평등한 거래를 위한 전제조건? — 을 표출했다.

문화의 문제는 이러한 전개의 결과이다. 따라서 문화라는 답이 나오는 질문은 이것이다: 정치가 한때 자신의 자율성이라고 선언했던 공동선의 잔여물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문화는 공통의 무언가에 관해 공적으로 더 말하려는 공통된 열망의 표현이다. 따라서 자유주의 체제에서는 문화의 범위가 줄어드는데, 이는 공동선, 인간의 선 또한 위축된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의 논의가 ‘고급문화, 저급문화, 중류문화, 대중문화’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 대중문화(mass culture)는 대중들에게 호소하여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생산된 문화이다. 곧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된 사람들이 아니라 추상적인 개인들을 위한 문화이다. 오늘날의 문화는 모조리 대중문화 — 저급문화, 엔터테인먼트로서의 문화 — 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중류문화 역시 고급문화인 척하는 대중문화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고급문화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문화는 ‘공통성’에 뿌리 박고 있어야 한다. ‘공통적인 것’에서 등을 돌리는 것은 문화에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문화는 인간 공동체의 공동선을 표상하는 것이며, 이심성(離心性)이 아니라 중심성이 진정한 문화의 표어이다. 이러한 문화 내에서만이 고급이 저급을 이끄는 방식으로 고급과 저급이 공존할 수 있다. 따라서 수도사가 우리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수도사는 그들 자신의 공통성에 뿌리 박고 있으면서도 가장 공통적인 것들을 길러내기 때문이다.

전체 번역문: Mark Henrie, Culture
출처: The Intercollegiate Review

번역: 라티오 출판사

난해한 개념들
최근에 한 독자가 나에게 공부에 관한 조언을 요청해왔다. 그는 흔하지 않은, 난해한 문헌을 다루는 강좌에서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그 개념들이 많았고, 이해하기가 미묘하며, 불명확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은 정보가 너무 많아서 표준적인 퀴즈와 답변으로는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가 없는 상황이 분명했기에 나는 그 독자에게 불완전하지만 내가 선호하는 공부 기술인 집중적 결합 방법(focused cluster method)을 말해 주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아직 충분하지가 않다. 독자들이 재빨리 알아챘듯이, 각각의 핵심들이 나선형으로 꼬이면서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즉각적인 문제들이 생기는 것처럼, 수많은 방식으로 연결된 수많은 자료들이 있다. 다시 봐야 할 문제들이 매우 많이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제안할 만한 다른 기술을 갖고 있는데, 바로 내가 미니 텍스트북 방법이라 부르는 접근법이다. 이것은 퀴즈와 답변이나 집중적 결합 방법보다는 느리지만, 난해한 자료를 다루는 강좌에 괴로워하는 학생들에게 거의 틀림없이 자료를 정복하는 최선의 방법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미니 텍스트북 방법
상당한 분량의 난해한 자료를 다루는 강좌에 맞닥뜨렸을때, 노트를 텍스트북 스타일의 챕터 묶음으로 줄여라. 실제 텍스트북처럼 적어라. 다시 말해서 여기에는 완결된 문장과 논리적 설명을 사용해야 한다.(그러나 이것이 글쓰기를 좋게 하는데에, 혹은 정상적인 문법에 잘 들어맞도록 하는 데에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다. 오로지 당신을 위한 일이다.)

목적은 요약과 종합에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적어도 매주마다 챕터를 간결하게 노트에 정리하는 것이다.

표본 챕터에 포함되어야 할 것들은 다음과 같다.
* 챕터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개념에 대한 높은 수준의 설명
* 정의들의 목록
* 중요한 사상, 이론, 구성에 대한 유익하고 간결한 설명
* 이전 항목과의 연관 혹은 비교와 대조를 통해 얼마나 다른 요소들이 있는지에 대한 논의

챕터 쓰기 과정 그 자체는, 우리가 방대한 노트를 재검토하기 쉬운 일관되고 촘촘한 형태로 변환시킨 구조로 구성하는, 강력한 재검토가 된다.

그 과정의 다음 단계는 이러한 챕터들의 각각을 위한 즉석 노트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챕터의 기본적인 개요를 기록한다.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재검토를 한다. 챕터 별로 내용에 상응하는 개요를 궁리한다. 선호하는 워드 프로세서를 가동시키고, 개요를 안내지로 삼아, 메모한 것에서 텍스트북의 챕터에 대한 새로운 초안을 쳐넣는다. 원래의 챕터를 들춰보면 안 된다.

노트를 하는 우리의 목적은 원래의 챕터를 정확하게 옮겨적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우리는 잘못 읽었을지도 모르는 텍스트를 매번 보지 않고 쓰는 일을 한다. 핵심은 우리의 개요에 들어있는 모든 사상, 정의, 연관 그리고 논의들을 스스로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납득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한 다음에는, 결과물을 원본 텍스트와 대조하여 체크한다.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퀴즈를 내고 답변하는 식으로 조사하고 또 조사하라.

왜 이런 방법인가
난해하면서 두꺼운, 상호연관적인 자료를 다루는 강좌에서 이러한 방법의 이점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자료를 텍스트북 챕터로 압축시키는 것은 재검토할 정보의 양을 줄여준다. 종합된 챕터는 집중적 결합 방법과 같은 기술에서 사용되는 즉각적인 문제 유형의 길고 방대한 페이지 목록보다 훨씬 간결하다.

둘째, 표본 텍스트북의 챕터를 타자로 치면 소리내어 설명하는 것보다 빠른 검토가 가능하다. 말로 하는 것보다는 타자로 침으로써 난해한 사상을 더 쉽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자를 치는 것과 함께 필요할 때에는 문단을 편집할 수 있고, 구조에 조사하고 재배열할 수 있다. 반면에 말하는 것은, 개념들이 미묘하고 복잡하게 얽힌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끊기기가 쉽다.

신중하게 사용하기
많은 상황에서 이 기술은 지나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강좌에서, 다소 늦더라도, 메모한 것으로 자신의 텍스트북을 쓰는 일은 실질적으로 자료를 제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일 것이다.

출처: Study Hacks

번역: 라티오 출판사